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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성령을 알게 되었을 때...(사도행전 19:1-7)

by TwoTalents 2022. 12. 4.

제목 : 성령을 알게 되었을 때...

 

본문 : 사도행전 19:1~7

1.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말씀 :

오늘 본문은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를 다시 방문하는 부분이다.

에베소는 2차 전도 여행 당시 전도 여행 막판에 잠시 들렀던 도시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는 에베소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었다.

사도행전 1819~21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서 회당으로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었다.

그때 바울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더 오래 있기를 청하였다.

아마도 그때의 반응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이 그들의 청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바울에게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은 비록 떠나지만, 주께서 인도하시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했었다.

그렇게 약속한 후에 자신이 신뢰했던 믿음의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에베소 사역을 부탁하고는 2차 전도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에베소를 떠났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났던 에베소를 3차 전도 여행 중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2차 전도 여행 때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기에 에베소로 온 것일 것이다.

본문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먼저 아볼로라는 인물이 언급되고 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 없고,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에베소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아볼로와 바울, 이 두 사람은 서로 엇갈리게 한 명은 고린도에, 한 명은 에베소에 있었던 것이다.

본문의 아볼로는 지난주 본문에서 얘기한 바로 그 아볼로다.

다시 지난 본문을 살펴보면 누가는 아볼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도행전 1824, 25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헬라파 유대인으로 학문이 뛰어났고, 말을 잘하며,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워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아닌, 요한의 가르침만으로 믿음을 가졌기에 그의 믿음은 불완전했었다.

사실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중간에 갑자기 아볼로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이 뜬금없었다.

그런데 이 뜬금없는 등장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게 된다.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란 표현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 ‘그리스도인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니깐 바울이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는 말이다.

그런데 보통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본문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어떤 제자들에게 뭔가 이상한 부분을 느낀 것인지, 느닷없이 그들에게 성령을 받았는지를 질문한다.

그런데 이런 바울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당혹스럽지만, 그 질문에 대한 이들의 대답도 황당한 것이었다.

그들은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대답한다.

성령을 받지 못했다가 아니다.

성령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맞는 것인가?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듣고 예수를 향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인가?

바울은 계속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성령도 모르는 이들의 믿음은 분명히 온전히 믿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당시로서는 세례를 받았으니깐 제자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 졌을 것 아닌가?

그래서 바울은 성령도 모르는 그들이 무슨 세례를 받았는지를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요한의 세례였다.

본문에서의 요한은 세례 요한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만난 어떤 제자들은 지난주 소개된 아볼로처럼 세례 요한의 세례만을 알았을 뿐이었다.

앞에서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중간에 뜬금없이 등장한 아볼로에 이야기가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고 말을 했다.

그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볼로처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정작 요한의 세례, 세례 요한의 가르침만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어떤 제자들은 아볼로처럼 요한의 세례를 말하고 있지만, 아볼로와는 또 다른 부류의 제자였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금 성령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분명히 성령에 관해 증거했었다.

누가복음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 요한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자신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뒤에 오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확실하게 전했었다.

그런데 그런 세례 요한의 가르침,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했다? 참으로 희한한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요한의 가르침만으로도 말씀을 전하였던 아볼로와는 또 다르다는 말이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그 세례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전의 아볼로보다 더 불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당시로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졌었다.

지금처럼 책이 흔한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상이나 녹음 등으로 기록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학교처럼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고, 그것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짧은 기록 아니면 구전이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아는 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직접 배우고, 직접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에게 혹은 그 제자의 제자에게 전달된 세례, 전달된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세례 요한의 제자가 어떤 가르침을 주면, 그것이 진짜 요한의 가르침이 맞는지 아닌지 검증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빠진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변형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혹시나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말하는 자의 뉘앙스에 따라 전하는 바가 달라질 수 있는데, 말하고 듣는 중에 오해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깐 같은 세례 요한의 세례라고 하더라도 믿음이 다른 모습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례자들의 점검과 재교육이 너무나 중요했던 것이다.

 

어쨌든 신학자 중에는 이 제자들이 성령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적이 없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대 입장의 신학자 중에는 이들이 아예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니깐 제자들이라고 표현했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것이 맞든지 이 어떤 제자들의 믿음은 온전한 것이 아니며, 아볼로와는 다르지만, 아볼로처럼 불완전한 것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가르침이 필요했다.

본문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세례 요한의 세례, 그 가르침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요한의 세례에 관한 정확한 의미를 전달한다.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이고, 그 회개의 세례는 뒤에 오실 예수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전한다.

오직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당시의 가르침은 명확성과 체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아와 동일시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세례 요한이 전하는 메시지, 세례 요한이 증거하는 단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인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이 있고 난 뒤에 이 제자들은 새롭게 결심하고 행동한다.

본문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제자들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는 것으로 곧바로 실천하였다.

이전에 이미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요한의 세례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제자들이 요한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것으로 성령의 계심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받은 세례를 올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바르게 세례를 받은 것이다.

비슷한 상황의 아볼로는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도 다시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실제로는 세례를 다시 받고 기록만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볼로와 본문의 어떤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 말고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적어도 아볼로는 그의 사역으로 보았을 때, 성령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성령을 아예 모르는 어떤 제자들과는 똑같을 수 없다.

어쨌든 제자들은 자발적으로 세례를 다시 받았다.

 

그렇게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바울에게서 처음 들었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게 된다.

본문 6, 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제자들이 이전과 달라진 것은 몰랐던 성령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가리키는 메시아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그들이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께서 임하신 것이었다.

그들은 성령께서 주신 방언과 예언으로 온전하게 알게 된 성령을 체험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성령을 알게 되었을 때.’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어떤 제자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세례는 요한의 세례뿐이었다.

정황상 세례 요한의 세례마저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런 제자들이 바울을 통해 성령을 알게 된 것이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 그가 증거하는 단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 예수로 말미암아 물이 아닌 성령과 불의 세례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자들은 깨달음 뒤에 머뭇거리지 않았고, 즉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시어 방언과 예언의 표적까지 나타내 주셨다.

 

결국 이 제자들이 불완전한 믿음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을 알게 되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성령을 알게 되어, 그 성령을 구했던 것이다.

구하였던 성령이 예수의 이름으로 제자들에게 임했던 것이다.

 

이처럼 안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믿음의 시작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영생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과의 관계도 결국은 서로를 아는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요한복음 1014, 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지자 호세아도 하나님의 아는 것에 대해 강조하였다.

호세아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 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 무릎 꿇고 겸손하게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적용하고, 말씀에 따라 기도하여야 한다.

주님을 바로 아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며, 영원한 생명이고, 참된 소망임을 고백한다.

주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주님을 올바르게 알아가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말씀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을 알고,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알고, 도우시는 성령을 알게 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그 아는 것을 통해 충만함으로, 정결함으로, 온전함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우리이길, 주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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