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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주님과 함께 거하는 곳.(요한계시록 21:9~27)

by TwoTalents 2021. 2. 2.

이미지 출처 - 미술인 선교회

제목 : 주님과 함께 거하는 곳.

 

본문 : 요한계시록 21:9~27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말씀 :

오늘 본문은 새 예루살렘에 대해 전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참으로 궁금한 곳이고, 또한 기대하게 되는 곳이다.

사도 요한에게 주신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준비해 놓으신 새 예루살렘, 놀라운 그곳을 다시 한번 기대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먼저 일곱 대접에 마지막 재앙을 담고 있었던 천사 중 하나가 요한에게 전한다.

본문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천사는 요한에게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소개하겠다고 말한다.

본문의 어린 양이 누구인가?

예수그리스도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의 신부가 누구인가?

바로, 주님을 믿는 자들, 주님을 따르는 자들, 우리는 나타내는 말이다.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그런데 천사는 어린 양의 아내를 보이겠다고 말하면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요한에게 보이게 된다.

본문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앞에서도 설명했고, 이어서 나오는 예루살렘의 묘사를 보더라도 이곳은 실제 공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천사가 어린 양의 신부로 새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은, 이곳이 공간적인 의미와 함께 말세 때의 교회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사가 보여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새 예루살렘을 이렇게 기록한다.

본문 11~2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요한은 새 예루살렘에 대해 성벽과 성문, 기초석등 여러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에는 담긴 의미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오늘 그것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주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상상할 수 없어서 어느 정도 기대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놀라운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 때 교회에 임하게 될 영광이 크고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렇기에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심판은 죽음과 두려움의 시간이지만.

어린 양의 신부인 우리에게는 생명과 기쁨의 날이 되는 것이다.

 

요한은 새로운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다고 전한다.

본문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성전이전 시대에는 성막이, 그리고 성전 시대에는 성전이 항상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그들이 타락했던 시절에도 성전은 그들의 삶의 중심에 있었다.

타락마저도 성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성전이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성전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그런데 새로운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따로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언제나 함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로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제사할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라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곧 성전이시라고 고백한다.

주님과 함께하는 그곳에서 언제라도 예배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만으로도 성전이 중요한 것인지, 그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예배가 중요한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배당, 즉 건물이 실체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예배가 실체인지는 논쟁거리가 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놀라운 영광을 이렇게 표현한다.

본문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해와 달이 필요 없다.

해와 달이 빛으로 비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해보다도 달보다도 더 밝고 눈부시기 때문이다.

해와 달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놀라운 곳으로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 속에서 살아가던 하나님의 백성이 모이게 될 것이다.

본문 24, 25.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땅에서 영광을 누리던 왕들조차도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기 위해 그것을 가지고 나아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하는 이곳에는 성문이 있어도 그 문을 닫지 않는다.

? 이곳에는 하나님의 눈부신 영광으로 더 이상 밤이 없기 때문이다.

밤이 없다는 것은 어둠이 없다는 말이다.

어둠이 없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다.

죄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어둠 속으로 숨을 이유도 없다.

 

그곳에서는 그 어떤 죄도 함께할 수가 없는 곳이다.

본문 26, 27.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본문의 속된 것은 헬라어로 코이노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더럽혀진’, ‘불결한’, ‘거룩하지 않은이란 뜻을 가진다.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

더럽혀진 상태로 계속 있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 그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증한 일브델뤼그마라는 헬라어로 특별히 우상 숭배의 가증한 일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사람들도 함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프슈도스’, 번역 그대로 거짓말, 거짓을 뜻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여전히 더럽혀진 자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가증한 자들은 물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이 삶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 거짓말쟁이들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좋으신 새 예루살렘에서 함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천국을 얘기하면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천국에 가면 세 가지 이유로 깜짝 놀란다는 것이다.

먼저는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가게 된 것 때문에 놀란다고 한다.

두 번째는 저런 인간이 천국에 와 있어서 놀란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연히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놀란다는 것이다.

 

천국과 오늘 본문의 새 예루살렘을 같은 곳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하지만, 천국이든 새 예루살렘이든 그곳에 들어가는 것의 기준은 나의 생각, 나의 가치,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의 중심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책에 직접 그 이름을 기록한 자만이 주님께서 예비하신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주께서 예비하신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는 오직 주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내 생각, 내 기준과는 다르다고 해서 두려워할 것은 없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어떤 사람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실 것인지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더럽혀졌던 나의 몸과 영혼이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실 것이다.

우상을 세우지 않고,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 자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실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면, 그 고백처럼 삶에서 정직하고 신실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의 이름을 주께서 직접 기록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 여러분.

새 예루살렘이 임하는 그날, 천국이 임하는 그날.

내가 그곳에 들어간 가게 된 것 때문에 스스로 깜짝 놀라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이 땅에서의 연약한 모습 때문에 기대하지 못했던 형제, 자매를 그곳에서 볼 수 있어서 깜짝 놀라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러면서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믿음의 사람들이 낙오되지 않고 당연히 그곳에 있어서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이날을 생각하며, 이날을 상상하며.

힘들고 어려운 오늘을 또 한 번의 승리로 마무리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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