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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하나님의 뜻이면...(사도행전 18:18-23)

by TwoTalents 2022. 11. 16.

제목 : 하나님의 뜻이면...

 

본문 : 사도행전 18:18~23

18.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 리를 깎았더라

19.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말씀 :

오늘 본문은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이 마무리되고, 3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에베소에 잠깐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의 기록이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이다.

 

고린도에서 전도사역을 하는 중에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었다.

하지만 바울을 잡으려고 했던 유대인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한다.

바울은 당시 아가야의 총독이었던 갈리오의 뜻하지 않는 도움을 받게 된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으려고 거짓을 말하며 모함까지 했었다.

그런데 갈리오 총독은 그러한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 버린다.

거기다가 유대인의 회당장은 사람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총독 갈리오의 도움으로 바울의 사역은 오히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다른 곳에 비해 더 긴 시간을 고린도에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린도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바울의 소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러 날을 더 머물다가 고린도를 떠나게 된다.

본문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은 전도사역의 결과를 교회에 알려야 했고, 또한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형제들과 작별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린도에서 바울의 사역을 도왔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과 동행하게 되었다.

이 부부는 지쳐있던 바울에게 큰 힘이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실라와 디모데가 아직 데살로니가에 머물고 있었을 때, 혼자였던 바울과 함께하며 그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왔던 이들이다.

그렇게 바울과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아마도 이 부부 역시 하나님께 소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권고한 것인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자신해서 함께 가겠다고 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인간의 마음으로 임의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그 뜻에 순종하여 바울과 함께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이렇게 귀한 동역자와 함께, 가장 먼저 고린도의 외항인 겐그레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바울은 이전의 서원을 마치며 자신의 머리를 깎는다.

이 서원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그저 지난 사역에 대한 감사의 서원이거나, 아니면 앞으로 사역을 위한 서원이었을 것이라는 정도로 추측할 뿐이다.

서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자신은 유대인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유대인들에게 공격받았고, 그들의 모함으로 누명을 쓰고, 억울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래서 유대인을 향해 옷을 털어버리고, 이제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고 고백까지 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겐그레아를 떠나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도 알 수 있다.

본문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에베소에서는 오래 머물 상황이 아니었다.

잠시 머물 에베소인데 그런데도 바울은 전도사역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장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던 것이다.

유대인들을 향해 변론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반복되는 죄악 가운데에서도 계속해서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을 보게 된다.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높고, 깊은 사랑을 그렇게 드러내셨다고 믿는다.

바울도 하나님처럼 유대인을 여전히 사랑했던 것이다.

 

어쨌든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다른 곳의 유대인들에 비해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수용적이었고, 그에게 더 머물러 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였다.

본문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오래간만에 유대인을 상대로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에베소에 좀 더 머물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곳의 사람들이 남아서 더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데도 그것을 거절한 것이다.

이전까지 핍박받고, 열매도 없고 그랬는데, 이제 호의적인 상황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면 보통은 그곳에 안주하려고 할 것이다.

그곳이 자신과 딱 맞는 사역지라고, 주께서 이곳으로 보내시기 위해 지금껏 고난으로 훈련하셨다고, 그렇게 확신하면서 떠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단호했고, 처음 계획대로 에베소를 떠나게 된다.

본문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자신을 붙잡는 에베소 사람들과 작별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무슨 뜻인가?

지금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은 에베소의 사람들이 요청하는 대로 그곳에 머물러 1년이고 2년이고 사역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베소에서 사역하면 방해도 없고, 핍박도 없이, 오히려 대접받으며 즐겁게 사역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깐 사람들이 원하고, 자신도 편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바울에게는 그 이전에 해야 할 소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본문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바울이 사람들의 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뿌리치고 향하였던 곳은 가이사랴였다.

가이사랴는 헤롯 대왕 때 인공적으로 건설된 항구도시이다.

이 인공 항구도시였던 가이사랴는 헤롯 대왕 때부터 예루살렘의 항구 역할을 해왔었다.

내륙이었던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배를 타고 가이사랴까지 갔다가 다시 육로로 예루살렘을 향했었다.

그러니깐 바울이 가이사랴에 상륙했다는 것은 결국,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에는 직접적으로 예루살렘이라는 표현이 없다.

그런데 22절에는 올라가라는 표현과 교회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해서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고그다음 2차 전도 여행의 출발지였던 안디옥으로 복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이사랴는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올라가게 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의 지형상 예루살렘은 어느 쪽에서든지 거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올라간다’, ‘내려간다라고 표현했다.

그렇기에 바울은 안디옥으로 복귀하기 전에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한 다음 그곳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예루살렘 교회에 2차 전도 여행의 결과를 보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2차 전도 여행이 마무리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 간의 결속을 다졌던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미 바울에게 전하신 뜻이었다.

전도의 열매, 복음의 역사를 예루살렘의 형제, 자매에게 보고하고,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바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절기도 지키려고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유월절이나, 오순절 기간에 맞춰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유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례를 지켰던 것이다.

그 후에 안디옥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바울은 주께서 주신 소명으로 시작된 전도 여행을 온전히 마무리해야 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원하고, 실제로 편한 곳이지만, 에베소에 머물 수가 없었다.

사람의 뜻보다,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성과를 얻은 에베소를 그냥 내팽개치지는 않았다.

바울 자신은 2차 전도 여행을 마쳐야 하므로 에베소에 머물 수는 없지만.

대신에 바울이 믿을만한 사람, 바울이 전도한 사람들을 믿음으로 양육할 수 있는 사람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824절 이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나눌 것이다.

 

어쨌든 앞에서도 전했듯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과 1년 이상을 함께하며 그들 역시 하나님께 소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으로 바울과 동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바울과 동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바로 에베소에서 다시 정착하며 사역을 하게 된 것이다.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정착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권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던 것이다.

이들의 순종으로 인해 바울은 에베소를 걱정 없이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 예루살렘을 기쁘게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다음 안디옥으로 복귀하여 약 2여 년에 걸칠 2차 전도 여행을 끝마치게 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바울의 모든 소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2차 전도 여행을 잘 마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처럼, 다시 3차 전도 여행을 잘 준비하고 성실하게 실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본문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바울이 안디옥으로 복귀한 후 그곳에 정확하게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1년 이상은 될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바울은 그 기간 동안, 지난 1, 2차 전도 여행을 복기하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며 3차 전도 여행을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후에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였다.

3차 전도 여행에서는 2차 전도 여행 때 이미 방문했던 곳을 먼저 방문하였다.

바울은 이미 교회가 세워진 곳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성도들을 돌아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핍박과 이방의 거짓 교훈에 흔들리지 않고 더욱 굳건히 서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 격려하며 위로하고, 그러면서 말씀에 대해 보강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뜻이면...’이다.

바울의 모든 사역이 그러했겠지만, 특별히 본문에 나타난 2차 전도 여행의 마무리와 새로운 3차 전도 여행의 시작은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억울하게 모함당하고, 그것으로 죽음에 이를 뻔한 위기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신 사명을 멈추지 않고 감당하였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도움으로 순조로운 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로운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함께하길 원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하게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뜻이나 자신의 원함을 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의 원함을 거절하였고, 자신의 편안함을 거부하였다.

이루어진 성과를 교회에 보고하고, 그것을 만족해하며 안디옥교회의 중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수월한 사역을 이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난 사역의 부족함을 보강하고 또다시 그 어려운 길, 힘든 길, 전도의 여정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멈추었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절도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사역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결과가 어떠해도 하나님의 이름이 빛나고 영광을 받으셨다.

세속의 기준과 상관없이 성공적으로 사역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또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승리는 더 좋고 편한 가능성의 유혹을 절연히 잘라버리는 것이다.

승리는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것이다.

승리는 내가 하고 싶은 말, 그 많고 많은 말들을 힘겹게 억누르고.

오직 주께서만 말씀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승리이다.

 

결과가 어떠해도 주님만 빛나신다면.

주님의 평안이 내 안에 있다면.

그것이 바로 승리이다.

 

모든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것.

오직 주께서만 말씀하게 하는 것.

주님만 내 안에 사시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승리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매일 매일 승리하며 나아가는 사람이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라도, 그곳이 어디라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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