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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8 위선적 행위를 비판하며(갈라디아서)

믿음의 참된 성숙.(갈라디아서 2:11~14)

by TwoTalents 2021. 9. 3.

이미지 출처 - 갓피플 모바일 이미지

 

제목 : 믿음의 참된 성숙

 

본문 : 갈라디아서 2:11~14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 하였노라

12.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 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말씀 : 

베드로와 바울의 모습을 통하여 믿는 자의 참된 성숙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한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이달리야 백부장 고넬료의 구원 역사가 등장한다.

이때, 이 역사에 함께했던 사도가 바로, 베드로이다.

 

사도행전 11장에는 이 일로 인하여 율법주의자들이 베드로를 비난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소개한다.

그리고 고넬료 집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로 인해 분위기는 급반전하게 된다.

사도행전 1117, 18.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이 일로 인하여 이방 선교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리고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어 그곳을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바나바는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오게 된다.

그리고 둘이서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게 된다.

 

아마도 그렇게 이방 선교가 개시되면서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안디옥을 섬기고 있을 때 즈음, 베드로가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본문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게바가 바로 베드로 이다.

게바는 아람어이고, 베드로는 헬라어이다.

둘 다 뜻은 반석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직속 제자이며, 거기다가 수제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가장 큰 어른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향하여 바울이 책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의 책망은 헬라어로 안테스텐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강력한 저항’, ‘강력한 반발을 나타내는 말이다.

바울로 하여금 강력하게 반발하고, 저항할 수밖에 없는 어떤 행동이나 일을 베드로가 했다는 것이다.

 

과연 바울의 강력한 저항을 초래한 베드로의 행동은 무엇이었는가?

본문 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앞서 설명한 대로 안디옥교회는 베드로가 함께했던 고넬료 사건 이후, 이방 선교의 문이 열리면서 세워진 교회이다.

그런데 그런 교회에 와서는 베드로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 이들은 바로 율법주의자들, 형식주의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 형식주의자들의 눈과 입이 무서워서 진리를 외면하고 거짓을 행했던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환상을 통해 주님께서 깨끗하게 한 것을 사람의 기준으로 속되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런데 그러한 주의 진리를 사람 때문에 슬그머니 놔버린 것이다.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심하게 훼손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그런데 이런 베드로의 행위는 자기에게만 국한되어진 문제가 아니었다.

본문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존경받는 베드로가 그렇게 해 버리니깐, 다른 사람들도 다 따라서 외식을 하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거기다가 안디옥교회를 담당해서 목회를 하고 있던 바나바마저도 외식에 대한 유혹에 빠져 버린 것이다.

 

베드로를 향한 바울의 책망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베드로의 영향력, 베드로의 이전 모습, 베드로가 했던 과거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지금 보이고 있는 베드로의 행동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베드로가 보인 비겁한 행동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의 가르침과도 대치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베드로를 향해 이렇게 책망했던 것이다.

본문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베드로가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를 주목하고 있는 그 시점에서…….

베드로를 향해 당신은 당신도 유대인으로서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방인더러 유대인처럼 살라고 말을 하는 것인가?”라고 책망한다.

무슨 말인가?

베드로 당신이나 주님의 뜻에 맞게 먼저 올바르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중적인 모습으로 외식을 행한 베드로를 향한 바울의 강력한 책망이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참된 성숙을 나눈다고 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준 바울의 행동을 통해, 믿음 안에서 제대로 성숙한 참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진리를 거스르는 베드로를 향해 강력한 반발로 하나님의 뜻을 상기 시켰다.

그에게는 베드로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라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예수님의 직계 제자건, 그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건…….

그런 거 중요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간증을 통해 안디옥교회가 세워졌고, 자신은 그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위치이고.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스스로 주님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이 무서워서, 그들의 입이 무서워서 진리를 외면하고 피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가 베드로라 할지라도,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다면, 그를 향해 강력한 꾸짖음을 말하는 바울의 용기.

이 용기야말로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성숙한 믿음의 모습인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누군가가 주님의 뜻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그가 사람이 무서워 주님의 뜻을 저버린다면…….

그 사람이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곤란을 겪기 싫어서 잠시 진리를 내려놓는다면…….

그 사람이 어느 위치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향해 진리로 꾸짖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면 더더욱 반드시 책망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믿음 안에서의 참된 성숙은 두려움 없이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에게 책망을 받았던 베드로를 통해서도 믿음의 참된 성숙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11절의 책망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안테스텐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단어의 시제가 부정과거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바울의 책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깐 베드로가 바울의 책망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본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만약 베드로가 바울의 책망에 반발했다면, 바울은 반드시 그 일을 함께 기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영향력은 아주 크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반발했다면, 진리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베드로의 반발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드로의 저항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다.

 

또한, 베드로가 바울의 책망에 대해 실제로 저항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오히려 바울이 역공을 받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적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바울의 책망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것은 진리 앞에서 겸손한 베드로의 성숙한 모습인 것이다.

 

바울의 책망이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바울은 까마득한 후배이다.

자신에 의해 세워진 교회나 마찬가지인 안디옥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후배 사도이다.

그것도 부목회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을 책망하는 것 자체도 거슬리는데, 단둘이 있을 때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보는 앞에서 자신을 망신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바울의 책망을 겸허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 스스로가 진리 앞에 겸손한 것과 함께, 자신이 저지른 실수의 사안이 작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 때문에 따라서 외식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담임 목회자인 바나바마저도 흔들릴 정도로 자신의 영향력은 컸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태를 바로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이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바울이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 자신을 책망한 것이,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인정했던 것이다.

 

바울이 주님의 진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베드로 역시 모습은 달랐지만, 주님의 진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의 체면이나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영향받았을 사람들에게 주님의 진리를 다시 정확하게 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상대방이 누구든지 진리를 바로 외쳐야 하는 것이 믿음의 성숙인 것처럼…….

상대방이 누구라 할지라도 그가 나를 향해 진리를 외친다면, 그 진리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역시 믿음의 성숙인 것이다.

 

말씀 마무리…….

사랑하는 믿음의 신앙공동체 여러분.

오늘 결론적으로 말하는 믿음의 성숙은 진리 앞에서의 용기와 겸손이다.

상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주님의 참된 진리로 그를 책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상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나에게 주님의 참된 진리로 책망하는 이가 있다면, 겸손함으로 그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온전히 진리를 외치는 용기.

온전히 진리를 받아들이는 겸손.

이 믿음의 성숙한 자세를 가지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하루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신앙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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