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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그대와 함께라면...(사도행전 18:1-17)

by TwoTalents 2022. 10. 29.

 

제목 : 그대와 함께라면...

 

본문 : 사도행전 18:1~17

1.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 하지 아니하니라

 

말씀 :

오늘 본문은 바울 일행의 고린도 전도사역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스스로를 힘든 상태였다고 고백한다.

그가 고린도 교회로 보냈던 첫 번째 서신인 고린도전서에서는 처음 고린도에 도착했던 당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본문의 거할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게노멘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갔다라는 의미로 본문은 내가 너희에게 갔을 때의 뜻이 된다.

그러니깐 고린도로 처음 갔을 때, 그때 바울은 이미 약해져 있었고, 두려움으로 심히 떨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약함은 육체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체 문맥상 육체가 아닌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바울이 심적으로 지쳐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다음 사역을 이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는 말이다.

바울도 인간이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힘을 잃어버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직전에 있었던 아덴 사역의 영향 때문임이 분명할 것이다.

지난주에 살폈듯이 아덴에서의 사역은 이전의 사역에 비해 열매가 미미했었다.

물론 바울이 어려운 중에도 최선을 다했기에 그가 사역 자체를 실패했다고는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열매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바울에게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이다.

거기다가 고린도의 상황도 바울을 두렵게 만드는 것에 한몫했을 것이다.

고린도는 당시 아가야 지역의 수도였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런데 아덴처럼 대학 중심의 도시는 아니었지만, 아덴처럼 헬라 철학과 지혜에 관심이 많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아덴처럼 우상이 성행한 도시였다.

이교도들이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철학자들은 사변을 늘어놓으며 교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바울은 아덴과 비슷한 고린도의 환경을 바라보며 아덴과 비슷한 결과를 낳게 되지 않을지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도를 멈출 수 없고, 소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바울은 어려운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전도사역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런 바울에게 주님은 그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우신다.

오늘은 이 부분을 살펴볼 것이다.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아덴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바울이 고린도에 이르게 된다.

본문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앞서 밝혔듯이 고린도는 당시 아가야 지역의 수도였다.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로 당시에 인구가 약 65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큰 도시였다.

사람이 많은 만큼 문제도 많았고, 특히 성적으로 매우 문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바울은 훌륭한 동역자를 만나게 된다.

본문 2, 3.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유대인인 아굴라, 그리고 이방인인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를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것이다.

이 부부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가 칙령을 내려 유대인을 로마에서 쫓아냈을 때, 그때 함께 쫓겨나 고린도로 오게 되었다.

이들은 바울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혼자였던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바울과 같이 생업으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 부부와 함께 일하며, 생활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영적으로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부는 이후에도 바울의 사역에 동역자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고린도에서는 자신의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 일을 하며 자급자족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재정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덴에서부터 혼자였다.

그리고 고린도에서도 아직 교회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경제적으로 후원받을 곳이 없다.

그러니 일을 해서 스스로 재정을 충당한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오해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미리 예방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주중에는 일을 하였지만, 안식일에 전도사역을 이어나갔다.

본문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이제까지와 같이 관례대로 안식일마다 회당을 찾아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유대인을 먼저 찾았었고, 고린도에서도 가장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기다리던 전도팀이 고린도로 도착하게 된다.

본문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아마도 실라와 디모데는 이때 마게도냐 성도들의 후원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멈추고, 이제 본격적인 고린도에서의 전도사역이 시작되었다.

안식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회당에서, 거리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스스로 생업을 책임지는 것이 고린도에서만 있었던 일시적인 것은 아니었다.

바울은 자신이 자급자족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까지 생각했었다.

바울의 자급자족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나누도록 하고 오늘은 넘어가겠다.

 

어쨌든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면서 고린도에서의 전도사역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깐 가만히 보고 있던 유대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본문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그가 전하는 복음을 비방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에 훼방을 놓는다.

이것은 일시적인 방해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계획적이고 반복적으로 바울을 비방하며 괴롭혔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옷을 털면서 유대인을 저주한다.

앞서 밝혔듯이 바울은 유대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열린 구원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선택의 결과는 바울이 아닌 유대인들의 책임이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떠나버린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방해했지만, 그런 중에도 열매는 있었다.

본문 7, 8.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디도 유스도는 이방인이었고, 특별히 로마인이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중에서도 열매는 있었다.

회당장인 그리스보와 그의 온 집안이 주께 돌아온 것이다.

회당장인 그리스보의 회심은 바울을 대적했던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았던 바울에게는 큰 기쁨이자 힘이 되었을 것이다.

고린도에서 바울이 직접 세례를 베푼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울이 직접 세례를 베푼 사람 중의 한 사람이 그리스보이다.

그만큼 바울이 그리스보의 회심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충격받은 유대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을 더 괴롭혔을 것이 분명하다.

회당장까지 바울의 말에 넘어가 버렸으니, 이제는 이판사판으로 공격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바울을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신다.

본문 9~11.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환상 중에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어떠한 공격이 가해지더라도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할 것을 주문하신다.

그러시면서 당신께서, 주께서 바울과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주께서 함께하시기에 대적들이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바울을 해롭게 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선언하신다.

그렇기에 힘을 내어 여전히 복음을 들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아가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부터 더 이상 바울을 대적들이 괴롭히지 않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바울이 고난받지 않는다는 말도 아니다.

여전히 고난이 있고, 대적들은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울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공격받고 고난받아 육체가 괴로워도 바울에게 열린 구원의 문을 닫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적하고, 아무리 비방해도 흔들리지 않는 바울이 유대인들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이제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기 위해 빌립보에서처럼, 데살로니가에서처럼 그를 모함하고 거짓 증언을 하려고 모략을 꾸민다.

본문 12, 13.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는 시기에 맞춰서 바울을 고발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신임 총독이 부임하면 시민들에게 환심을 얻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유대인들인 이것을 노렸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짓 사실을 꾸며 바울을 고발하면, 새로운 총독이 자신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그들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총독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기대처럼 하지 않았다.

본문 14~16.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바울이 자신의 거짓 고발에 대해 변호를 하려고 하는데, 그러기도 전에 총독이 사건을 기각해 버린 것이다.

갈리오는 바울과 유대인의 갈등을 그들만의 종교 분쟁으로 인식했다.

자기들끼리 영향력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갈리오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이방 종교에 관한 분쟁에 대해 관여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되레 귀찮아했다.

유대인의 문제는 유대인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 판결은 결코 기독교를 옹호해서 내린 판결이 아니다.

그런데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전도사역에 순항을 맞게 된다.

총독 갈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바울을 살렸고, 기독교를 도왔던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는다.

 

총독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곧바로 그 판결에 순응하지 않고 법정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결국은 총독의 명령으로 유대인들은 법정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 유대인을 향한 불편한 감정을 품게 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본문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분노한 사람들이 유대인의 회당장인 소스데네를 잡아다가 법정 앞에서 집단 구타를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총독이 보고도 제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판결에 순종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향한 괘씸죄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유대인들은 계획하고 준비해서 바울을 모함하고 잡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자신들이 법정에서 쫓겨나고, 회당장은 몰매를 맞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사건은 일단락된다.

 

말씀의 서두에서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바울은 힘이 빠져있었던 상태였음을 나누었다.

지난 사역의 아쉬운 결과로 인해 바울은 두려웠고, 고린도에서의 사역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고린도에서 16개월 동안 사역하였다.

이는 이후에 있을 에베소 사역을 제외하면 가장 긴 시간의 사역이다.

이것은 그가 처음에 품었던 두려움, 떨리는 마음, 부정적인 생각이 극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떨리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먼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신실한 동역자 보내주셨다.

혼자 있던 바울에게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를 보내신 것이다.

이들은 신실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바울과 같은 생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함께 나누며 교제할 수 있는 시간과 내용이 많았던 것이다.

이 부부와 함께하며 바울은 큰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함께했던 동역자들과 다시 함께하게 하셨다.

헤어져 있었던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불완전했던 전도팀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게 되었고, 그들이 받아온 후원금으로 전심을 다 해 사역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귀한 복음의 열매를 맺고 새로운 동역자를 얻게 하셨다.

이방인은 물론 핍박하던 유대인 중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들은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께서 직접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힘을 주셨다.

바울이 멈추지 않고 선포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다.

결단코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결국 바울이 두려움과 떨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함이었다.

신실한 동역자와의 함께함.

헤어졌던 동역자와의 함께함.

새로운 동역자와의 함께함.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와의 함께함.

주께서 사람을 통하여, 그리고 당신께서 직접 외로워하는 바울에게 함께함으로 용기를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께서 보내신 믿음의 동역자임을 고백한다.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 힘이 될 때, 우리는 주께서 세우신 아름다운 교회로 더욱 완성되어 가는 것임을 믿는다.

이런 우리를 교회로 인정하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와 함께하심을 나타내실 것을 믿고 의지한다.

주께서 함께하게 하신 아름다운 믿음의 동역자를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믿음의 동역자를 위로하고, 그들에게서 위로받는 참된 교회, 아름다운 교회, 사람이교회 공동체를 이뤄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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