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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떠나지 말고, 기다려라.(사도행전 1:1~5)

by TwoTalents 2021. 7. 13.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떠나지 말고, 기다려라.

 

본문 : 사도행전 1:1~5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 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말씀 :

오늘은 사도행전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사도행전은 신약 성경 중에서 유일하게 역사서로 분류된다.

역사서라는 것은 역사의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

복음서는 역사서가 아니라 설교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게 역사적인 순서로 배열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굳이 사도행전과 함께 역사서에 편입시킬 수 있는 책을 꼽자면 누가복음 정도이다.

누가복음도 사도행전처럼 역사의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기록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을 역사서에 편입시키지 않는 이유는 누가복음은 복음서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함께 공관복음으로 분류한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같은 관점에서 보고 기록한 복음서라는 의미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서로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고 말씀드렸다.

 

다시 사도행전으로 돌아와서, 사도행전의 저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 누가가 사도행전도 기록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서문이 동일한 수신자에게 쓴 글이라는 점, 그리고 사도행전에 의학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의사 누가가 저자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제목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제자들은 짧게는 1, 길게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메시아라 믿고 쫓아다녔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무기력함에 휩싸여 있었다.

더러는 예루살렘에 남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고, 더러는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변화를 받고, 예전의 나약한 모습이 아닌, 두려움을 모르는 놀라운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죽음이 두려워 주님을 버려둔 채 도망갔던 제자들이,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유럽 각지, 결국은 땅끝을 향해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에 선봉장이 된다.

제자들의 복음 전파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곳곳에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모여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 과정을 역사적 관점으로 그리고 있다.

 

오늘의 본문은 이 위대한 역사의 첫 서문이다.

먼저 1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데오빌로여~”

 

저자인 누가는 누가복음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기록하는 글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 수신자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수신자인 데오빌로는 과연 누굴까?

안타깝게도 데오빌로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누가복음에서도 같은 수신자로 데오빌로를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데오빌로를 향해 각하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서 데오빌로는 상당히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 된다.

그리고 데오빌로에게 쉽지 않은 내용의 글을 보낸 것으로 보아, 상당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고, 기독교에 대해서 많은 이해와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초보 개심자인 그에게 어떻게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에 관한, 이런 구체적인 내용의 글을 길게 쓸 수 있었느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데오빌로라고는 했지만, 누가가 그리스도인 전체를 포함하는 의미로 사도행전을 썼지 않았겠느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데오빌로라는 말이 데오스필로스의 합성어로 그 뜻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혹은 하나님의 벗이 된다.

그러니깐 어느 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의 벗된 자들 전체를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어쨌든 여러 주장이 있지만 데오빌로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누가는 먼저 기록한 내용 즉 누가복음을 통해서 기록한 내용을 짧게 요약한다.

본문 1, 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예수님이 행하시며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신 일까지를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는 이 사실을 밝힘으로 먼저 쓴 글에 관한 내용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다.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고, 진정 그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그 부활하신 것의 증거를 나타내신 일과 예수님의 당부 말씀, 그리고 성령으로 변화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중에서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분부한 중요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바로 이것이었다.

본문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 제자들이 제일 두려워한 것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함께하지 않는 순간 그들에게는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했다.

그렇게 되면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 사후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었다.

하지만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떠났던 제자들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으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하신 예수님은 두 번째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다.

그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이 수차례에 걸쳐서 약속하셨던 내용이다.

요한복음 1613절은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죽음의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주님은 이 당부와 함께 아버지께서 약속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신다.

그런데 그 약속의 것은 바로 성령인 것이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후에 오합지졸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예수님 살아계실 때는 큰소리도 쳐보고, 잘난 채도 해 보았다.

바다 위를 잠시나마 걷기도 했었다.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병든 자를 낫게도 해 보았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받칠 때는 마치 자기들이 뭐라도 된 듯이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없는 지금, 그들은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 나약한 존재들일 뿐이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제자들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제자들이 변화 받기 위해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주님의 복음 전파의 선봉장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본문 마지막 절인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본문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고,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확실한 변화를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세례는 다른 것이다.

성령의 세례는 물로 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성령의 세례는 성령께서 직접 함께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가 아닌 우리의 영혼을 만지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두려움과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제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성령의 세례였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들이 이해되고, 이해된 말씀이 믿음 안에서 실천되기 위해 제자들은 반드시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 성령의 세례가 제자들에게 임할 때, 예수님의 가르침도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마무리.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두려워 떨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곧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성령은 주님의 약속대로 제자들에게 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놀라워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변화 받게 된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를 받은 제자들이 어떻게 변화되었고, 어떤 능력을 보였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령으로 변화받은 자들이 거룩한 교회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을 오늘날에 빗대어 본다면 저는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말씀과도 같다고 믿는다.

교회를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교회 속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말씀은 이 예배당을 떠나지 말고, 어느 특정 교회나 교단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인 내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다.

그러니깐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서 떠나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성령이 주시는 세례를 받으라는 말씀이다.

그때 이천 년 전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을 믿고 확신한다.

 

성령의 세례가 나약한 우리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우리를 용기 있는 자로 변화시킬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되게 하고 그 이해된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교회를 떠나지 마시기 바란다.

나를 교회되게 한 주님을 향한 믿음에서 떠나지 마시길 기도한다.

그렇게 믿음 안에서, 교회 속에서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자.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반드시 주님은 성령의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은혜, 오늘과 또 다른 내일의 감동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주님의 성령이 우리의 영혼을 만지시고 세례를 베푸시길, 믿음으로 교회된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영상으로 설교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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