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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메신저를 공격하고 위협하다.(사도행전 4:1-22)

by TwoTalents 2021. 9. 19.

 

 

 

제목 : 메신저를 공격하고 위협하다.

 

본문 : 사도행전 4:1-22

1.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말씀 :

지난 본문에서는 성전 미문에서 평생 구걸하며 살고 있었던 앉은뱅이 걸인이 일어나 걷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그 기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복음의 방해꾼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했고, 계속 대적하는 자들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들이 복음을 어떻게 방해하는지가 드러나고 있다.

본문 1~3.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베드로와 요한이 한창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 등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종교지도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사두개인들이다.

사두개인을 짧게 설명하자면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당시의 종교지도자이면서 최상위 기득권층이었다.

사두개인은 로마 정권에 빌붙어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우리로 친다면 일본강점기 때 신사참배 했던 목회자들, 그래서 일본의 보호를 받았던 종교지도자들이나, 아니면 군사독재 시대 때, 독재정권에 빌붙어서 교회 키웠던 목회자들...

이런 자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어쨌든 앞서 말 한대로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데,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부활을 전하고 있으니깐 당연히 싫은 것이다.

거기다가 그 부활의 대상이 누구인가?

예수그리스도이다.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전하고 있으니깐 더 문제인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바로 자신들이 이단자로 몰아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갈릴리 청년이다.

그런데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게 되는가?

예수는 진짜고 예수를 죽인 자신들은 가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사두개인 입장에서 예수는 절대로 부활하면 안 된다.

아니 사람들이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듣거나, 알거나,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도들을 잡아다가 가두어 놓는다.

하지만 이미 전파된 주님의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본문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목격하고, 사도들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약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오천 명이란 수도 오직 성인 남자만을 개수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복음 앞에 무릎 꿇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 일로 사도들은 붙잡히게 되었고, 다음날 공회 앞에 서게 된다.

본문 5~6.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지금 본문에 나오는 이 멤버들이 어떤 멤버인가?

예수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십자가형을 당하게 했던 그 멤버들이다.

그들이 다시 모여서, 예수님의 제자이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 앞에 세운 것이다.

이들은 사도들에게 질문한다.

본문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들의 관심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일어났던 기적에 있다.

왜냐하면, 그 기적 때문에 사람들이 모였고, 그 기적 때문에 베드로의 말을 들었으며, 그 기적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남자만 오천 명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기적이 분명한 팩트이기 때문에 그것의 실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한다.

본문 8~10.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먼저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대답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마태복음 1018~20.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제자들을 향해 세상의 권세자들 앞에 끌려가서 복음에 대해 변호해야 할 때가 생긴다는 말씀하셨다.

그때 두려워하지 말 것은 아버지의 성령이 함께하셔서 말씀하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의 그 말씀대로 베드로가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났던 일에 대해 착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 일은 착한 일이기 때문에 자신을 가두었던 것은 부당한 일임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베드로는 너무나도 담대하게 그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막힌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예전에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쳤던 겁쟁이 베드로는 더 이상 없다.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베드로만 있을 뿐이다.

 

베드로는 더 나아가 대적자들이 인정하지 않고 버린 돌처럼 취급했던 예수의 머릿돌 되심을 전한다.

본문 11, 12.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을 중심으로 한 사두개인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모함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다.

하지만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주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러한 담대함은 물론, 그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까지 그 모든 것은 대적자들에게는 커다란 놀라움이었다.

본문 13, 14.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사도들의 말투나 행색을 봐서 저들은 분명히 갈릴리 촌 동네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가 살아있었을 때, 예수를 쫓았던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이들은 랍비의 교육을 받은 적이 전혀 없을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너무나 담대해서 놀랐고, 거기다가 그저 담대할 뿐만 아니라 전하는 메시지의 깊은 내용 때문에 또 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병 나은 사람, 40여 년간 앉은뱅이로 살다가 일어나 걷게 된 사람이 사도들과 함께 있다.

계속 함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집에 있던 사람을 공회에서 확인차 부른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쨌든 부인할 수 없는 증인, 모두가 인정하는 증거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무작정 비난만 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의 의도와 다르게 상황이 곤란해지자 이들은 사도들을 내보내고 자기들끼리 비공개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본문 15~17.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대적자들은 회의를 통해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

이미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넘어가 버렸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뾰족한 수가 없다.

너무나도 확실한 증인, 증거가 있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심지어 자신들도 사도들을 통한 기적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적이 사실이고 말고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 했던 것처럼, 모함을 해서라도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영향력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일 뿐이다.

 

하지만 메시지가 너무나도 확실했기 때문에 메시지 자체를 공격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본문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본문의 경고하여는 헬라어로 파랑겔로라는 말로 명령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도무지는 헬라어로 카돌루완전히’, ‘전혀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니깐 예수의 이름을 아예 입밖에도 내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어떻고, 저떻고 간에 예수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메신저를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협박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지금의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전혀 먹히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본문 19, 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것이다.

그거다가 사도들은 자신들의 스승이 대적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대립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분명하게 목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결코,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임을 당당하게 선언한다.

 

관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대충 협박하면 될 줄 알았다.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협박이 거의 먹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가 말썽을 부리더니, 이제 그 제자들이 또 이러고 있다.

목숨까지도 불사하고 있으니깐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이다.

본문 21, 22.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한번 사도들을 위협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관리들은 자신들의 위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도들에게 허무한 협박을 한 번 더 하고는 그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22절에서는 앉은뱅이였던 사람의 나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것으로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병으로 고통받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또한 그가 일어나 걷게 된 것이 속임수가 아닌 확실한 사실임이 증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회로 모인 사람들도 기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민심을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씀 마무리.

명백한 증거 앞에서 대적자들은 메시지 자체를 공격할 수 없었다.

40여 년 동안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그 앉은뱅이는 자신들도 자주 봤던 사람이다.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 중에서 그가 확실한 앉은뱅이였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앉은뱅이로 구걸하던 그가 일어나고, 걷고, 뛰었다.

그러니 이 이적이 속임수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이 놀라운 이적의 근원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메시지를 가짜라고 공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대적자들이 선택한 방법이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다.

메신저를 흔들어서 더 이상 메시지가 전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메신저를 겁박하고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계속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약 메신저가 입을 다물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이 전한 메시지는 얼마 가지 않아 잊혀지게 될 것이 뻔하다.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이슈로 사람들의 시선을 옮겨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복음의 메신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먼저는 성령 충만함이다.

성령 충만함으로 내가 아닌 성령이 말씀하시게 해야 한다.

성령 충만함으로 말해야 베드로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통해 보았던 것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들었던 것들.

그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나를 대적하는 이들의 공격을 피하려고, 조금이라도 변형하는 순간 더 이상 성령 충만함이 아니며, 온전한 담대함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타협일 뿐이다.

 

말세가 점점 깊어질수록,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의 방법이나 형태가 점점 지능적이고, 그러면서 저질스러워지고 있다.

우리가 더욱 성령 충만함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며, 예수님을 통해 보고,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 온 세상 곳곳에서 하나님의 이름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 그들 모두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성령 충만함, 담대함, 말씀의 분별력을 허락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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