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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본질은 예수다.(사도행전 18:24-28)

by TwoTalents 2022. 11. 27.

 

제목 : 본질은 예수다.

 

본문 : 사도행전 18:24~28

24.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말씀 :

지난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이 마무리되고, 3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저자인 누가는 3차 전도 여행의 시작 부분을 빠르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사도행전 18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방문하고 그곳의 제자들을 굳건히 했다는 것으로 끝내버린다.

그러고는 다음 부분에서 갑자기 에베소의 이야기를 한다.

에베소는 바울이 잠시 머물렀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에베소의 교회를 부탁하고 떠났던 곳이다.

바울의 여정을 따르다가 갑자기 바울도 없는 에베소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이 뜬금없기도 하다.

하지만 본문을 통해 중요한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 것이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에 나타난 새로운 한 인물, 즉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라라는 유대인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본문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이 아볼로에 대해 말을 잘하고,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태어났던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집트에 세운 도시이다.

그곳은 그 지역에서 상업의 중심지였고,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인구 중 1/3이 유대인들이었을 정도로 유대인이 많았다고 한다.

어쨌든 아볼로는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고급학문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의 언변이 좋고는 헬라어로 로기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말을 잘한다는 뜻과 함께 유식하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개정 한글 버전에서는 학문이 많고로 번역을 했다.

그러니깐 아볼로는 단순히 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식을 말로써 잘 표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는데, 이는 성경 해석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본문의 성경은 구약을 의미한다.

 

이런 아볼로가 어떤 경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미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본문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시기와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아볼로는 이미 예수를 향한 믿음이 있었고, 그 예수를 전하며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예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저자는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 즉 세례 요한의 세례만을 알 따름이었다고 말한다.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례 요한의 가르침만을 배웠고, 그것만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말씀을 배운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 증거했던 예수님만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아볼로는 세례 요한의 제자 중 누군가를 통해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알게 된 것 같다.

세례 요한 살아생전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요한복음 326~28.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그러니깐 요한의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증언했던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 되시는 예수님을 전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볼로는 그들에게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아볼로의 배움은 거기까지였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만을 알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은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이나, 그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과의 만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에 대해서는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에베소에서 예수님께서 전하신 가르침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본문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만나게 된 사람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이다.

아볼로는 세례 요한의 가르침만을 아는 불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에베소에 남아 있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바울의 놀라운 동역자인 이 믿음의 부부가 보게 된 것이었다.

아볼로는 놀라운 재능으로 말씀을 전했을 것이다.

성경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구약을 해석하며 알기 쉽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켰을 것이다.

거기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지식으로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놀라운 지식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는 그 가르침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볼로에게는 세례 요한의 가르침까지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이 틀린 가르침은 아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기에 곳곳에 빠진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부부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욱 정확하게 풀어서 가르친다.

아볼로가 불완전하게 알고 있는 복음의 빈틈을 채워준 것이다.

직접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친 것이다.

이것은 아볼로에게 있어서 이전보다 더 놀라운 믿음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채워지지 않았던 믿음의 빈 공간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복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자신이 능통한 성경과 더욱 견고한 연관성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아볼로의 믿음은 더욱 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아볼로는 새로운 사역을 희망하고 준비한다.

본문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아볼로가 이전에 바울이 전도했던 지역인 아가야로 건너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볼로가 어떻게 이것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베자 사본이라고 불리는 서방 사본에는 에베소에 있었던 고린도 교인들이 아볼로에게 자신들과 함께 고린도에 갈 것을 부탁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어떤 경로이건 분명한 건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소명이 주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도 그를 위해 추천서를 써준 것일 것이다.

원래 지식이 많았고, 말을 잘했던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는 이전보다 정확하게 복음을 깨닫고 그것을 전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볼로는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에게 공격받았다.

하지만 아볼로는 그들에게서 승리한다.

본문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본문의 이김은 헬라어로 디아카텔렝코마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철저하게 입증하다’, ‘납득시키다라는 뜻을 가진다.

아볼로가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유대인들에게 철저하게 입증시켰다는 것이다.

그들이 납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가 가진 많은 지식과 깊은 성경의 이해도, 거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논리적이면서도 영적인 말씀의 해석으로 유대인과 쟁론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철저히 입증하였고, 그들을 납득시켰던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이 말씀을 오해한 나머지, 마치 전도에는 논리나 이성이 필요 없고 그냥 무식하고 미련하게 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미련하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 외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그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며, 오히려 전도를 방해하는 것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말이다.

본문의 전도의 미련한 것은 전도를 미련한 방법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다.

전도 자체가 미련한 것이라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전도로, 곧 복음 전파로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복음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이 땅에 내려왔다고 하니깐.

그가 인간의 죄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니깐.

다시 살아난 사람이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니깐.

승천했던 사람이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서 이 땅을 심판한다고 하니깐.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꿈같은 소리를 하니깐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깐 방법적으로 전도를 미련하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다.

 

같은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은사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고린도전서 124~8.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가르치면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가장 먼저 말하고 있다.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의 은사 중에 우선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전도를 미련한 방법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는 전도를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으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아볼로가 그렇게 했다.

주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뜨거운 영성과 차가운 이성으로 주님의 말씀을 해석함으로 유대인들의 말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볼로가 예수님을 전하는 부분이 두 번 등장한다.

본문 25절과 28절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말씀에서 아볼로의 상태는 전혀 다르다.

25절에서의 아볼로는 열심은 있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오직 세례 요한의 가르침만을 알고 있었고, 그것으로 불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틀린 것은 아닌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28절에서 힘있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아볼로는 달랐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가르침도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믿음의 공간을 채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볼로가 완전하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게 된 것이다.

 

오늘 아볼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본질은 예수라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요한의 가르침으로 아볼로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것이었다.

예수님을 가장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

 

예전에 신학대학을 다닐 때 매달 나오는 학교 잡지가 있었다.

거기에 4컷 만화가 있었는데, 어느 달인가 이런 내용이 실렸다.

갓 입학한 신학생이 신학책을 읽으며 유명한 신학자들의 사상을 외우듯이 공부하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정작 2학년 전에 통과해야 할 성경 시험은 불합격하고 말았다.

신학책 읽고 신학 공부한다고 성경은 별로 읽지 않은 것이다.

무슨 말인가?

본질은 뒤로한 채 그 본질을 설명하는 주변의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신학책이나 신앙 서적을 읽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라도 가장 먼저 성경을, 말씀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며.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인가?

 

그런데 이 당연한 진리가 무너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믿음의 본질은 예수인데.

마치 믿음의 본질이 다른 것인 양 엉뚱한 것에 열심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라는 말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오직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잘 알고, 제대로 따르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단을 목적인 것처럼, 본질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 보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우선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하고 있는가?

 

오직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실천하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렇게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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