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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내 뜻 말고, 하나님의 뜻.(사도행전 16:6-10)

by TwoTalents 2022. 8. 30.

 

제목 : 내 뜻 말고, 하나님의 뜻.

 

본문 : 사도행전 16:6~10

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말씀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의 원하심과 자신의 원함을 구분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안타깝게도 다른 기준과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러니깐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진행할 때, 하나님의 실제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뜻,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심이라고 자기가 확정해 버린다.

그런 사람 중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통해 강력하게 원하도록 이끄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이런 주장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자기 생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냥 자기 욕심일 뿐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은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오늘 본문은 다섯 절밖에 되지 않으며, 실제 내용도 적은 분량이다.

그런데 이 짧은 본문에서 바울의 뜻이 주님에 의해 두 번이나 막히는 것을 보게 된다.

1차 전도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준비한 2차 전도 여행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바울의 뜻을 막으셨다.

그러시곤 바울이 생각지 않았던 다른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먼저 복음을 들고 아시아를 향해 나아가길 소망했던 바울의 전도팀을 성령께서 막으셨다.

본문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본문의 아시아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아시아 대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시아는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오늘날 소아시아라고 불리는 지역을 말한다.

당시 로마에 의해 세계 곳곳이 점령되었는데, 이 지역을 아시아라고 불렀던 것이다.

바울은 이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길 원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성령께서 그것을 막으셨던 것이다.

성령의 개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환상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전도팀이 성령의 막으심이라고 인정할 만큼 분명한 주님의 뜻이 임하셨다는 사실이다.

 

많은 준비와 계획으로 시작된 2차 전도 여행이다.

그런데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성령에 의해 사역이 멈춰버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의 뜻에 순종하였다.

그런데 성령의 뜻에 순종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있지는 않았다.

바울은 새롭게 행동하였다.

성령의 막으심을 그대로 수용하여 처음 계획했던 아시아의 선교 목적지를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전도 여정을 수정한 것이다.

 

바울의 이 모습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본을 보여준다.

앞서 말 한대로 그간의 모든 계획과 준비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철저한 실패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뜻을 무시한 채, 자기의 뜻에 따라 계획된 전도 여행을 그대로 진행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얼마나 큰 노력을 했든지 간에 주님의 뜻을 확인했다면 자신의 뜻은 그대로 접을 수 있었던 바울이었다.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르는 바울의 놀라운 순종의 믿음이다.

 

그런데 바울의 전도 여정을 막는 성령의 방해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문 7, 8.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성령이 막으셔서 원래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무시아로 갔다가, 이제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예수의 영, 즉 성령이 또다시 그들의 길을 막으시는 것이다.

역시 막으심의 방법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성령께서 막으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성령께서 막으셨다면, 이제 사역자들의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한 번 정도는 주께서 다른 곳으로 옮기시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길을 막으신다면, 전도 여행 자체를 원하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바울 일행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받은 근본적인 소명에 대해서는 흔들림이 없었다는 말이다.

바울과 전도팀은 첫 번째 때처럼 주의 뜻에 순종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순종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를 수정하고 계속해서 사역을 이어나갔다.

주의 영이 막으신 비두니아로 가지 않고, 수정된 목적지인 드로아로 내려갔던 것이다.

드로아는 에게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아시아와 마게도냐를 잇는 바닷길이 열려있었던 곳이 바로 드로아였다.

 

이렇게 주의 뜻에 따라 막으시는 곳에 억지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막지 않으시는 곳, 열려있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한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직접적인 방법이 아닌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도팀의 앞길을 이끄신 것이다.

 

아이에게 길을 가르쳐 줄 때면, 손을 꼭 잡고 처음부터 함께 가는 방법이 있지만.

잘못된 방향을 막는 것으로 아이가 찾아가게 하는 방법도 있다.

바울과 전도팀은 주님의 막으심에도 포기하지 않고, 막지 않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불안한 중에도 계속 순종함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던 바울은 마침내 주님의 뜻을 전달받게 된다.

본문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성령께서 막으실 때와는 다르게 주의 뜻이 전달되는 정확한 방법이 제시된다.

바울은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환상으로 본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마게도냐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떤 학자는 바울의 환상 중에 나타난 사람이 마게도냐인인 누가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바울이 바로 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중요한 것은 계속 막히기만 했던 전도의 여정에 드디어 가야 할 곳이 주어진 것이다.

계속 막기만 하셨던 성령이 가야 할 곳을 열어 주신 것이다.

바울과 그 일행은 바울의 이 환상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보이신 것임을 확신하였다.

본문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혼자서 결정하지 않았고, 전도팀과 함께 자신이 본 환상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별하였다.

바울과 전도팀은 주의 막으심으로 계획을 수정하였고, 방문 계획이 없었던 곳, 드로아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도움을 구하는 환상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드로아는 마게도냐로 가는 바닷길이 열려있는 항구도시였다.

이 모든 것을 보았을 때,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 팀을 마게도냐로 보내시기 위해 다른 곳을 막으시고, 마게도냐를 향한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바울의 소명이 더욱 확장되었다.

마게도냐는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그러니깐 아시아가 아닌 유럽의 도시이다.

바울은 아시아, 즉 튀르키예 지역의 전도를 계획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유럽을 보게 하셨고, 그곳으로 바울과 전도팀을 보내시는 것이다.

 

바울은 계속되는 계획의 차질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구하였고, 그 뜻에 순종하였다.

전도의 길이 막히고, 그 길을 포기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길 선택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막으심에도 포기하지 않고, 막지 않은 곳을 향해 여전한 열심을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인해 결국 주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의 뜻을 분별하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보다도 훨씬 크고 장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에서도, 자신의 사역에서도 주안에서 아름다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말씀의 서두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를 위해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인 양 둔갑시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진실로 헷갈려서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헤매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많은 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다.

남들이 인정하는 세속적 성공을 이루겠다고, 주안에서의 참된 성공을 포기하고 있다.

자신은 물론 자기 자식, 그 자식의 자식, 그렇게 자자손손, 대대손손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겠다고, 주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를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 자기 뜻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사람들에게는 거짓말하고, 스스로에게는 자기 최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일에 세세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록하지는 않고 있다.

오늘날의 일들 중에서는 성경에 전혀 언급이 없는 일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원칙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중요한 말씀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믿는 자들이 구해야 할 것에 대해서 하셨던 말씀이다.

마태복음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염려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이런 걱정이나 하고 있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배부르게 먹고, 잘사는 것 염려하고 있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구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신다.

그러시면서 믿음의 사람들이 구해야 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너무나도 명확하게 선언하신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 바로 천국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천국을 들어갈 것을 구하는 것과 동시에 이 땅에서도 그의 나라와 같은 세상을 구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의 의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사랑이다.

믿는 자들의 삶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주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바울이 성령의 막으심에 순종하여 자신의 뜻을 포기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구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막으심에도 소명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은 것은 주님의 의를 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구했다면, 결단코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남들 보란 듯이 자신의 계획을 성공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하나님 이름은 들먹이지만, 실상은 자기 배를 채우기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보이는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과 동일시하는 것을 보게 된다.

교회의 건물이 얼마나 크며, 성도는 얼마나 많고, 재정은 얼마나 되는지를 살피며 목회자가 성공했니 어쨌니를 말한다.

철저하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선포하셨다.

오직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그것을 선포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만큼 사람의 뜻을 구별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 삯꾼들의 뜻을 이루며 세상의 성공을 구하는 가짜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들에게 세습하지 않으면 교회가 망할 것이라는 거짓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만약 아들에게 세습하지 않아서 망할 교회면, 그냥 망하는 게 더 낫다.

그래서 흩어진 성도들이 건강한 교회를 찾아간다면 그것이 더 유익이다.

세상의 법보다 하나님의 법이 위에 있다?

그렇기에 세상 법을 어겨서라도 교회를 확장시킨다?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더러운 자들의 거짓말일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잠시 내려놓자.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다르다면 하나님의 원하심을 위해 나의 원함을 포기하자.

그때, 주께서 나에게 당신의 더 깊으신 뜻을 보이실 것이다.

더 넓은 계획을 알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의 계획하심을 숨기지 않고 밝히시는 그런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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