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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7 절기

[고난 주간] 수요일 - 향유와 은 삼십.(마태복음 26:6-16)

by TwoTalents 2022. 4. 12.

 

이미지 출처 - 갓피플

제목 : 수요일 - 향유와 은 삼십.

 

본문 : 마태복음 26:6~16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말씀 :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수요일 행적.

사실 마지막 일주일 중에 예수님의 수요일 행적은 정확하지가 않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학자에 따라 화요일 뒷부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목요일 처음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에 대해 요일별로 주제를 말할 때, 대개 수요일을 휴식의 날, 쉼의 날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수요일 행적에 가장 가까운 부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선택했다.

 

오늘 말씀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물질적인 것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 당시 아주 귀한 재물로 여겨졌던 향유와 당시 사용된 화폐인 은 삼십이 등장한다.

이 두 가지 재물 모두 예수님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가지 재물의 쓰임은 전혀 다르다.

 

먼저 한 여자가 들고 온 향유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문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를 들고 왔다고 말한다.

오늘 본문의 평행절인 마가복음 143절 말씀에는 이 향유를 나드향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에 나드향은 매우 귀하고 값이 비싸서, 주로 왕과 같은 고귀하신 분에게 바쳐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향유 한 옥합의 가격이 ‘300데나리온정도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300데나리온은 당시 일반 노동자 한 사람이, 일 년간 벌어들이는 소득과 맞먹는 액수였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에 비춰보면, 적게는 2천만 원에서 많게는 4천만 원 정도 될 것이다.

어쨌든 상당히 고가의 물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본문의 이 한 여자는 이 고가의 향유를 가지고 와서는, 식사하고 계시던 예수님 머리에 부어버리는 것이다.

귀한 내빈에게 향유를 부어 섬기는 것이 당시의 유대 전통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집주인도 아닌 어떤 한 여인이 갑자기 들어와서 머리에 향유를 들이붓는다는 것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상황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을 제자들의 반응이 더 당혹스럽다.

제자들의 반응은 이렇다.

본문 8, 9.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제자들이 화를 내는데, 그 화를 내는 이유가 향유를 왜 허비하느냐?’ 이다.

비싼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게 낫겠다고 여인을 비난하는 것이다.

지금 이들에게 예수님이 보이기나 한 것인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그저 값비싼 향유에 눈이 멀어있다.

예수님 머리에 향유를 바르는 일을 완전한 낭비로 보았던 것이다.

본문의 허비하느냐에 사용된 헬라어는 아폴레이아라는 단어이다.

이 말은 완전한 낭비, 값진 것을 무용하게 모두 소모해 버린 것을 뜻한다.

가난한 자를 들먹이고 있지만, 결국 제자들의 관심은 오직 노동자의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향유, 그 물질에 집착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제자들과 전혀 달랐다.

예수님은 오히려 이 여인을 칭찬하신다.

10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 여인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해서 이러한 행동을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여인은 그저 순수하게 예수께 대한 헌신과 사랑의 표로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당사자인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위로를 받으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시며, 그 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지금 예수님의 입장을 생각지도 않은 채, 욕심에 가득한 마음을 자신들도 모르게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의 평행절인 요한복음 124절에서는 이러한 불만을 주도적으로 표출한 사람이 예수님을 판 제자, 가룟 유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불만을 제지하시고, 이 여인의 행위를 칭찬하신 것을 직접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여인이 보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깨달음이 없었고, 욕심을 버리지 못했고, 변화되지 않았다.

본문 14~16.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은 삼십은 당시에 노예 1명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대제사장들은 메시아를 노예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인 유다는 자신의 스승을 노예의 가격으로 팔아넘긴 것이다.

한 여인이 가져온, 300데나리온의 가치를 지닌 나드향유로 준비된 예수님의 죽음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 가룟 유다의 은 삼십, 노예의 가격으로 진행되어졌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이 한 여인의 향유와 가룟 유다의 은 삼십을 기억하고 묵상한다.

이 여인은 소중한 향유를 주님께 바쳐서 주님을 위로함으로써, 주님께 칭찬받은 아름다운 제자로 모든 믿는 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가룟 유다는 욕심 때문에 눈이 멀어서, 노예의 가격인 은 삼십에 스승을 팔아버린 배신자로, 패역한 제자로 더러운 도적으로 저주와 웃음거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300데나리온과 은 삼십은 현격한 가치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 물질은 가치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물질 앞에서도 우리는 결국 어디를,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300데나리온이라는 엄청난 가치의 향유 앞에서도 사랑의 예수님께 주목했던 베다니 시몬 집에서의 한 여인.

진리로 가르치시고, 더 없이 사랑하셨던 예수님 앞에서도, 오직 은 삼십에 눈이 멀었던 어리석고 불쌍한 주님의 제자, 가룟 유다.

주님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고 있는 이 고난 주간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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