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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같은 성령이 임하시다.(사도행전 10:44-48)

by TwoTalents 2022. 4. 3.

 

제목 : 같은 성령이 임하시다.

 

본문 : 사도행전 10:44~48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말씀 :

지난주에는 복음의 보편성에 대해 나누었다.

하나님은 만유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는 만유의 구원자가 되신다.

그렇기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나누었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사실, 그러니깐 복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보편적인 것이고...

모든 민족이 들어야 하는 기쁨의 소식이라는 사실에 대해 종지부를 찍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이 증명되게 된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신을 찾아온 이방인을 따라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마침내 주께서 보이신 환상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께서 지셨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한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런 설교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성령께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임하시게 된다.

본문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한창 설교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중간에 성령이 내려오신 것이다.

여러분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가벼운 일이 아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기대를 가지고, 얼마나 집중을 했던지.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은혜받고,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

고넬료만 하더라도 일부러 욥바까지 가서 베드로를 데리고 왔다.

거기다가 베드로 온다고 일가친척에 친한 친구들 다 불러 모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모두 듣기 원한다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선 심정으로 있다고 고백한다.

어서 빨리 말씀을 듣고 싶다고, 말씀에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집중해서 말씀을 들었겠는가?

그러니 설교가 끝나기도 전에 깨달음을 얻고, 마음으로 고백하고, 성령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 밭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부분이다.

마태복음 133~9절에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뿌려진 씨앗이 결실을 보는 것에는 밭의 상태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을 때,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 밭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비유로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고넬료 집에 모여 있었던 이방인들의 마음 밭 상태가 너무나도 좋았던 것이다.

그러니 말씀을 듣고, 설교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유대인들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본문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대를 받고 욥바에서 가이사랴로 갔을 때, 혼자 가지 않았다.

욥바의 어떤 형제들과 함께 갔던 것이다.

그 형제들을 본문에서는 할례받은 신자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할례받은 신자들이란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포기할 수 없다.

할례를 받은 자만이 진정한 유대인이며, 그 유대인에게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할례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할례를 받은 자에게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고, 할례를 받은 자에게만 세례를 베풀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신앙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할례도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

믿음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유대인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워했다는 것은.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셨다는 사실이 부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베드로가 욥바의 형제들을 가이사랴로 함께 데려갔던 이유는 나중에라도 혹시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이방인에게 일어날 믿음의 역사에 대해, 욥바의 형제들을 증인으로 삼기 위해 데리고 갔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버렸다.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신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이들이 확인한 것은 이것이었다.

본문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셨다는 증거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사람이 무조건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언을 했다는 것은 성령의 임재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언 어떤 방언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어떤 학자는 이방인들이 받게 된 방언이 오순절 방언과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깐 알아들 수 있는 말, 즉 외국어를 했다는 것이다.

유대인에게 일어난 역사가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일어난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 안에서 동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들은 본문의 방언은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말한 방언과 같은 것이라고 전한다.

일단 오순절 방언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 방언은 그때가 거의 유일하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사용한 헬라어 단어가 다르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 오순절 방언은 헬라어로 디알렉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의 뜻은 민족의 언어이다.

거의 모든 영어 성경에는 ‘Language’, ‘언어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방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글로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 성경에는 주로 ‘Tongue’이라고 번역하며 혀, , 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배울 수 없는 언어라는 뜻도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기이한 언어라고 번역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주장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그것이 어떤 형식의 방언이든 이방인들에게 내려진 방언을 유대인들이 듣고 성령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두 번째 증거는 그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거짓으로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 오늘날에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를 비즈니스적으로 다니면서 어떤 이해타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것을 겉으로만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사도행전 당시에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지배국인 로마 사람들이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의 신에게 왜 영광을 돌리고, 왜 그 이름을 높이는가?

그것을 거짓으로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오히려 로마 시민이면서 유대인의 신을 높인다고 바보 취급당하고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임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높이고, 주님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욥바에서 온 유대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드로도 이 증거를 통해 이방인에게 임하신 성령의 참되심을 인정한다.

본문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베드로는 지금 이방인들에게 임하신 성령이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들에게 임하셨던 오순절 성령과 동일한 분이심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같은 성령이라는 말이다.

이 부분 때문에 앞서 말했던 방언이 오순절 방언과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본문은 같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성령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똑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이 아니라, 그때든 지금이든 어떤 모습의 역사든지 간에 같은 성령의 임재로 인한 것이라는 말이다.

 

성령이 말씀 중에 이방인들에게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성령을 받은, 믿음의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방인들에게 물로 세례 주는 것을 금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고백한다.

지금까지는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할례받지 않은 이들에게 베풀 세례는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로 인정하신 그들을 사람이 믿음의 형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에 베드로는 행동으로 자신의 선언을 실천한다.

본문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해진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한다.

이는 욥바에서부터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에게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고, 그들에게만 세례를 주게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세례받을 사람이 많다 보니깐, 베드로 자신도 세례를 베풀고 다른 사람들도 세례를 베풀게 했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는 자신이 깨달은 대로 이제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께서도 인정하시어 같은 성령을 체험하게 하신 이방인들을 자신도 믿음의 형제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더 머물러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는 없지만, 정황상 베드로는 욥바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가이사랴에서도 고넬료의 집에 더 머물면서 계속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날마다 자라나는 이방인들의 믿음을 보며, 복음 들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주님의 말씀을 더욱 묵상하고,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말씀 마무리.

오늘 말씀의 제목은 동일한 성령이 임하시다이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셨다.

그 놀라운 사건은 교회의 시작을 알렸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향하여 복음이 거침없이 전파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오순절 때 임하셨던 성령이 고넬료의 집에 모여 있는 이방인들에게 동일하게 임하신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성령을 똑같이 경험하고, 만유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높이며 영광을 돌린다.

이제 이 놀라운 사건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을 향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복음 전파의 시작이 될 것이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임하셨던 성령.

그때 임하셨던 성령과 동일하신 성령이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임하심을 믿고 의지한다.

성령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했던 유대인들처럼.

말씀에 갈급하여 집중하며 말씀 앞에 섰던 고넬료와 그 친구들처럼.

오늘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갈급함으로 말씀 앞에 설 때.

그때와 동일한 성령께서 우리이게 임하시고, 체험하게 하시고, 놀라움으로 영광 돌리게 하실 것을 믿고 확신한다.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위대한 복음을 전파하는 역사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대하며 기도한다.

각국의 경건한 유대인들을 놀라게 했던 성령.

할례받은 신자들을 놀라게 했던 그 성령.

같은 성령이 우리에게, 나에게 임하시어 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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