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이방인에 의한 교회.(사도행전 11:19-30)

by TwoTalents 2022. 6. 5.

제목 : 이방인에 의한 교회.

 

본문 : 사도행전 11:19~30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 하여지더라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말씀 : 

사도행전은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그리고 땅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지난 시간에는 베드로를 통해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에게 말씀이 전해지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러한 때에 베드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한 편에서도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파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내용을 말하고 있다.

수리아의 안디옥이라는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최초의 이방 교회로 인정되고 있는 안디옥 교회의 형성 과정을 전하고 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 지역에 있는 유대인의 교회가 아니다.

이 교회는 성도 대부분이 비유대인인 이방인의 교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방 지역 안에서 최초의 이방인 교회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이 안디옥 교회는 머지않아 이방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중심지가 된다.

 

처음 안디옥 지역에 복음이 들어가게 된 것은 스데반의 순교와 관련이 있다.

본문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기독교인을 향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것 때문에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강제로 흩어지게 된다.

사도행전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임한 박해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이방 땅 곳곳으로 흩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는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까지 오게 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 모여 교회를 이루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본문 20, 21.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구브로는 지중해의 섬이고,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도시이다.

그곳에서부터 안디옥으로 옮겨온 유대인 그리스도인 중에서 이방인에게, 즉 헬라인에게도 예수를 전파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방 민족을 향한 사역에 관한 소식을 간간이 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들도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자로부터 어떠한 메시지를 받았을 수도 있다.

무슨 이유에서건 이방인을 향한 적극적이고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된 것이다.

왜 본격적인 전도라고 표현했냐면, 안디옥에서의 이방인 전도는 사마리아에서의 전도나 에티오피아 내시 혹은 고넬료 가정을 향한 전도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의 경우는 유대인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들에게는 여호와 신앙에 대한 기본적인 베이스가 있는 상태였다.

에티오피아 내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스스로 성경을 읽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읽은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빌립에게 질문을 했던 사람이다.

고넬료 역시 이방인이지만 여호와 신앙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유대인처럼 기도하였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안디옥의 이방인들은 상황이 다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여호와를 향한 믿음이 전무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니깐 안디옥에서의 전도는 기독교 신앙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파한 첫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들 중에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전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일하셨다고 생각해야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주님이 그들을 만지시고,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여셨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놀라운 사건이다.

그렇기에 이방 선교가 분명한 주님의 뜻임이 드러나는 역사인 것이다.

 

이 이방교회, 안디옥 교회의 소식은 예루살렘 교회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본문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안디옥 교회의 소문을 듣고는 그곳으로 사람을 파견한다.

이는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서 열매가 맺혀졌을 때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람을 보내어 확인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도행전 814, 15.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을 사마리아로 보내는 것으로 그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한층 더 깊은 신앙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안디옥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루살렘에서 사역자를 파견하는 것으로 안디옥 교회의 신앙을 확인하고, 그들을 더 깊은 신앙으로 인도하려고 한 것이다.

안디옥으로 파견된 사람은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안디옥 교회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에 적임자였다.

그는 사도들과 사람들에게 신실한 사역자로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이었다.

위로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그의 이름도 사도들이 새롭게 지어준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구브로 출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그리스도인들과 자연스러운 유대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확인하게 된다.

본문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일어난 부흥을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한다.

그렇기에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이방인의 믿음을 인정하였고, 그들을 향해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주와 함께할 것을 권면한다.

이런 바나바로 인해 안디옥 교회는 더욱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본문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합류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는 바나바의 착함과 성령의 충만함, 믿음의 충만함 때문이었다.

 

믿는 자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성령과 믿음의 충만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데 그러면서 꼭 필요한 성품은 착함이다.

본문의 착한은 헬라어로 아가도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선한’, ‘좋은 것’, ‘좋은 일을 나타내는 말이며, 도덕적인 성격을 지닌 단어이다.

그러니깐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착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만약 믿음이 강하고, 성령 충만함은 있는데 도덕적으로 착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신비주의나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반대로 착하기는 한데, 성령에 소홀하고 믿음에 관한 깊은 상념이 없다면, 그저 도덕주의가 되어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 충만함, 깊은 신앙과 함께 착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착함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본다.

우리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이유 중 하나가 착함이 부족해서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 있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만한 교회들이 도덕적이지 못하고, 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니깐 기독교 전체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바나바의 착함은 그의 성령 충만, 믿음 충만만큼이나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가 점점 부흥하면서 당연히 사역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바나바 혼자서 감당하기가 벅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예전에 사도들에게 변호했었던 사울을 찾아간다.

본문 25, 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다소에 머물러 있었던 사울을 불러 안디옥 교회의 사역에 동참시킨다.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집중적으로 펼쳤던 사역은 가르치는 것이었다.

안디옥 교회는 대부분의 성도가 이방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에서는 말씀을 기본에서부터 가르치는 일이 아주 중요했다.

그들은 1년 동안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쳤다.

그 결과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본문의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헬라어로 크리스티아노스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그리스도를 좇는 자를 의미한다.

NIV 영어 성경은 이 부분을 ‘Christian’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뜻하는 ‘Christ’에 접미사 ‘ian’을 붙인 것인데, ‘ian’‘~에 속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니깐 영어로는 그리스도의 속한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바나바와 사울에게 1년여 동안 말씀을 배우면서 말씀을 좇아 살려고, 말씀대로 살려고, 말씀에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았기에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며 불렀던 것이다.

학자들 중에는 안디옥 성도들의 별명인 그리스도인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분명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그들에게서 드러났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분하여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관점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게 바나바와 사울의 사역으로 안디옥 교회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람들이 방문한다.

본문 27, 28.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이들이 안디옥 교회를 방문한 이유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당시에는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이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격려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이 방문했다는 것으로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예루살렘에서도 동일한 기독교 공동체로 완전히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디옥 교회 이방인 성도들도 같은 믿음의 형제, 자매라는 것이다.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 앞에서 주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예언까지 한다.

그들과 함께 주님의 역사를, 주님 주신 은사를 나누는 것이다.

 

아가보의 예언은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는 것이었다.

이 아가보는 후에 사울, 즉 바울이 체포될 것을 예언하기도 한다.

어쨌든 실제로 약 2년 뒤,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 때에 흉년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흉년은 전 세계적이라고 보다는 로마가 지배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한정된 것이었다.

이것은 로마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던 당시의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흉년으로 유대 지역 교회의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본문 29, 30.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흉년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돕기 위해 안디옥 교회가 나선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안디옥 교회의 도움을 받아들인다.

이제는 안디옥 교회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같은 주를 따르는 믿음의 형제, 자매인 것이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로 마음먹을 정도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성장하였고, 양적으로도 풍성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부흥을 한 것이다.

안디옥 교회가 사랑의 마음으로 보낸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는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하나가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이방 땅에서 이방인이 교회를 형성하고, 그 이방인 성도들을 예루살렘 교회가 형제, 자매로 인정하게 되고.

결국 이방인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어려움에 부닥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그렇게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의 교회가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편견을 버리고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편견 없이 안디옥의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전파했던 사람들.

전해진 예수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이방인들.

이방인 새신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말씀을 가르쳤던 사역자.

늘어나는 사역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동참했던 동역자.

교회의 건강한 부흥 앞에 통념을 깨고 이방인을 형제, 자매로 인정했던 믿음의 사람들.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안디옥 교회는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한때, 제도권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분위기에 이끌려 성도 수, 교회 재정, 분기별 전도 인원 등등

가시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목회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었던 모습이었는지.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이었는지.

 

교회가, 전도가 이루어지는 목적은 오직 하나여야 한다.

예수께서 품으셨던 영혼을 향한 사랑, 예수께서 실천하신 인간을 향한 사랑.

그 사랑을 내가 품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 이외의 것이 있다면, 아무리 포장하고, 아무리 거창하게 떠들어도 변질되고 오염된 욕심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도 내 안에서 나를 유혹하는 욕심, 욕망, 정욕을 거부하고...

그저 지금보다 더 풍성한 사랑을 마음에 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마음에 품은 그 사랑을 삶에서 더 많이 실천할 수 있도록 열심을 내자.

그렇게 할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칭찬이 예상하지 못한 열매로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을 믿고 확신한다.

내가 깜짝 놀라도록 신비한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을 믿고 확신한다.

지금도 우리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을 실천하는 나에게 함께하심을 끊임없이 드러내시길, 확실히 알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사람이교회'는 온라인교회입니다.

교회 등록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saramichurch@naver.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