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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복음은 기쁨이다.(사도행전 8:4-8)

by TwoTalents 2021. 12. 20.

제목 : 복음은 기쁨이다.

 

본문 : 사도행전 8:4~8

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말씀 :

지난주 말씀에서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 교회로 가해진 박해가 있었음을 나누었다.

그 박해 때문에 교회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교회의 흩어짐이 표면적으로는 유대인들에 의한 박해가 이유였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흩으심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흩어진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본문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하나님께서 흩으신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명령을 이행하게 되었다.

그들은 가는 곳곳마다 자신들이 간직한 복음의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두루 다니며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헬라어로 디에르코마이라는 단어로 돌아다니다’, ‘어디든지 가다’, ‘뚫고 지나가다’, ‘여행하다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깐 정착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은 도망가게 된 어느 특정 장소에 마음 편하게 정착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다.

9장에서 얘기하겠지만, 앞서 소개되었던 사울도 제사장에게 권위를 받아서 그리스도인을 잡으려 다메섹까지 가는 일이 일어난다.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한곳에 정착할 수가 없었고, 언제 들이닥쳐서 자신들을 체포할지도 모를 사람들을 피해서 두루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에 잠깐이라도 머무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는 말이다.

지난주 설교에서 교회가 박해가 두려웠고, 그것 때문에 도망간 것이 맞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도망가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믿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었다.

마찬가지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박해를 피해 생명을 보존하려고 도망 다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성도의 심령에는 여전히 그리스도가 있고, 여전히 성령이 있으며, 여전히 복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밟는 그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위기의 시간에도 믿음의 사람들은 본질을 놓치지 않았고, 온전히 주님의 뜻을 실천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지상위임명령의 두 번째 단계인 사마리아의 복음 전파가 소개된다.

본문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본문의 빌립은 사도 빌립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따로 세웠던 일곱 명의 사역자 중 한 명인 빌립을 말한다.

그 빌립도 교회에 가해진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는데, 그가 떠나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사마리아 성이었던 것이다.

사마리아 성이 정확하게 어디를 지칭하는 것이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가 정확하게 어디인가를 따지기보다는, 어쨌든 그곳이 유대인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사마리아 지역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루살렘에 이어 두 번째로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명령이 주어졌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사마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할 당시, 북이스라엘에 남았던 사람들과 그곳으로 이주한 이방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순수한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남유다 사람들은 그들을 배교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았었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했고,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유다 사람을 싫어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절반 정도는 피가 섞였다고 할 수 있는 이 두 민족이, 이런 대척점을 가지고 결국은 원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대인이 사마리아에 전한다는 것은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의 사마리아 사역은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복음이 전파되지 못할 곳이 없고, 복음을 들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조금 바꾸어서 표현하면, 어느 곳이라도 복음은 전파되어야 하고, 누구라도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 전파에는 지역적으로나, 신분적으로 결코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으로 믿고, 예수를 주라고 입으로 시인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빌립의 사마리아 사역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본문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빌립은 먼저 복음을 전파한다.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주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유대인인 빌립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내용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빌립은 복음을 전함과 함께 표적을 행함으로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권위를 실었다.

당시에는 표적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표적은 단순히 신기한 기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표적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증명하는 도구였다.

예수님께서도 병을 고치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신 그러한 표적들로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 되심을, 메시아이심을 증명하셨다.

그렇기에 표적은 표적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표적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 무엇이냐를 살펴야 한다.

빌립을 통해 나타난 표적도 마찬가지이다.

표적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 놀라운 표적으로 빌립이 전하는 복음에 권위가 실리고, 듣는 사람들이 그것을 진리로 인정하게 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빌립이 보여준 표적은 이런 것이었다.

본문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빌립에 의해 나타난 표적은 예수님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

이것은 사도들의 사역이 그러했던 것처럼, 빌립의 사역 역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부분이다.

빌립이 보여준 표적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병자를 낫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영적인 문제와 육적인 문제를 모두 다루었다는 것이다.

귀신에 의해 영혼이 속박된 자에게 해방을 주었고, 병으로 인해 육체가 속박된 자에게 자유함을 준 것이었다.

표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표적을 원하는 그 시대에 결핍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부분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주목하게 하고 따르게 했던 것이다.

이런 빌립의 사역은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본문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쉽게 드러내 놓지 못했던 자신들의 아픔이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것만 기쁜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당시의 표적은 증명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지금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 그러니깐 빌립이 전하는 복음이 귀신들린 자와 병자들이 온전하게 되는 표적으로 진리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기뻤던 것이다.

자신들이 들은 복음이 표적을 통해 진리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 복음이 진리이기 때문에 이제 들은 복음의 가르침 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천국이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이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기쁨이 있어야 하고, 듣는 이들에게 기쁨이 되어야 참된 복음인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려하는 장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잘못 들은 것인가?

아니다.

이 또한 올바른 모습이다.

죄인인 우리가 진리인 복음을 처음 듣게 되면 찔리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복음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찔리는 마음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 안에서 찔리는 그 마음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서도 마음으로 찔렸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질문한다.

그 질문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찔리는 마음을 뉘우침으로 승화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도 받으라고 가르친다.

찔리는 마음을 회개하는 것으로 결국은 죄 사함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복음을 들은 자들의 기쁨은 너무나도 중요한 믿음의 요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쁨 때문에 머지않아 고난을 당해야 한다.

그 기쁨 때문에 세속과 원수 되어 살아야 한다.

그 기쁨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 기쁨 때문에 사울과 같은 이들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한다.

하지만 이 기쁨이 크면 클수록, 강한 확신으로 모든 고난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마리아 성에 복음으로 기쁨을 전했던 빌립은 정작 자신도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도망쳐 나온 상태이다.

언제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또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항상 긴장하며 도망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긴박한 중에는 그는 기뻤던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받고, 숨어야 하고, 도망 다녀야 하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감당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받는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주어지는 상급이 크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도망자이면서도 기뻤고, 자신이 진정으로 기뻤기 때문에 기쁨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도 함께 예배하는 예배공동체 여러분.

복음은 기쁨이다.

복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어떻게 생명에 이를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너무나도 좋은 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기쁜 소식이며, 기쁨 그 자체이다.

우리는 복음을 들은 사람, 복음을 품은 사람으로서 우리 안에 온전히 기쁨을 간직해야 한다.

그 기쁨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향한 확신,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그 어려움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내가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언제 다시 처하게 될지 모르는 어려움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아니 기뻐할 수 있다.

주님은 바울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로마서 838, 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난이, 박해가, 어려움이, 재난이, 슬픔이, 두려움이.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끊을 수 없다.

이 사실을 믿고 확신하는가?

이 믿음으로 우리는 어제도 기뻐했고, 오늘도 기뻐하며, 내일도 기뻐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1년의 마지막 달을 살아가는 오늘...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자제를 해야 한다.

곳곳에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다.

이 놀라운 복음을 믿는가?

그렇다면, 그 믿음으로 어려움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에게 복음의 확신을 주시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세상이 기이히 여기는 기쁨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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