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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교회의 매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사도행전 5:12-16)

by TwoTalents 2021. 10. 27.

 

제목 : 교회의 매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본문 : 사도행전 5:12~16

12,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말씀 :

오늘은 본문 말씀을 나누면서 교회의 매력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한다.

보통 매력이라고 하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향해 저 사람에게는 이런 이런 매력이 있어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하고자 하는 교회의 매력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교회가 가진 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매력을 얘기할 때, 교회의 매력은 교회만이 가진 힘, 세속적인 것과는 차별된 매력이어야 한다는 것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굳이 교회를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똑같은 매력이 교회뿐만 아니라, 절에도 있고, 동아리에도 있고, 계 모임에도 있다면 특별히 교회를 찾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세속적인 것과는 다른, 예수님을 닮은 우리, 바로 교회만이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매력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지난 본문과 오늘 본문은 안으로는 교회가 정립되고, 밖으로는 복음이 퍼지는 시기를 그리고 있다.

오늘 본문은 복음이 퍼져 나가면서 열매가 맺혀지는 과정을 포괄적으로 나타낸다.

 

지난주에 나누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교회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일이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루어졌었다.

본문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본문의 민간이라는 말은 무리’, ‘백성들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사도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 표적과 기사가 무리와 백성들 사이에서 계속적으로 많이 일어났었다는 말이다.

이 당시에는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며, 또한 복음의 증거로 사람들에게 드러났던 것이다.

지난주 본문의 마지막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온 교회와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저 두려움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 경외함은 대적에 대한 담대함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과 두려움으로 함께하기 때문에 더 이상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24, 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대적들의 하찮은 힘은 이제 무섭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성도들은 한마음이 되어 솔로몬 행각에 모일 수 있었다.

그곳은 성전의 일부분이며, 이 성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소굴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베드로와 요한은 이곳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혔던 이력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담대함으로 이곳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하지만 같은 표적과 기사를 체험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본문 13, 14.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사도들을 통해 이루어진 표적과 기사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그런데 그 두려움에 대한 반응은 같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두려움으로 감히 사도들과 상종을 하지 못하였다.

사도들과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는 말이다.

사도들이 보인 표적과 기사는 백성들이 칭송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도들과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두 가지의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첫 번째는 사도들과 대척점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두려움이다.

그 종교 지도자들이 실권자이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표적과 기사, 그것으로 인한 백성들의 칭송 때문에 사도들을 향한 제재를 못 할 뿐이지.

기회만 생긴다면 언제라도 예수님 때처럼 잡아 가둘 힘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눈 밖에 날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표적과 기사를 통해 마음으로는 확신하며 교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 했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그 마음을 실행하지 못하고, 그저 방관자로, 구경꾼으로, 3자로 있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두 번째는 교회에 관한 잘못된 이해에서 온 두려움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에 관한 소문을 듣기는 들었는데, 진실, 헌금, 구제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마치 바나바처럼 무조건 전 재산을 다 교회에 바쳐야 한다든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조금 남겼다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든지...

진실된 내용은 잘 모른 채, 잘못된 정보, 가짜 뉴스가 사람들을 오해하게 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오히려 사도들과 거리를 두게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실권자들을 향한 두려움이던, 오해로 인한 두려움이던.

표적과 기사를 보았어도, 그때 임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도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주께 나아오게 되었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회가 확장되고, 성령께서 계속 행동하시며 역사를 이루셨던 것이다.

그것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베드로를 찾아오게 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본문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복음서에 기록된 소위 중풍병자와 네 친구에 관한 에피소드를 잘 아실 것이다.

한 중풍병자를 위해서 네 명의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나아온 이야기다.

마치 그때처럼 사람들이 병든 사람을 메고 베드로를 찾아 거리로 나온 것이다.

거기다가 사람들은 베드로가 직접 만지거나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베드로의 그림자만 덮이게 되더라도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믿게 된 것은 분명히 베드로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기적과 같은 역사를 사람들이 보고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놀라운 표적과 기사 자체가 아니다.

이 표적과 기사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기에 중요한 부분이다.

베드로의 사역은 스승인 예수그리스도와 온전히 연결되어 있다.

마가복음 527, 28.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마태복음 1435, 36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베드로와 사도들의 사역은 이런 예수님의 사역을 기초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사실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에게 주님의 사역이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을 통해 단절 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으로 죽으셨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으며, 성령을 보내시어 제자들을 통해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세상의 마지막 때에 반드시 다시 오셔서 세상의 왕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들이 놀라워하는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가 바로 예수님에게서 이어진 것임을 알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메시아가 분명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 놀라운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로 퍼지게 된다.

본문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는 표적과 기사의 소문이 근처의 다른 성읍에도 퍼지게 된 것이다.

이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교회로, 사도들에게로 모여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병든 자이거나 병든 자의 가족들이다.

이들에게 소문으로 들리는 표적과 기사, 즉 병든 자가 치유 받고, 귀신들린 자가 온전하게 된다는 기사는, 그것 자체가 바로 복음인 것이다.
이들은 복음을 듣고 교회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였으며, 자신들의 병을 치유 받는 것으로 그 복음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다시 처음에 제시했던 전제를 생각해 보겠다.

오늘 말씀의 전제가 무엇이었는가?

교회의 매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였다.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하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프로그램?

큰 건물?

최고급 시스템?

엄청난 자본?

체계화된 전도 조직?

이런 것들로 인해 사람들이 모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일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무리는 모래 위의 집일 뿐이다.

 

본문을 통해 여러분은 복음이 확장되고 있는 초대 교회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하였는가?

 

저는 본문에 나타난 초대 교회를 통해 두 가지 매력을 발견하였다.

첫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얻게 된 세상을 향한 담대함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결코, 거짓과 죄와 불의와 함께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심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체험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죄인 된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려움, 즉 하나님에 대한 제대로 된 두려움은 세상을 향한 담대함으로 나타나게 된다.

초대 교회는 불의한 세상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

앞서도 밝혔듯이 내가 두려워하는 하나님께서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신 하나님,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더 이상 대적을 피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일조했던 그들의 소굴로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담대함과 더불어 교회가 보여준 두 번째 매력은 사랑이 필요한 자들에게 참된 사랑으로 함께 했다는 것이다.

사도들을 통해 일어났던 표적과 기사는 사람들을 주목시켰고, 그들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약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이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들과 함께했다.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위해 노력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에 최선을 다했다.

사도들은 대적들에게 협박을 받았었다.

대적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며 위협하였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럴 수 없다.

? 대적들의 위협보다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사랑을 실천할 수밖에 없었다.

예루살렘은 물론 근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 앞에 함께 고민하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헤쳐나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렇게 초대 교회가 보여준 두 가지 매력은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사역,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온전히 따르는 교회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교회로 모여들게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는 이런 매력이 있는가?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진정으로 두려워하며, 세상의 불의에 담대히 맞서고 있는가?

약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낮은 자, 없는 자와 교회가 함께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가?

예전에, 옛날에 이런 말, 다 접고.

2021년 대한민국의 교회는 예수님을 닮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불의한 권력, 쿠데타 정권에 빌붙어 자신들의 안정을 유지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를 지금도 회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잘못된 권력의 주체가 되려고 한다.

겉으로는 자선하는 모습으로 약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처럼 위선을 떨었지만, 실상은 부자들과 함께하려고, 그들의 돈을 구걸하는 추잡스런 모습을 보여왔다.

부자들이 예수 잘 믿어서 좋은 대학 갔고, 십일조 잘 내서 사업에 성공했다는 거짓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왔다.

그러면서 그들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기쁘게 받아먹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표성을 가진 많은 교회가 그러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매력, 예수님을 닮은 그 매력을 오늘날 교회를 통해 느끼는 세상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윌리엄 바클레이라는 스코틀랜드의 목사이자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기독교를 전파하는 방식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람들과 논쟁하여 그들을 기독교로 끌어들이라고 보내시지 않고, 여전히 그들을 기독교로 끌어들이기 위해 위협하시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기독교의 매력을 보게 하신다. 그 열매가 너무 아름다워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갈망하도록 그렇게 살라고 우리를 보내신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그리고 함께 예배하는 모든 예배공동체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매력은 예수님을 닮는 것에 있다.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를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주님의 길을 따르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만이 가질 수 있는, 아니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매력인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불의 앞에서 담대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 낮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우리이길, 가난한 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우리이길, 약한 자를 높이는 우리이길, 소외된 자와 친구가 되는 우리이길.

그렇게 주님을 닮은 매력을 가진 우리이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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