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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차별을 없애다.(사도행전 15:22-35)

by TwoTalents 2022. 8. 7.

제목 : 차별을 없애다.

 

본문 : 사도행전 15:22~35

22.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 더라

23.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26.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 정하였노라

27.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없음)

35.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말씀 : 

지난 본문에서는 첫 번째 예루살렘 종교 회의를 통해,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교회 속에서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최소한의 조항이 결정되었다.

오늘은 이 조항의 내용을 이방교회에 전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방 교회에서 함께하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전달할 사람도 신중하게 선발하였다.

본문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온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여 바울,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가서 총회가 결정한 조항을 전달할 두 사람을 정하고 함께 보내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 이 두 사람만이 총회의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총회의 공식 결정에 대한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면서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에도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

 

총회에서 결정한 전달자는 바사바라하는 유다와 실라라는 사람이었다.

바사바라하는 유다는 유대인이 분명해 보인다.

반면, 실라는 확실하지 않다.

학자에 따라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헬라파 유대인이라는 학자도 있고, 아예 헬라인이라는 학자도 있다.

어느 주장이 맞든지 유다에 비해 이방인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동행을 위해 내려진 총회의 결정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기에, 앞서 말 한대로 교회 속의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들어야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것을 위해 유대인과 이방인, 각자에게 적합한 사람을 사신으로 세우게 된 것이다.

 

총회는 사람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결정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여 함께 보냈다.

본문 23~27.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말로써 전할 전달자와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 명의로 작성된 편지를 함께 보낸 것이다.

이것으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깊은 신뢰를 주는 것이다.

편지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혼란을 인지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혼란을 야기시킨 사람들, 즉 유다에서 안디옥으로 내려갔던 어떤 사람들이라는 이들이 예루살렘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에게 할례를 가르치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가르칠 권한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령의 이끌림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단지 자신들의 고정관념, 잘못된 선민의식으로 인해 주님의 뜻을 저버린 채, 이방인 형제, 자매들을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편지를 통해 총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안디옥 교회의 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는 바울과 바나바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입증할 사람으로 유다와 실라를 함께 보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달자들의 신뢰성을 확보한 다음,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된 조항의 내용을 전달한다.

본문 28, 29.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총회에서 결정된 4가지 조항을 설명하면서 이 결정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령으로 인해 교회의 연합을 위해 정해진 하나님의 뜻이다.

정해진 4가지 조항에 대해서는 요긴한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의 요긴한 것들은 헬라어로 에파낭케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필요한’, ‘필연적으로라는 뜻을 가진다.

총회가 결정한 4가지 조항은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위해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들인가?

지난주에도 언급했듯이 이것은 교회 안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건강한 동행을 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조항인 것이다.

적어도 이 4가지는 지켜줘야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함께하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다.

대신 유대인들도 총회에서 결정된 4가지 조항 이외의 것으로 이방인을 힘들게 하거나 부담 주는 일은 없어야 함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이 내용이 잘 지켜지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존중해 나갈 때, 교회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편지가 안디옥 교회에 전달된 후에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너무나도 기뻐하였다.

본문 30, 31.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 때문에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바울의 가르침과 다른 것으로 인해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할례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을 것이다.

어떤 유대인들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불안하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혼란스러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전해진 편지로 인해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만 온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서 직접 파송한 사역자들이 교회 지도자들이 작성한 편지까지 들고 와서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러니 더 이상 갈등하고 고민할 것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예루살렘에서 파송되었던 유다와 실라는 편지를 전달한 후에도 안디옥 교회에 얼마간 머물며 성도들과 함께하였다.

본문 32, 33.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유다와 실라가 얼마 동안 안디옥에 머물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선지자로서 각각 안디옥 교회의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로하며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안디옥 교회의 전송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

 

번 외적인 이야기로 본문 34절은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초기 사본에는 없는 내용인데, 후대 사본에 첨가되어 있다.

그래서 원본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고 개역 성경에서는 제외시킨 것이다.

제외된 34절의 내용은 실라는 그들과 함께 유하기를 작정하고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36절부터 진행되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에 실라가 합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누군가가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필사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둔 것 같다.

말씀보존학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킹 제임스 버전 성경에는 제외된 성경 구절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킹 제임스 버전 성경이 비교적 후대에 완성된 안디옥-비잔틴 계열의 사본들을 중심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제외된 성경이 본문에 들어가도 내용이 크게 변형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역 성경에서도 난외로 참고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보존학회는 킹 제임스 버전만이 참 성경이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잘못된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난 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남아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본문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던 문제가 해소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서신을 통해 두 사람은 안디옥 교회의 사역자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방해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차별을 없애다로 정하였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네 가지 조항이 결정되었고, 그 내용을 사신을 통해 안디옥 교회로 전달하였는데.

이 모든 과정을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차별이 없어야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심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선민의식은 유대인들의 마음속에서 자부심을 넘어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방인에 대한 우월감이 지나치다 보니, 이방인을 짐승 취급하였고, 이런 생각은 오롯이 그들을 향한 차별로 나타났었다.

그런데 이런 차별이 믿음의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도, 그러니깐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초대교회에서도 차별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었다.

히브리파 과부들과 헬라파 과부들을 구제함에 있어서 차별을 두었던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명의 사역자를 따로 세우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갈등의 이유가 되었던 할례 문제도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에서 나타난 차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할례를 받은 자신들의 구원은 진짜이고, 무할례자인 이방인의 구원은 가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이전에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유대인이 아닌데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 이런 차별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감사하게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문제에 관해 성령과 말씀으로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과 주께서 교회에 바라시는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분별했던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원하심 대로 믿음의 형제, 자매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차별을 없애야 하고, 차별을 없애고 하나 되기 위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최소한의 예의적 조항만을 제시했던 것이다.

유대인은 이방인에게 더 이상 율법적인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방인은 유대인의 율법적 배경을 인정하면서 그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이다.

 

차별을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도 동일하신 주님의 마음이다.

교회에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렇기에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차이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으로 극복될 수 있다.

조금씩 양보하고,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하나 됨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존중하지 못하고, 서로 양보하지 않을 때.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치르는 사람이 있을 때.

차이는 차별이 되고 만다.

그리고 차별을 불만을 낳고, 불만은 갈등을 만들게 된다.

결국 교회의 아름다운 하나 됨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그 어떤 종류의 차별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그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누구라도 차별하지 말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자.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

그렇게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자.

주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자.

그렇게 아름다운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참된 기쁨과 참된 평안함을 허락하실 것을 믿고 의지한다.

 

조금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교회가 먼저 나서서 차별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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