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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더 놀라운 일.(사도행전 3:11~26)

by TwoTalents 2021. 9. 12.

 

제목 : 더 놀라운 일

 

본문 : 사도행전 3:11~26

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 느냐

1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 리라 하셨으니

26.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말씀 :

오늘 본문은 오순절 설교 다음으로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2번째 설교이다.

맛디아를 사도로 세울 때 있었던 베드로의 연설을 설교로 보고, 본문을 세 번째 설교라고 말하는 목회자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체로 2번째 설교로 보고 있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난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의 선언으로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이 발생하였다.

오늘 본문의 나타나는 베드로의 설교는 그 기적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다.

 

앉은뱅이 청년은 매일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했었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치유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건이다.

그렇다 보니 기적의 순간에 함께했던 사람들,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 지나가다가 누군가에게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기적의 현장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거기다가 앉은뱅이였던 그 사람이 자신을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것이다.

본문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본문의 붙잡으니라는 말은 헬라어로 크라테오라는 말로 매달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강력하게 붙잡는 모습이다.

이는 너무 고마워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매달린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매달려던 것 같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 일으켜 세운 놀라운 능력자가 눈앞에 있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겠는가?

당연히 그와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고, 솔로몬의 행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곳으로 기적을 놀라워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의 입장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베드로는 모여든 그들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본문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마치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 때문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처럼 사람들은 놀라워했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베드로가 말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므로 자기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철저히 감추었다.

그리고 복음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나타내려 한다.

 

날 때부터 40여 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았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다는 것은 놀랄 수밖에 없는 기적이다.

이 놀라운 일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놀라운 일보다 더 놀라운 일을 전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일, 바로 앉은뱅이가 일어났던 그 일조차도, 그 근원은 베드로가 전하려는 더 놀라운 일, 즉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베드로는 사람들의 놀라워하는 기적의 의미를 설명한다.

본문 13~15절 상반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놀라운 일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이유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전한다.

기적의 이유가 예수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니깐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존재인 예수를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던 것이다.

오히려 빌라도라는 이방인이 예수를 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민족이 강도 바라바를 살리겠다고, 하나님의 사람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지금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주위에 모여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은 살인자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죄를 범하였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이다.

복음이 선포될 때, 가장 먼저 선포되고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때, 최종 목표는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자신이 죄인임을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한다.

죄인임을 알아야 뉘우치는 것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데, 무슨 뉘우침이 있고, 어떻게 회개를 한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선민이라면서 목이 곧은 이스라엘을 향해 그들이 죄인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죄인임을 지적한 뒤에 그들의 죄가 씻음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죽였던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본문 15절 하반절.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이스라엘이 죽였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죽임당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너무나도 놀라워했던 기적, 그 기적의 통로가 되었던 자신들, 즉 베드로와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의 증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이적을 보이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다.

본문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임을 믿는 믿음.

그가 인간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셨다는 믿음.

죽으셨던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인해 40여 년 동안 앉은뱅이로 구걸만 했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그리스도께서 죽는 것으로 끝나버렸다면, 이스라엘은 죄를 씻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들이 죽였던 예수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용서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를 죽였다고 직접적인 질책을 했던 베드로의 어조가 조금은 바뀌게 된다.

본문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무슨 말인가?

이스라엘이 모르고 죄를 저질렀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줄 모르고,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인 줄 모르고, 그렇게 잘 몰라서 실수했다는 말이다.

몰라서 저지른 잘못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뉘우친다면, 용서를 구한다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전한다.

본문 18, 19.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예수님의 고난은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예고하셨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 범죄한 상태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지 말고,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한다.

뉘우침으로 용서받고 새롭게 태어나라는 것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복음 전하는 최종 목적은 죄인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 바로 이것이다.

베드로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모범적으로 전파했던 것이다.

 

이제 베드로는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선포한다.

본문 20, 21.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전한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만물을 회복하실 때, 하늘에 오르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이 땅에 내려오실 것을 선포한다.

앞서 전했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은 것으로 끝나버렸다면, 회개도 용서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끝나버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께서 다시 오시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나와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부활이 진리인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우리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약에서부터 준비된 것이었다.

본문 22~24.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모세는 물론 사무엘에 이르는 모든 선지자들이 가리켰던 때가 바로 이때, 즉 예수그리스도의 때인 것이다.

베드로는 모세와 사무엘 및 그 이후의 모든 선지자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선지자들의 후손이다.

본문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그들이 선지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예수를 증거한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그일, 즉 예수를 증거하는 일을 위해 택함받은 민족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를 죽이는 것에 앞장섰다.

 

베드로는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선포한다.

본문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들보다 이스라엘에게 먼저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이며 특권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선택받아 특권을 받은 민족답게 악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와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더 놀라운 일이다.

본문에서 놀라운 일은 40여 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던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되는 일이었다.

엄청난 일이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베드로가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 아들이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함께 사셨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고, 사람들을 대신해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런데 그 아들은 죽음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우편을 향해 하늘로 승천하셨다.

승천하시면서 세상의 마지막 때에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오실 그때,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진실로 놀라운 일은 망할 것 같던 사업이 갑자기 잘되는 것이 아니다.

성적이 좋지 못했던 우리 아이의 등수가 막 오르는 것이 아니다.

길이 막혀서 기도했더니, 다른 차선은 다 막히는데, 내가 가는 차선만 뻥 뚫린 것이 아니다.

참으로 더 놀라운 일은.

내가 잘되거나 못 되거나.

내가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내가 1등을 했거나 꼴등을 했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지킬 때,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를 천하보다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더 놀랍고 기이한 일이다.

이미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주님.

이미 나를 위해 고난받으셨던 주님.

이미 나를 위해 죽으셨던 주님.

이미 나를 위해 다시 사셨던 주님.

이미 나를 위해 하늘에 오르시고 나를 지키시는 주님.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있을 수 없다.

 

오늘도 이처럼 더 놀라우신 주님을 기억하며 찬양과 영광을 먼저 돌리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이미 놀라우신 주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사람이교회, 사람이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주일설교🔊: 더 놀라운 일.(사도행전 3:11-26)

제목 : 더 놀라운 일 본문 : 사도행전 3:11-26 💒'사람이교회'는 온라인교회입니다. 교회 등록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saramichurch@naver.com #사람이교회 #사도행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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