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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 13:1-12)

by TwoTalents 2022. 6. 21.

 

제목 : 땅 끝을 향하여

 

본문 : 사도행전 13:1~12

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 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말씀 :

사도행전 13장부터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바울이라는 사울과 바나바를 대표적 인물로 세우셨다.

특히 바울은 베드로 이후 사도행전의 중심인물이 되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행전 11장에서 소개됐던 안디옥 교회가 다시 등장한다.

다양한 민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안디옥 교회는 점점 성장해 갔다.

본문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본문에서 말하는 선지자와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그런데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역할이든지 이들이 교회의 사역자로, 지도자로 세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장한 안디옥 교회는 다민족 교회라고 소개했던 것처럼 교회의 지도자들도 다양한 민족, 다양한 사람들이 세워졌었다.

바나바는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니게르검은 피부라는 뜻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으로 추측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사람 시므온과 동일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안디옥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마나엔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소개된다.

그렇다면 왕실의 가족이나 친척일 가능성이 커 보이고, 헤롯과 같이 이두매인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울이라는 사울은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사람이다.

이처럼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고, 다양한 사역자가 세워진 안디옥 교회야말로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하는 것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준비된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안디옥 교회를 주님께서 드디어 사용하시려고 한다.

본문 2, 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본문의 주를 섬겨 금식할 때는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던 중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섬겨는 헬라어로 레이톨게오라는 단어로 예배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공동 번역 아예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라고 번역하고 있다.

예배 중에 성령의 뜻이 전달된 것이다.

성령께서 시키실 일을 위해 사역자를 세우시라고 말씀하신다.

그 사역자가 말씀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나바와 이후에 바울이라 불리는 사울이다.

성령께서 이 두 사람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신 것이다.

이방 선교를 위한 임무를 맡기신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뜻에 순종하여 이들에게 안수하고 땅끝을 향한 복음 전파를 위해 그들을 파송하게 된다.

 

그렇게 파송된 바나바와 사울의 첫 선교지는 구브로였다.

본문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왜 구브로를 첫 선교지로 정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바나바의 고향이 구브로라는 것과 관련 있어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성령의 보내심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다는 것이다.

바나바와 사울을 세우신 것도, 그들을 보내시고 인도하신 것도 성령께서 하신 일이다.

결국 성령께서 이 사역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어쨌든 사역자들은 구브로의 주요 도시 중 한 곳인 살라미에서 첫 사역을 시작한다.

본문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그런데 본문을 읽으면 고개가 갸웃거려지게 된다.

바나바와 사울은 이방인을 전도하기 위해 파송되었지 않은가?

그런데 유대인의 여러 회당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이다.

왜 이랬을까?

유대인의 회당은 사울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전도 장소였기 때문이다.

일단 회당에는 유대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은 물론 유대교에 관심이 있거나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도 함께 모여 있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만날 수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도 전도의 대상이다.

 

사울의 선교 전략 중 하나가 회당 중심이다.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각 지역에 세워놓은 유대인들의 회당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울 같은 경우 당시 유명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 공부를 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거기다가 로마 시민권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강론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유대인과 이방을 대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이렇게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바보라는 곳에 당도하게 된다.

이곳은 살라미에서 180km 정도의 거리에 있다고 한다.

본문 6, 7.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그런데 그 바보라는 곳에서 바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를 만나게 된다.

누가는 이 사람을 마술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바예수를 거짓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무래도 간단한 마술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면서 계시랍시고 자기 말을 알려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개역 한글 성경에는 마술사박수라고 번역하고 있다.

박수는 남자 무당을 의미한다.

 

사마리아 땅에도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사도행전 8장에는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했었다.

이 사람은 베드로에게 저주를 받는다.

 

어쨌든 본문의 바예수라는 마술사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그곳의 총독이었던 서기오 바울의 측근이었다.

당시의 지도자들은 종종 개인 마술사를 두었고, 마술사에게 여러 일들에 대해 자문을 구하곤 했다고 한다.

서기오 바울과 바예수는 그런 관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총독인 서기오 바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나바와 사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궁금해 한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왜 듣고 싶어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서기오 바울이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진리를 향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의 소문을 듣고는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궁금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말씀을 들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이 전하는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 것을 마술사 바예수는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해를 한다.

본문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엘루마는 마술사라는 말이다.

그러니 마술사 바예수가 바로 엘루마이다.

본문의 대적하여는 헬라어로 안디스테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대항하다’, ‘저항하다등을 뜻을 가진다.

강력하게 반대하고 방해했다는 것이다.

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도록, 들어도 믿지 못하도록 계략도 꾸미고, 이간질도 하고 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명백한 하나님을 향한 대적이다.

성령의 일을 방해하는 성령을 거스르는 일이다.

사울이 이것을 보고 가만있지 않았다.

본문 9, 10.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본문에서부터 사울을 바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사울이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바울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주신 것이 아니다.

원래 사울과 바울 두 가지 이름을 다 가지고 있었다.

사울은 유대식 이름이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이다.

사울을 로마식 이름인 바울로 부르는 것으로 그의 사역이 이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바울은 성령 충만함으로 악행이 충만한 바예수를 향해 마귀의 자식이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모든 의의 원수라고 선언한다.

왜 이러는 것인가?

바예수가 복음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방해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고, 대적자는 마귀이고, 마귀는 의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바예수에게 바른길을 굽게 하는 일, 즉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일을 당장 멈추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경고와 함께 마술사가 받게 될 징계를 전한다.

본문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악행으로 가득했던 마술사는 성령으로 충만한 바울의 선언대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바울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징계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것인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형벌이 영속적인 것은 아니었다.

마술사가 맹인으로 앞을 보지 못한 것은 얼마 동안만이었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이제 마술사가 선택하여야 한다.

바울처럼 깨달음을 얻고 주님 앞에 엎드릴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적할 것인가?

 

마술사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징계는 총독이었던 서기오 바울이 믿음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문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놀라운 이적을 눈으로 보고 총독은 주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당시에는 이적이 불신자들을 회심시키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이적을 행하셨고, 사도들을 통해서도 이적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적이 사람을 회심시키는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적만으로 회심이 이루어지거나 회심한 마음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기오 바울의 경우에도 진리를 향한, 말씀을 향한 갈급함이 있었다.

그런 그가 주께서 보이신 이적을 체험한 것이다.

그리고 체험 후에는 가르침이 있었다.

건강한 회심은 이 모든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진리를 향한 갈급함이 있어야 이적을 경험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 있어야 이적만을 쫓아다니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말씀 마무리.

대적자의 방해가 있었지만, 바나바와 바울의 첫 사역은 성공적으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사역은 처음부터 성령에 의해 시작되었고, 성령에 이끌려, 성령의 뜻을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령 앞에 바나바와 바울이 겸손하게 순종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성령의 뜻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성령의 이끄심은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신다.

성령의 원하심은 여전히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주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지금도 바나바처럼, 바울처럼 겸손하게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시길 원하신다.

오늘 우리를, 나를 성령께서 따로 세우실 때, 거부하지 않고 겸손하게 순종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나는 아니더라도, 내가 아는 누군가가 성령의 세우심을 받게 된다면, 그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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