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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박해 받다 흥왕하다 (사도행전 12:1-25)

by TwoTalents 2022. 6. 18.

제목 : 박해받다 흥왕하다

 

본문 : 사도행전 12:1~25

 

말씀 :

오늘 본문까지가 사도행전 전반부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본문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다.

그리고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세워질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위임하신 명령대로 이제 땅끝을 향해 복음이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가 성장하는 가운데 주어진 것은 교회를 향한 더 큰 박해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점점 커지는 교회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오히려 더 흥왕하게 된다.

오늘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더욱 심해진 기독교를 향한 박해는 급기야 주님의 사도가 순교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본문 1, 2.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함께 했던 제자, 주께서 직접 사도로 세우신 제자.

예수님과 늘 동행했던 세 명의 수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일은 당시 교회에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야고보의 죽음을 주도한 이는 헤롯 왕이었다.

본문의 헤롯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유대의 실권을 잡고 있었던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를 말하는 것이다.

헤롯 가문은 유대인이 아니다.

이들은 이두매인이다.

이두매인은 멸망한 에돔 족속의 잔당들이다.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들이다.

이스라엘과는 형제의 나라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원수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두매인들을 업신여겼고 이방인처럼 취급하였다.

그런데 그런 이두매인인 헤롯 가문이 대를 이어서 유다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감정적으로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실권을 잡았던 헤롯들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적잖은 노력을 했었다.

본문의 헤롯, 즉 헤롯 아그립바 1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야고보를 죽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단지 유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유대인들의 원함을 실행한 것이었다.

 

헤롯에 의해 야고보가 죽은 일을 유대인들이 기뻐하게 된다.

본문 3, 4.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야고보가 죽은 것에 대해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헤롯은 한 번 더 교회의 중요한 인물을 잡으려고 한다.

그가 바로 베드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초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헤롯은 베드로를 잡는 것으로 유대인들이 더 기뻐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게 되는 무교절 기간에 베드로를 체포한다.

이는 더 많은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헤롯은 베드로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군인 네 명씩 4교대로 베드로를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베드로를 죽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헤롯과 교회 사이에는 어떤 은원관계가 없다.

그는 단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잔인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를 느낀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본문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이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당시에 기독교는 가장 연약한 집단이었다.

기도 말고는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기도야말로 믿는 자들에게 능력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을 고백한다.

 

한편, 옥에 갇힌 베드로의 상황은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본문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베드로는 사도행전의 기록상으로 세 번째 투옥이다.

그런데 두 번째 투옥 때 주의 사자의 도움으로 탈옥한 경험이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고, 거기다가 베드로가 중요한 인물이기에...

헤롯은 간수들로 하여금 베드로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도록 지키게 하였다.

베드로 양쪽에 각각 한 명씩, 두 명의 간수를 베드로와 같이 묶어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두 명이 옥문을 지키고 있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된다.

본문 7, 8.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옥중에 눈부신 광채를 발하며 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이다.

주의 사자는 베드로를 깨웠고, 그가 찬 쇠사슬을 벗겨낸다.

그리고는 베드로를 데리고 감옥에서 나가게 된다.

베드로의 탈출은 그를 위해 교회가 기도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분명한 응답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야고보의 순교와 비교하며 생각할 부분이 아니다.

그러니깐 야고보가 붙잡히고 죽임당하는 것을 방관하셨던 하나님께서 베드로는 당신의 사자를 보내어 살려내신 것으로 야고보보다 베드로를 더 사랑하신다거나, 교회가 야고보 때 보다 베드로를 위해 더욱 간절하게 기도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개인에게 일어난 단편적인 일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일과 또 다른 개인의 일들이 합쳐지고, 연결되어, 진행되는 것으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야고보의 순교는 야고보의 죽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일어나는 또 다른 일들과 합쳐지고, 베드로의 체포로 연결되고, 이후에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복음으로까지 진행되는 것이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베드로 자신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본문 9, 10.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베드로 자신도 당장 그 밤에 탈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갑자기 나타난 주의 사자가 자신을 쳐서 깨웠기 때문에 베드로는 잠이 덜 깬 상태로 보인다.

이런 베드로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그의 구출은 진행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의지로 불가능한 베드로의 탈출을 이루신 것이다.

베드로는 천사가 떠나고 난 뒤에야 자신의 탈옥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인식하게 된다.

본문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하나님께서 헤롯의 헛된 생각, 유대인들의 잘못된 기대가 이루어지도록 그대로 놔두지 않으셨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신을 차린 베드로는 곧바로 성도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본문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베드로가 찾은 곳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베드로가 바로 그곳을 찾은 것으로 보아, 그곳이 초대 교회의 중요한 장소였던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나누었던 곳으로 보이며, 오순절 날 120명의 성도가 기도했던 다락방이 이곳에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마가라 하는 요한은 마가복음의 저자인 그 마가이다.

 

사람들은 마리아의 집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베드로가 그 집의 문을 두드렸다.

본문 13~15.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문을 두드릴 때, 로데라는 한 여자아이가 영접하러 나온다.

그러다가 베드로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이다.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는 것은 그녀가 베드로와 자주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데는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는 너무 놀라서 문을 열어 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기도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간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베드로가 밖에 와 있다고 전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로데의 말을 믿지 않는다.

로데를 향해 미쳤다고 핀잔을 준다.

이 부분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자신들이 기도하고 있었음에도 베드로가 돌아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을 믿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단순히 믿음이 있다’, ‘없다라고 쉽게 말할 수도 없다.

이미 야고보가 순교한 상태이다.

교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베드로 역시 야고보처럼 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했고, 이전에 베드로의 탈옥을 목격했지만.

그럼에도 바로 직전에 일어난 야고보의 순교가 이들에게는 더 크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한 두려움을 아직은 극복하지 못한 인간의 연약함이다.

 

베드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돌아왔음을 전한다.

본문 16, 17.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베드로에게는 긴박한 상황이다.

언제 간수들이 베드로의 탈옥을 알아차리고 그곳으로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렇기에 빨리 형제들을 만나서 하나님의 역사를 전해야 했던 것이다.

성도들을 만난 베드로는 자신을 이끄신 하나님의 역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 일을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전달하라고 말한 뒤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본문에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체적 동생인 야고보를 말하는 것이다.

야고보는 당시에 베드로와 함께 초대 교회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하나님의 이끄심을 전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후에 베드로가 어디로 떠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로마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지만, 대체로 안디옥이라고 보고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첫 번째 탈옥 때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

사도행전 518~21절 상반절.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첫 번째 탈옥 때는 탈옥 후에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았다.

주의 사자가 명 한대로 성전으로 다시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했다.

이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능력을 향한 우리의 반응은 모든 상황에서 동일할 수 없다.

사람이 다르고, 장소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이 필요한 것이다.

첫 번째 탈옥 후에 도망가지 않았던 베드로는 담대한 것이고.

두 번째 탈옥 후에 도망가는 베드로가 믿음이 약해졌거나 겁쟁이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망가지 않았던 것도 주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고, 다른 곳으로 떠난 것도 하나님의 이끄심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로 베드로가 탈옥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 베드로가 갇혔던 감옥에서 큰 소동이 나게 된다.

본문 18~19.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그토록 철저하게 지켰는데도 베드로가 사라져 버렸다.

거기다가 베드로가 어떻게,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헤롯은 자신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이에 헤롯은 로마법에 따라 죄수를 놓친 16명의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여버린다.

베드로의 탈옥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파수꾼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베드로에게 돌릴 수는 없다.

베드로를 탈옥시키신 하나님의 책임도 아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하는, 하나님을 모르는 악하고 무지한 헤롯에게 있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예수님 출생 당시 헤롯 대왕에 의해 많은 유아들이 죽임을 당한 비극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한 헤롯이 저지른 악행이다.

 

우크라이나가 북미와 유럽 국가의 군사 동맹, 즉 나토에 가입하려고 한다는 이유 때문에 러시아가 무력으로 침공하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우크라이나 곳곳이 황폐해졌다.

이것이 자기 나라 국방을 위해 나토에 가입하려고 했던 우크라이나의 잘못인가?

아니면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미사일을 쏘아댄 러시아의 잘못인가?

 

비록 로마법에 따른 것이라고 할지라도 헤롯은 잔인하게 자신의 부하들을 죽였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잔인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런 헤롯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고 보지 않으셨다.

일단 그가 더욱 교만해질 때까지 내버려 두신다.

본문 20~22.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유대와의 경제 교역을 유지하기 위해 헤롯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헤롯은 교만한 모습으로 백성 앞에 서고, 두로와 시돈의 사람들은 그런 헤롯에서 아첨하고 아부하기에 바쁘다.

헤롯의 연설을 듣고는 그를 향해 신의 소리라고 칭송하기까지 한다.

헤롯은 자신에게 드려지는 영광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

본문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교만한 헤롯이 스스로 가장 영광스럽다고 여길 때, 주의 사자가 그를 치게 된 다.

헤롯은 벌레에게 먹히는 부끄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스스로 가장 높은 줄 알았던 헤롯은 가장 작은 벌레에게 먹히며 초라하게 죽게 된 것이다.

 

그에 반해 헤롯이 핍박했던 교회는 주 안에서 더욱 성장하게 된다.

본문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어떤 방해도, 어떤 계략도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를 수는 없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어도.

결국은 주님의 명령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땅끝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누가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땅끝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갈 사역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사도행전의 전반부를 마무리한다.

본문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말씀 마무리.

교회가 한창 성장할 때, 반대 세력으로부터 큰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큰 박해도 하나님의 역사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흥왕하였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여도 주님을 향해 기도하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옥에 가두고, 팔과 다리에 족쇄를 채워도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향한,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후반부에서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까지 전해진 복음이 이제 더 큰 공격을 받으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여정을 나눌 것이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속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할 것이다.

앞으로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나누면서 온 세상에 전해진 주님의 말씀,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그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품어야 할 복음의 사명을 진지하게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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