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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참된 기적의 영향력.(사도행전 9:32-35)

by TwoTalents 2022. 2. 20.

이미지 출처 - 트렌드와칭

제목 : 참된 기적의 영향력

 

본문 : 사도행전 9:32~35

32.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지 여덟 해라

34.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말씀 :

오늘 본문에서부터는 회심한 사울의 이야기를 잠깐 멈추게 된다.

사울의 이야기는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로 표기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도 여행으로 다시 이어진다.

그 중간에 베드로의 몇 가지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부르시고, 이방 민족을 향한 복음 전파의 역사를 준비하시는 중에, 베드로도 계속해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는 사방을 두루 다니며 이스라엘 각지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다.

본문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회심 전의 사울과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고 핍박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베드로가 직접 찾아가서 방문했던 것이다.

베드로가 누구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예수님의 빈 무덤을 직접 확인했으며,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식사했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이다.

바람처럼 임하신 성령을 체험하고, 그 성령의 힘으로 삼천 명이 회개하도록 복음을 전파했던 베드로이다.

베드로가 사방으로 다니며 방문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복음의 열매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믿음의 선생, 믿음의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는 베드로가 직접 찾아와서 위로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하지만 그만큼 베드로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집중적인 표적이었다.

베드로는 그러한 위험을 무릎 쓰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방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룻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룻다는 상당히 큰 도시였는데, 이곳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때 한 중풍에 걸린 사람을 만나게 된다.

본문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애니아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에 관한 정보는 단지 중풍으로 몸져눕게 된 것이 8년이 되었다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 정황으로 추측하고, 개연성 있는 상상을 해볼 수는 있다.

애니아는 불신자라기보다는 룻다 교회 공동체 중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본문에서는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내려갔더니 거기서애니아를 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깐 베드로는 룻다의 성도들을 만나려고 그들의 모임에 갔다가 중풍으로 누워있는 애니아를 만난 것이 된다.

그리고 애니아라는 이름은 헬라어 이름인데, 그 의미가 칭찬받는 자이다.

이것이 원래부터 자신의 이름일 수 있다.

하지만 바나바의 선례를 봤을 때, 다른 추측도 가능하다.

사도행전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바나바는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서 어려운 성도들을 섬기는 등 형제, 자매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도들이 요셉이었던 그의 이름을 놔두고 바나바,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애니아의 경우도 교회의 장로들이 그의 품성을 보고 애니아라고 칭찬받는 자라고 새롭게 불러주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애니아는 병으로 인해 불편한 몸이었지만 그럼에도 남다른 신앙을 보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병들어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현실에 불평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을 온전케 하실 주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신실하게 기다렸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형제, 자매가 그를 칭찬하였고, 교회의 장로들은 그를 애니아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따름이다.

 

어쨌든, 이 추측이 맞든 안 맞든 베드로는 중풍으로 힘들어하는 애니아를 만났고,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한다.

본문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베드로도 중풍 병자를 일으킨다.

예수님의 사역이 제자들에 의해 오롯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기적에서 베드로가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먼저는 기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이 기적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8년 동안 중풍으로 힘들어했던 애니아를 자유롭게 하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베드로 자신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애니아를 일으키실 분은 그리스도 예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이 부분을 강조하며 기적의 대상이 될 애니아 역시 이 사실을 망각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종종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사람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여져야 할 것인데, 사람의 이름이 칭찬받고 높아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의도였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오해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부분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추슬러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광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잘못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베드로는 주님의 능력을 확신한다.

낫게 하실 수도 있다’, ‘낫게 해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낫게 하시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어설픈 믿음, 반신반의한 마음으로는 베드로처럼 이렇게 선언할 수가 없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몸소 체험했었고, 자신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킨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경험은 베드로에게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확신은 단순히 기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에 드러날 기적의 유무에 상관없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분명한 사실 앞에 애니아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한다.

더 이상 누워있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누워있던 자리를 정돈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밤새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을 하는가?

이불을 갠다.

잠자리를 정돈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적어도 낮 동안은 더 이상 누워서 잘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애니아가 낫게 되어 일어나게 되면, 이제는 더이상 병 때문에 누워있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웠던 자리를 정돈하라는 말이다.

잠자는 사람이 아니라 깨어 일어난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 선포를 듣고 애니아는 그 즉시 믿음으로 순종한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

8년 동안 누워있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누웠던 자리를 정돈하는 것이다.

기적은 예수님의 능력이 베드로의 믿음으로 중계되었고, 애니아의 순종으로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이 기적은 애니아 개인의 유익이었다.

오직 애니아만 병을 낫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애니아는 병이 낫지 않았다고 해서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적이 이곳 룻다에서 일어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애니아가 8년 동안 중풍으로 고생한 것이 안타까워서일까?

그래서 그의 좋은 신앙에 대한 대가로 낫게 한 것일까?

 

요한복음에는 기적의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요한복음 1114, 15.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예수님께서 너무나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은 바로 나사로에게 가지 않으셨다.

일부러 있는 곳에서 이틀을 더 지체하셨다.

그리고 나사로가 완전히 죽었을 때,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다.

나사로의 죽음이,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기적이 나사로가 아닌 그 기적을 보게 될 다른 사람들을 위함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찾아가 죽어서 무덤에 누워있는 나사로를 살리시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나사로를 살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이미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될, 듣게 될 사람들의 믿음을 온전히 하시기 위함이었다.

기적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 치유, 개인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기적의 주변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사람의 믿음을 위한 것이 바로 기적인 것이다.

 

베드로로 인해 진행된 애니아가 체험한 기적도 마찬가지이다.

애니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 이 놀라운 기적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보고, 들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본문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기적의 자리에서 애니아와 함께하고 있었던 믿음의 사람들에게 더 큰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애니아가 살고 있었던 룻다의 사람들은 회복된 애니아를 보며 놀라워하고 그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를 듣고 알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애니아의 소문은 주변 지역으로까지 퍼지게 될 것이고, 인근 지역인 사론의 사람들까지 애니아에게 일어난 기적을 놀라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애니아라는 개인에게 일어난 기적은 커다란 영향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회개하며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참된 기적의 힘, 참된 기적의 영향력이다.

 

말씀 마무리.

어느 새부터인가 신앙이 너무나 개인주의가 되어버린 것을 보게 된다.

거기다가 교회는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이다.

가족이, 친구가, 믿음 좋은 이웃이 나를 살릴 수 없다.

내가 믿어야 하고, 내가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세상을 향한 믿음의 영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나만 잘 살고, 나만 병 낫고, 내 일만 잘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세상을 향한 사랑이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나의 일, 개인의 일만이 믿음의 모든 것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렇게 성도가 개인주의에 젖어 있으니깐, 교회 자체가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교회에서 행하는 일을 보며 기적이라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영광 돌리면서 주님께로 돌아오는 불신자가 몇이나 되는가?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외치지만, 주님의 기적이라고 놀라워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향해 불법을 행하고 있다고 손가락질한다.

이기적인 모습이라고, 세속의 욕망과 다르지 않은 교회의 욕심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에 대해 뼈아프게 고민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무엇이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영광인가?

큰 건물을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가?

많은 헌금으로 재정이 넘쳐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가?

그저 사람들이 차고 넘치도록 모여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가?

그럴 수 없다.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도 자꾸만 인간의 생각, 인간의 기준을 가지고 양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통해 영광 돌리려고 하고 있다.

이러니 하나님께는 영광이 아니고, 세상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도 못하는, 자기들만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전한 사랑이 전해지고 실천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놀라워하며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교회는 작아지고 초라해져도 크신 하나님의 이름이 더 높여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나는 낮아지고 약해지지만, 높으신 하나님, 강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이 온전히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그 영광에 놀라워하며 세상 사람들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께 영광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주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믿음으로 세상을 향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며, 나로 인해 주님이 칭찬받은 기막힌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참된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고, 그 영광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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