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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성령의 임재.(사도행전 2:1~4)

by TwoTalents 2021. 7. 25.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성령의 임재.

 

본문 : 사도행전 2:1~4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말씀 :

오늘 본문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전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오늘 본문인 오순절 성령강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성령강림, 그리고 성도들의 성령 체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의 해석에 따라 신앙적 색깔과 모습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성령강림 사건은 성경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성령이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함께 모여서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순절 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임하셨다.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글만 읽었을 때, 여러분은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는가?

굉장히 스펙타클하면서도,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판타지 영화와 같은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이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오순절 성령의 강림, 이 사건, 이 장면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고 받아드려야 할까?

그리고 판타지 영화와 같은 이 성령강림의 모습, 성령 충만함의 모습을 모든 신앙인이 필수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니깐 성도라면 누구나 이렇게 신비하게 보이는 성령의 경험, 그리고 방언과 같은 특별한 일들이 그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은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사도행전 214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을 제가 읽어보겠다.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지금은 말세이다.

시간 적으로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서적으로 끝이 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의 오심이 예언되셨고,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이 승천하셨다.

이제는 예수님의 재림, 다시 오심만이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말세이다.

방금 읽었던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은 오늘날도 해당이 되는 말씀이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누구든지 주께 구하면 오순절 성령강림과 똑같은 체험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방금 읽었던 말씀을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가 경험해야만 하는 신앙 경험의 전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보편적으로 임하는 성령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다.

오순절 성령 사건으로 인하여 이제부터는 새 시대라고 개막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행전 229절에서 33,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 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이 대목을 보면 오순절 성령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사역이 완성되었기에 그 다음 성령이 오실 수 있었다는 쪽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이제부터는 새 시대가 시작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일의 결과로 성령강림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주 안에 거하고, 주께서 내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우리를 죄에서 꺼내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러 십자가를 지시려고 오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가시면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1절에서 3절 말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처음 오신 것은 우리와 함께 있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없애고, 죄에서 구원하려고 오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우리와 함께 살려고 오시는 것이다.

궁극적인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죄를 씻어냄으로 인간은 주님과 함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에 의해 우리의 죄의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드디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다.

성경은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궁극적인 목표와 이유를 에베소서 2장에서 밝히고 있다.

에베소서 220절에서 22절까지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지어져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먼저 성령이 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금도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오순절 성령강림이다.

 

예수님을 믿는 개인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이 부수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는 역사적이고 새로운 장을 여는 공식적인 개막을 선언하는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오신 것이 공개되고, 객관화되고, 외적인 표현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때에는 성령이 공개적으로 오시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모든 상황 속에서 성령의 임재가 똑같이 공개적일 필요는 없다.

고린도전서 123절 말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가 지금 예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어떠한 마음으로 영상을 보며 예배하고 있는지는 그 누구보다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내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증거이다.

아직까지도 성령이 임하시면 오순절 성령 때와 같은 어떤 외적인 표징들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정 교단이나, 성령 사역이라는 이상한 말을 하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방언을 받게 해준다고 말하며 성령의 임재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령의 임재가 꼭 외적인 표징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자.

사도행전 237절에서 42.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 쓰니라.”

 

분명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받는다.’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구원의 대열에 참여했다.

그런데 거기에 그들이 방언했다든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든가 하는 기록은 없다.

여기서 베드로의 너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받는다.’라는 얘기는 체험적인 사건에 성령 받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성령을 받는다.’라는 것은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던진 새로운 사람,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의미이며, 그렇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 신앙고백을 갖고 있는 자에게 성령이 와 계신다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하나 됨을 선언하는 특별한 사건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을 체험한다는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성령은 우리를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거룩함을 사모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 아는 일에 내가 몰두하게 한다.

인격의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를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일으키신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모습은 각자에게 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방언이나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고, 회개와 눈물로만이 아니다.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나타나거나, 기도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놀라운 상황만이 성령을 체험한 것이 아니다.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나를 아버지의 처소가 되게 하고,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마무리...

성령의 임재, 성령의 충만함이 인정되는 공식적인 모습은 없다.

초대 교회에 임하셨던 오순절의 불과 같은 성령일 수도 있고,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바다와 같은 성령일 수도 있다.

내가 방언을 받았다고 해서 성령에 충만한 것이고, 저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성령이 그에게 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찬양 중에 흐르는 눈물이 반드시 성령 충만의 증거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한다면, 그것으로 성령은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계신 것이다.

마태복음 1615절에서 1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있다면...

그 고백이야말로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이 임하신, 내가 성령과 함께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저는 오늘도 기도한다.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충만하시기를 소원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각종 은사를 체험했으면 좋겠다.

찬양 중에 기도 중에 놀라운 감동으로 눈물 흘리시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진정으로 간구하는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마음으로 진실하게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거짓 없이, 의심 없이,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사람이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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