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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일어나 걸어야 한다.(사도행전 3:1~10)

by TwoTalents 2021. 9. 5.

제목 : 일어나 걸어야 한다.

 

본문 : 사도행전 3:1~10

1.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말씀 :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배우지도 않은 언어로 하나님의 일을 얘기했었고, 베드로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며 복음을 전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는 또 한 번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오늘 본문에는 믿을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데, 성경은 그를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다고 소개한다.

본문 1절과 2.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사도행전의 다른 부분에서 이 사람의 대략의 나이가 나타난다.

사도행전 4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오늘의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40여 년간을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이 사람은 혼자서 삶을 살아갈 수 없었다고 봐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나마 이 사람이 어릴 때는 좀 나았을 것이다.

그래도 부모가 있었을 테니, 엄마나 아빠가 시중들면서 보호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가 문제인 것이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걱정이 무엇인가?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누가 이 아이를 돌봐 줄 것인가 아닌가?

그래서 극단적으로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절대로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주인공도 이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것 같다.

또한, 그가 구걸한다는 것을 봐서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하더라도, 지출만 하다가 결국은 가난해졌을 것이다.

형제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있었다고 해도 그는 형제들에게 짐만 될 뿐이다.

어쨌든, 지금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고 그는 외톨이이다.

 

이 정도면 그에게 있어서 사회생활이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대이다.

당시에 경제적 활동이란 것을 이 사람이 할 수나 있었겠는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이라는 것이 바로 구걸이다.

그러니깐 오늘의 주인공은…….

나이 40여 세가 된, 남자 독신 앉은뱅이 신체장애인인 거지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일 구걸 장소인 성전의 미문이라는 곳에 그를 메어다 두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친구일 수도 있고, 아니면 도와주는 대신 구걸하는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가 선택했든지, 아니면 그를 메어다 두는 사람들이 선택한 것인지, 그들은 구걸의 장소로 성전을 택하였다.

구걸 장소로 성전을 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는 곳이니 비교적 인심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성전 미문에 앉아서 사람들을 향해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올라갔었고, 그것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었던 이 불혹의 앉은뱅이 거지 총각이 본 것이다.

본문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그가 먼저 봤다.

그리고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구걸을 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누구인지 이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다.

바로 얼마 전에 예수라는 한 청년 때문에 예루살렘이 소동이 일어났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는데, 그의 시체가 사라졌고, 제자들은 그 예수가 부활하고 승천했다고 주장한다.

그 일의 최 일선에 서 있는 베드로와 요한이다.

웬만하면 알아볼 법도 한데, 이 앉은뱅이 노총각은 전혀 모르고 있다.

이 마흔 살의 앉은뱅이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전쟁이었을 것이다.

오늘 구걸하지 못하면 굶어야 했고, 그렇게 되면 내일도 어찌 될지 모르는 그런 삶을 살았다.

매일 매일이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요,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니깐 그런 그에게는 자신과 상관없는 소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누구인지? 요한이 뭐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어쨌든 구걸하는 이 노총각 거지를 위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가던 길을 멈추고 그에게 주목한다.

본문 4절과 5.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이일은 이 마흔 살의 노총각 거지가 지금까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였어도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누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주목하는가?

그냥 동전 하나 휙 던져주고 가는 게 다이다.

원문상으로는 주목하여의 헬라어는 아테니사스라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바라보는 대상을 향해 집중하여 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1:10에서 승천하시는 예수를 자세히 쳐다보다로 번역된 말과 같은 동사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렇게 집중하여 그 사람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에게도 자신들을 바라보라고 얘기한다.

이 거지도 제자들의 말을 듣고 제자들을 주목한다.

아마 나름 큰 기대를 했을 것이다.

보통은 동전 몇 푼을 던져주고 가는데,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유별나게 우리를 보라고까지 말을 한다.

그러니깐 이제 평상시보다도 더 많은, 뭔가 대단한 것을 얻는가 보다라고 잔뜩 기대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 역시 제자들을 집중하여 쳐다본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한다.

본문 6절 말씀.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본문의 상황이 그려지는가?

지금 걸인은 물질적인 것을 기대하고 있다.

돈 달라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멈춰서는 자신들을 바라보라고까지 했으니깐 더 많은 돈을 줄 것이라고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기대를 여지없이 깨어버린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또한, 그것이 너에게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내게 있는 것을 주겠다.”

내게 있는 이것이야말로 암울한 너의 40년 인생의 해결책이다.”

 

베드로에게 있는 것, 이 걸인에게 주고자 하는 것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 이름이 너를 걷게 할 것이다.”

너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소유한 최고의 보물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다.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예수의 능력과 은혜로 이 거지가 걸을 수 있음을 선포한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생명의 근원이 되신 예수께서.

그 크신 능력으로 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실 것을 선포한다.

본문의 걸으라.’란 말은 헬라어 원문에서 페리파테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 말은 시작과 계속의 개념을 가진 현재 명령형 단어이다.

걷기 시작하라. 그리고 지금부터 계속 걸어라.’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은이나 금과 같은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마흔 살의 독신인,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거지 아저씨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인 것이죠.

 

자 그렇다면 이제 이 앉은뱅이 아저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일어나 걸어야 한다.

은과 금보다 이 사람에게 더 중요한 것, 구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두 다리에 힘이 생겨서 일어나 걷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기대했던 동전 몇 푼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은혜이다.

오늘 하루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꿈을 꿀 수 있게 되는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듣고 그것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어나 걷든지 말든지, 지금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오늘 양식을 살 수 있는 몇 푼의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향해 욕을 하면서 줄 돈 없으면 방해하지 말고 저리 비켜나라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내일도 그 모습 그대로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의 선포를 그대로 따른다.

본문 7에서 8절 상반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는 선포한 말씀대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베드로의 손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그 결과 원래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40년 동안 단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일어나 서서, 걷고, 뛰기까지 하는 것이다.

기적이다.

기적이 그를 변화 시켰다.

이 거지는 육체적으로 완전한 변화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의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예수의 이름은 이 사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내면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기적을 통하여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제대로 선포되어 진 것이다.

본문 8절 하반절 말씀.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앉은뱅이였던 그가 꿈만 같은 놀라운 기적의 은혜로 걷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가장 먼저 성전으로 들어간다.

제자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는 자신의 치유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행위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이 사람은 너무나 기뻐서 성전 안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것이다.

동전 몇 닢을 구걸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체험함으로써 육신의 치료를 받고, 더 나아가 영혼의 구원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육체의 변화뿐 아니라 그 영혼이 온전히 변화된 것이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고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흑암에서 천국으로 변화된 것이다.

마흔 살의 독신인 앉은뱅이 거지 아저씨에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 믿음의 형제를 갖게 된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 사람의 변화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마지막 9, 10.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참된 기적은 그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기적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 앉은뱅이 걸인은 수년 동안의 구걸로 인해 이미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의 신원이나 치유 사실의 여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앉은뱅이였던 자가 걷고 뛰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의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매일 매일 한 푼만 달라던 그의 애절한 음성이 하나님을 노래하는 기쁨의 음성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그가 육적으로, 영적으로 모두 치유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말씀 마무리…….

구걸하면서 하루하루 연명하던 앉은뱅이 거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몇 푼의 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돈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자신을 살리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아니 어쩌면, 알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 나를 지키는 것, 나를 살리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물질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권력이 나를 지키는 것인가?

명예가 나를 살리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도 사업이 잘되기를 기도하고, 경쟁에서 이기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우리를 살리는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이요 사랑이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향해 일어나 걸으라고 선언하셨다.

그렇다면 이미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어나 걷든지, 뛰든지 다 필요 없고.

그냥 재물을 달라고, 권력을 달라고, 명예를 달라고.

성공, 성공, , 복 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주께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제는 돈 달라고 구걸하던 손을 접고, 그 손으로 주님의 손을 의지하여 두 다리에 힘주어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이끄심대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때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하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주와 함께하는 세상을 소망하는 놀라운 삶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너는 일어나 걸으라.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오직 주의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 주와 함께, 동행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주일 설교🔊 : 일어나 걸어야 한다.(사도행전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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