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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실패한 것인가?(사도행전 17:16-34)

by TwoTalents 2022. 10. 22.

 

제목 : 실패한 것인가?

 

본문 : 사도행전 17:16-34

16.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말씀 :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적들의 핍박으로 인해 바울은 베뢰아를 떠나야만 했다.
그것으로 마게도냐 지역에서의 사역은 끝이 난다.

핍박을 피해 바울이 옮겨간 곳은 아가야 지역의 아덴이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바울은 이곳에서도 전도사역을 하게 된다.

 

아덴은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이다.

아덴은 아테네여신을 기념하기 위해 아덴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온갖 신들이 숭배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수많은 사원과 건축물들이 건축되었다.

또한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문학, 철학, 과학, 수사학 등이 꽃을 피웠으며 민주주의의 기초가 세워진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울이 방문하였을 때는 옛 명성만 남아 있을 뿐 인구 만 명도 되지 않는 도시로 전락해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화려했던 명성을 추억하며 허망한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다.

 

바울은 아덴에서 이전과는 좀 다른 전도 대상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에 따라 복음을 전하는 내용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던 중에 우상으로 가득했던 아덴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본문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이것은 단순히 화가 났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시에 우상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본문의 격분은 헬라어로 파록수노라는 단어로 분노와 슬픔이 뒤엉킨 참을 수 없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우상에 젖어있는 아덴을 보며 안타까운 심정이 생겼던 것이다.

그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게 된 아덴에서 계획에도 없었던 전도사역을 하게 되었다.

본문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그의 기본적인 전도 전략대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대로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 아덴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서로의 지식을 나누고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이방인에 관한 새로운 지식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본문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당시 헬라 문화를 대표하고 있었던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이방인이 전하는 이방신에 관한 학문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훌륭한 스펙을 가진 똑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덴의 철학자들에게는 그저 변두리 작은 지역의 학자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관해 토론 해 보아도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향해 말쟁이라며 비웃는다.

본문의 말쟁이는 부정적인 표현이다.

여기저기서 주워 담은 지식에 대해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것을 의미한다.

아덴의 철학자들이 듣기에 바울이 전하는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고,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느껴졌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처음 듣는 예수와 부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전도, 거기다가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있는 아덴에서의 전도에 대해서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어쨌든 개중에는 바울의 전하는 복음에 대해 다시 한번 듣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본문 19, 20.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본문의 아레오바고는 의회 내지는 법정을 의미한다.

당시 아덴에서 사법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책임 범위는 종교와 교육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바울을 붙들어 이 아레오바고에서 말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을 재판하기 위해 바울을 피고인으로 세웠다고 볼 수는 없다.

바울이 신을 전하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종교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아덴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해 듣고, 토론하고, 판단하는 것 자체를 삶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복음을 듣고 어떤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바울이 전하였기 때문에 일시적인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곳 사람들의 삶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에만 모든 시간을 허비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만족 외에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는 헛된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든 바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게 된 아덴에서, 계획에도 없었던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법정에 세워졌고,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본문 22절에서 31절까지는 아레오바고에서 전해진 바울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바울의 설교에 대해서 오늘은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설교를 전하는 내용과 방식이 그것을 듣는 대상자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덴의 철학자들에게 쉽게 접근될 수 있는 개념과 용어들을 사용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

바울은 최대한 설교 청취자들과 접촉점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덴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용으로 각색한 부분도 있다.

이는 바울이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듣는 이에게 깨달음을 주고 회개에까지 이르게 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 중에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청중을 너무 생각하고, 그들과의 접촉점을 과도하게 찾다가 보니 조금은 무리하게 보이는 인용과 자칫 오해할 수 있는 각색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본문 30절이 그렇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 부분만 보게 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시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마치 모든 죄를 눈감아 주신다고 오해하기 쉽다.

오늘날에도 이 말씀을 근거로 복음이 전해지기 이전의 사람들, 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은 죄 때문에 심판받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도 밝혔듯이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성경에 익숙하지 않은 헬라 지식인들을 상대로 전해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당시, 현재의 그들을 변화시키고 회개시키기 위해 바울이 사용한 언어인 것이다.
바울의 말은 하나님을 몰랐던 때와는 상관없이 이제는 복음을 듣고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을 듣고 회개한다면, 이전에 하나님을 몰랐을 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쉬움이 있지만, 바울의 아덴 설교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범 사례로 본다.

하나님과 성경에 익숙한 유대인에게 전할 때와는 다르게 청취자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어쨌든 바울의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은 반응하였다.

본문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바울의 설교를 가만히 듣던 사람들이 결론 부분에서 부활을 얘기하자 코웃음을 치게 된다.

부활은 그들에게 분명히 새로운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이성적이라는 헬라 철학자들에게 육체의 부활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들에게 부활을 전하는 바울은 정신 나간 사람이거나 미신에 심취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 뻔하다.

그렇기에 바울을 비웃으며 조롱한 것이다.

개중에는 바울의 주장을 다시 듣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도 어떤 깨달음에 의한 반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중에도 열매는 있었다.

본문 33, 34.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였지만, 그저 지식적으로만 접근했지만,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아덴 지역에 교회가 구성되지 않은 정도로 적은 열매였지만,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여있는 아덴이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사역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마무리된 바울의 아덴 사역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다.

귀한 열매와 함께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극단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아덴 사역은 성공한 것인가? 실패한 것인가?

 

그전에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에 있어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모이고, 그들이 회심하고 교회를 이루어 날마다 믿는 자들이 더하여지면 성공한 것인가?

1, 2년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는데, 믿는 자가 여전히 3명을 넘지 못한다면 실패한 것인가?

이것은 철저하게 세속의 기준에서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이러한 기준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고린도전서 36~8.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사역자의 일은 씨를 심고, 물을 주는 것이다.

거기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사역자는 오직 자신이 일한 것으로 상을 받게 된다고 고백한다.

바울이 최선을 다하고, 성경도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그 노력을 주님은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도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522, 23.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자신의 종에게 많이 남긴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그 종이 적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충성을 다한 것에 대해 칭찬하신다.

남은 것은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한 부수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분명히 아덴에서의 결과는 좋지 못하다.

이전의 전도사역과 비교해 보았을 때, 열매가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세속의 기준으로 보면 어떤 이의 주장처럼 실패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 주님의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다.

 

바울은 갑작스럽게 주어진 전도의 기회를 피하지 않았다.

그는 낯선 곳, 낯선 환경에서도 주어진 의무를 감당하였다.

그렇다고 요나처럼 대충 전하지도 않았다.

그는 최선을 다하였다.

헬라 지식인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무엇보다 바울은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지 않았다.

자신의 할 바를 다하고 자신의 역할까지만 수행하였다.

그렇기에 이 사역이 하나님의 뜻임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만약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다고 해서 바울이 무리를 했다면.

아덴도 베뢰아처럼 만들 거라고 욕심을 부렸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욕망, 자신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고백처럼 씨를 심고 물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이제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주신 사명을 흔들림 없이 끝까지 감당하는 것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이다.

 

바울은 실패한 것인가? 성공한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 우리는 오늘날 교회를 바라볼 때, 사역자들을 바라볼 때.

어떤 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세상과 다르지 않은 세속의 기준으로 너무나도 쉽게 교회의 성공 여부, 사역자의 성공 여부를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이다.

사역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해야 할 바는 열심히 씨를 심고, 최선을 다해 물을 뿌리는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칭찬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적은 일에 충성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을 것임을 믿고 확신한다.

오직 주님을 바라며,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주님께 충성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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