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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교회가 기뻐해야 하는 것.(사도행전 5:33-42)

by TwoTalents 2021. 11. 14.

제목 : 교회가 기뻐해야 하는 것.

 

본문 : 사도행전 5:33~42

33.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 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말씀 :

오늘은 사도행전 533~42절까지를 본문으로 교회가 기뻐해야 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지난 본문에서 다시 붙잡힌 사도들이 공회에 끌려가 협박을 당했었다.

사도들이 받은 협박은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협박을 사도들이 받아들였는가?

아니다.

이미 성령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사도들에게 그들의 협박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되레 공회가 복음전파를 방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하였다.

 

오늘 본문은 이 이후부터 시작된다.

사도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협박을 무시하고, 거기다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방해하고 있는 것이라는 식의 표현을 하니깐 공회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한다.

본문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본문의 없이하고자는 헬라어 아나이레오라는 말로 없애버리다’, ‘사형에 처하다’, ‘죽이다등의 뜻을 가진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도들을 죽이려는 것이다.

스승인 예수그리스도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제자인 사도들에게도 온갖 억측으로, 누명을 씌워서라도 죽이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지금 공회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직, 간접적으로 사도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이적들을 체험하였다.

사도들에 의해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다.

붙잡아 가두어 놓은 감옥에서 사도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기도 했다.

거기다가 없어진 사도들이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체포되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계속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쯤 되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사도들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당연히 궁금해야 한다.

공회의 일원들은 당시의 민족지도자이며 종교지도자들이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 것인지, 그들이 증거하는 예수가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맞는지 검증을 해봐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단지 사도들을 협박했고, 그 협박을 받아들이지 않은 그들을 죽이려고 한다.

왜 이러는 것인가?

이들은 안정을 바랬기 때문이었다.

어떤 안정을 말하는 것인가?

이스라엘 민족의 안정인가?

그렇지 않다.

로마의 빌붙어서 누리고 있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로마의 심경을 거스르지 않고, 자신들이 누리는 평화, 그 왜곡된 안정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지나치게 따르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며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 사이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예수의 제자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 일을 제지하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본문 34, 35.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사두개인처럼 당시의 이스라엘에서 영향력을 가졌던 또 하나의 세력이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도 사두개인과 함께 공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바리새인 중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나선 것이다.

그는 사도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면서 이전에 있었던 비슷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본문 36, 37.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예수 이전에도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인물들은 일어났었다.

그들 중에서 가말리엘은 드다유다라는 자가 일어났던 일을 제시한다.

두 경우 모두 잠시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은 흩어져 소멸하고 말았다.

더 이상 그들을 따르는 백성이 없으며,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않고 있다.

가만 놔두었더니 밑천 다 드러나고, 자동적으로 없어져 버렸다.

그들은 실패한 것이다.

 

이어서 가말리엘은 이렇게 전한다.

본문 38, 39.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가말리엘은 사도들이 펼치고 있는 예수 운동의 근원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사도들의 복음이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그들도 드다나 유다의 경우처럼 잠시 지지를 얻더라도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사도들의 가르침이 하나님에서부터 난 것이라면, 그때는 억지로 막으려고 해봤자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을 죽이지 말고, 그냥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혹시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가말리엘의 조심성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가말리엘이 예수님을 향한 작음 믿음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사도들의 사역을 보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목회자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가말리엘은 사도들이 가짜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역사 속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졌던 가짜들처럼, 사도들이 벌이는 예수 운동도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자기들 손에 피 묻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가말리엘의 제안을 공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본문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가말리엘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도들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일단 접어둔다.

하지만 사도들을 그냥 곱게 풀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공회는 그들에게 채찍질을 가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며 다시 한번 협박한다.

사도들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 핍박과 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협박, 위협 따위가 지금의 사도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본문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무슨 말인가?

사도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있다.

자신들이 채찍질 당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예수님 때문에 협박받고 위협받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예수를 위한 것이라고 믿으며,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도대체 사도들은 무슨 근거 이런 확신을 하고 있는 것인가?

너무 아프게 맞아서 정신이 이상해진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도들은 능욕을 당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났던 것이다.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게 하셨던 것이다.

마태복음 511, 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사도들이 받게 될 박해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박해는 그것을 감당하는 사도들에게 오히려 복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깐 당연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비록 제자들이 박해를 받을지라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상급이 하늘에서 주어질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렇기에 사도들은 공회의 협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본문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의 복음전파는 언제라도 멈춰지지 않았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그들이 어느 곳에서라 무엇을 하든지.

기회가 주어지는 모든 곳에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가르치고 전하였다는 것이다.

공회의 무리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멈추기 위해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사도들을 협박했고, 가두었고, 채찍질하였다.

하지만 복음의 전파는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더욱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가말리엘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예언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가말리엘의 입술을 통해 소멸하지 않고 더욱 확장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짜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말씀 마무리.

오늘 본문에는 크게 두 무리가 등장한다.

복음을 막으려는 공회와 복음을 전파하려는 예수님의 사람들, 바로 사도들이다.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너무나 달랐다.

공회는 로마를 두려워했고, 로마의 눈치를 보며 복종하였다.

사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공회는 자신들이 기득권을 누리는 현재의 상태, 그 상태가 계속되기를 원했고, 그것을 기뻐하였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능욕 받기를 원하였다.

그 능욕 받음으로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게 되는 것을 기뻐하였다.

공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진리도, 말씀도, 백성의 이로움도 과감하게 내팽개쳐 버렸다.

사도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합당함을 위해 협박을 당하여도, 채찍에 맞아도 더욱 열심히 진리를 가르치고 전하였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교회가 기뻐해야 할 것이었다.

공회의 일당과 사도들 중에서 어느 쪽이 교회인가?

당연히 사도들이 교회이다.

그렇다면 교회인 사도들이 기뻐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교회는 예수의 이름 때문에 능욕 받는 것을 기뻐하였다.

능욕 받음으로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을 기뻐하였다.

예수의 이름으로 능욕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믿음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합당하게 여기심 받음을 기뻐하는 것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기뻐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어느 때라도, 어느 곳에서도, 어떤 위협을 받아도 예수그리스도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포기하지 않는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만약 교회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받는 능욕을 원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만을 기뻐한다면.

하나님께 합당함을 인정받기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성공한 교회라고 인정받는 것을 기뻐한다면.

하늘나라의 상급을 소망하지 않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고, 높아지는 것을 기뻐한다면.

생명 다해 진리를 지키기보다는, 진리가 왜곡되더라도 자신들의 지위가 유지되는 것을 기뻐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교회를 대적하고, 복음을 방해했던 공회의 일당, 대제사장의 무리와 같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도 함께 예배하는 예배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교회인가?

우리가 교회이다.

교회인 우리가 당연히 예수의 이름 앞에 나의 생명을 던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능욕당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그 능욕당함으로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것이 기쁨이 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고난 속에서도 날마다 모든 곳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는 진정한 교회, 사람이교회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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