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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8 위선적 행위를 비판하며(갈라디아서)

짐.(갈라디아서 6:1~5)

by TwoTalents 2020. 9. 7.

이미지 출처 - PIXTA

제목 : 짐.

 

본문 : 갈라디아서 6:1~5

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말씀 :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다.

짐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은 다섯 절 밖에 안되는 짧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 짧은 내용을 2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니깐 오늘 말씀에는 짐에 관한 두 가지 내용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본문 말씀은 1, 2절 그리고 3~5절로 나눌 수 있다.

두 부분 모두 짐에 관한 이야기인데, 1, 2절은 교회가 함께 짊어져야 하는 짐을 말하는 것이고, 3~5절은 개인의 짐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성격이 다른 이 두 짐이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이 부분을 나눌 것이다.

 

먼저 교회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짐이다.

그런데 이 짐은 형제의 범죄, 즉 교회 성도의 범죄에서 시작된다.

본문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본문의 사람은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를 가리키는 말이다.

믿음의 가족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만 것이다.

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럴 경우, 교회 공동체가 보여야 할 행동에 관한 권고가 주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바울은 신령한 너희는이라고 부르면서 특정한 이들을 부르고 있다.

본문의 신령한 너희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지난 5장 말미에서 성령에 따라 행하는 사람과 육체를 따라 행하는 사람을 나누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공동체이지만, 교회 안에서도 성령에 따라 행하는 성숙한 이들이 있고, 여전히 육체를 따라 행하는 미숙한 이들이 있다.

지금 바울이 부르고 있는 신령한 너희는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깐 일단 교회 속에서 범죄가 드러난 형제, 자매가 있으면, 아무나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성령에 따라 행하는 신령한 이들에게 그 문제를 다루게 하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교회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오해 없이 잘 이해해야 한다.

비단 사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에 있어서도 성숙한 신앙인, 성령에 따라 행하는 이들, 신령한 사람들이 너무나 중요하다.

평소에 기도 한번 하기가 그렇게 힘들고, 말씀 한 줄 읽는 일이 없고, 묵상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교회의 문제는 인격이나, 지식이나, 개인의 경험과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말씀이고, 오직 성령이고, 오직 하나님의 이끄심이다.

 

만약에 하버드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어떤 사람이 우리 교회에 새신자로 왔다고 하자.

그러던 차에 급하게 한마음교회에서 신앙적으로 판단해야 할 중요한 일이 생겼다고 하자.

그때에 제가 교회의 신앙적 판단을 말씀도 제대로 모르는 그 사람과 의논하겠는가?

아니다.

당연히 김태호 부교님이랑 의논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이다.

그래서 운영위원회가 있는 것이고, 하사관 회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지금 믿음의 형제, 자매가 당면한 죄의 문제에서 아무나 찾지 않는 것이다.

성령에 따라 행하는 신령한 이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 신령한 자들을 향해 온유한 심령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

온유는 앞서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서도 소개된 덕목이다.

본문의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우테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겸손함과 온순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깐 비록 범죄한 형제, 자매라 할지라도 그들을 대할 때, 겸손함으로 온순하게 대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잘못에 대해 야단치고 꾸짖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잘못에 대한 지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범죄한 형제, 자매를 돌아보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바울은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라고 말하고 있다.

죄를 지은 자들이 다시는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들을 회복시켜서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이 범죄한 형제, 자매를 치리하는 진짜 목적이다.

바로 잡는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때로는 용서나 사랑을 오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상대방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는 것이 용서가 아니다.

죄를 없었던 일로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온유한 마음으로 그가 바로 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고, 용서이다.

결국, 주안에서 같이 살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바울이 신령한 자들에게 교회 속의 범죄에 관해 맡기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 신령한 이들도 부족한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조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범죄한 이들을 반면교사 삼고,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혹시나 유혹받거나, 시험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런 상황, 그러니깐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범죄하고 타락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최소화하기 위하여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본문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믿음의 가족들을 향해 서로 함께 짐을 지라고 말한다.

왜 함께 짐을 지라고 했을까?

범죄한 형제, 자매가 이 짐 때문에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짐으로 인해 불법을 행한 것이다.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깐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쁜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그 짐을 서로 지어서, 혼자 감당하지 못할 짐이 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짐 때문에 죄를 범하는 일이 없게 하라는 말이다.

 

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시험이나 유혹일 수 있다.

어떤 영적인 공격일 수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경제적 문제일 수 있고, 자녀 문제, 직장 문제, 관계 문제 등등.

내가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모든 것들이 다 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관해서 믿음의 가족들은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본문의 지라는 헬라어로 바스타제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적이 관계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깐 교회 공동체는 믿음의 가족으로서 계속해서 서로를 위해 짐을 나누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인가?

바로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이다.

이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가 서로 짐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짐, 교회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짐이다.

 

이제 바울은 두 번째 짐에 대해 전하게 된다.

본문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바울은 누군가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에 관해 언급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도 역시 5장 말미의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바로 앞에서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하였다.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나누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은 아무런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었다.

그러니깐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은 성령에 따라 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마치 무슨 열매라도 맺은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있으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냉장고를 파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수완이 좋고 부지런해서 남극에서 열 대의 냉장고를 팔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문서 작성을 하는 것에는 매우 서툴렀다.

그래서 그냥 A4 용지 한 장에 자신의 이름과 남극에서 냉장고 열 대를 팔았다는 내용만 기록하여 보고서를 올렸다.

 

다른 한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냉장고를 간신히 한 대 팔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대학에서 전공이 국문학이어서 글을 쓰고 서류를 작성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프리카에서 한 대의 냉장고를 팔게 된 경위와 과정들을 A4 용지 10장으로 기록하여 보고서를 올렸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10장 쓴 사람이 간신히 보고서 한 장 쓴 사람을 향해 비웃으며 보고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냐고 핀잔을 주고 있다.

 

이 경우 냉장고를 판매하는 것에 진짜 성공한 사람이 누구인가?

당연히 남극에서 열 대의 냉장고를 판매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냉장고 한 대 간신히 판매한 사람이 보고서 잘 작성했다고 마치 자신이 일을 더 잘했다는 듯이 건들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도 속고 있는 어리석은 모습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진짜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령과 함께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한 삶에 먼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울은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한 다음에, 지극히 종말론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본문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자기의 일을 살피라는 것이다.

이는 4절에서 언급된 성령의 열매가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명령이고, 성령과 함께하는 삶이라면 당연히 드러나야 할 성령에 열매가 나에게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라는 말이다.

정작 중요한 것에는 관심도 없고, 엉뚱한 것에 에너지를 다 쏟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과 함께함에 대한 깊은 묵상이 있다면, 남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허망한 자랑질이나 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삶을 묵상하고,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끄심인데 내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성령의 열매도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맺어진 것인데, 내가 무슨 자랑을 한단 말인가?

아무런 열매도 없고, 성령과 함께하지도 않으니깐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비교하면서 허망한 자랑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언한다.

본문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본문은 헬라어 원문에서 미래 동사형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때,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는 의미로 해석하기에도 충분하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결국은 각자 자기의 짐에 의해 자신의 삶을 책임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주님 앞에서 내가 짊어지고 있어야 하는 짐이다.

내가 삶 속에서 드러난 결실들, 열매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이끄심대로 삶을 살았다면 그 짐은 성령의 열매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입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성공을 우선시하고, 육체의 정육을 따르기 바빴다면, 주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결국 썩어 없어질 세상 열매로 가득할 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외모, 곧 인간적인 성공, 인간적인 가치로 심판의 기준을 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 판단하시는 유일한 기준은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삶이 성령과 함께하는 삶이었는지, 그것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았는지,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그 열매의 짐을 지고 나아올 수 있는지가 바로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 가지 내용의 짐에 대해 나누었다.

첫 번째 짐은 믿음의 형제, 자매가 범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버거워했던 삶의 짐이었다.

이 짐에 대해서는 교회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모두가 건강한 공동체로 바로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짐은 내 삶을 통해 맺게 되는 결실들, 열매들이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으로 짊어지고 가서, 펼쳐 보여드려야 하는 내 삶의 내용이다.

그 짐에 세상의 열매, 육체의 열매가 있다면 그것에 합당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가 가득하다면, 또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앞서서 이 두 가지 짐은 다른 내용이지만,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고 밝혔었다.

그것은 첫 번째 짐을 나누는 것으로, 두 번째의 올바른 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약한 믿음의 형제, 자매의 짐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내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기 때문이다.

사랑,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믿음의 가족과 짐을 나누는 것으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삶에서 맺게 된 성령의 열매가 심판의 날, 주님 앞에 펼쳐 놓을 나의 짐 속에 담겨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내가 가져야 할 올바른 모습은.

형제에게 섬김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섬기는 것이다.

자매에게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를 존중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행할 때, 교회는 건강해지고, 나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한마음 신앙 공동체가 이렇게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서로 짐을 나누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그것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가 내 삶에서 가득 맺혀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마지막 날, 천국에서 성령의 열매를 자신의 짐 속에 가득 채우고 있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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