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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천 년 왕국.(요한계시록 20:1~6)

by TwoTalents 2020. 12. 12.

이미지 출처 - '다온솔'

제목 : 천 년 왕국.

 

본문 : 요한계시록 20:1~6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 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말씀 :

오늘 본문은 소위 천년 왕국이라고 명명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중에서도 오늘 본문이 가장 많은 주장과 함께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천년 왕국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전 천 년설, 무 천 년설, 후 천 년설이 그것이다.

이는 본문에서 말하는 천년이라는 시간을 문자적으로 보느냐, 아니면 상징적으로 보느냐, 상징으로 본다면, 현재로 보느냐 미래로 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기록된 성경을 문자적이든, 상징적이든 본문을 해석하는 선까지만 다룰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천년이라는 시간이 등장한다.

이 천년의 시간은 천사에 의해 용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히는 시간이다.

먼저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등장한다.

본문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천사는 무저갱의 열쇠와 함께 큰 쇠사슬을 가지고 나타났다.

본문의 쇠사슬은 헬라어로 할뤼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족쇄’, 혹은 수갑을 의미한다.

천사는 용이라 불리는 사탄을 무저갱이라는 공간에 공간적으로 가둘 뿐만 아니라, 활동까지도 제약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천사는 사탄을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가두게 된다.

본문 2, 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앞서 말 한대로, 본문의 천년이 언제인가에 따라, 그리고 상징이냐 수치적인 것이냐에 따라 여러 해석이 있다.

어떤 해석이든지 확실한 것은 사탄의 세력이 결박될 것이고, 이후에는 만국을 미혹시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탄을 결박한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천년이 다 찬 후에 사탄은 잠시 놓임을 받게 된다.

이는 종말적 전쟁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완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사도 요한의 환상은 사탄이 무저갱에 갇힌 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할 자들에 대해 소개한다.

본문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사도 요한은 가장 먼저 보좌들을 보게 된다.

그 보좌에 앉은 자들에게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진다.

이 보좌들에 앉은 자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표를 받지도 않은 자들이 동일한 부류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순교자로 지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표를 받지도 않은 자들은 두 부류로서 예수에게 신실하게 충성한 무리들 전체를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믿음으로 순교한 자와 믿음을 지키면서 여전히 살아있는 성도를 구분하는 것이다.

두 가지 견해 중 우리는 두 번째 견해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다한 자들이 죽임을 당하였든, 당하지 않았든 간에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받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권을 가지고 천년 동안 통치할 것을 말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성도들이 천년 동안 통치하게 되는 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전한다.

본문 5, 6.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본문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순교하지 않은 믿는 자들과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와는 다르게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불신자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우리는 두 번째 해석을 취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의 견해대로라면 나머지 죽은 자들’, 곧 순교하지 않은 믿는 자들과 불신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둘째 사망에 참여하게 된다.

이 경우 순교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둘째 사망에 참여하게 된다는 모순을 낳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도 요한은 이를 첫째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둘째 사망과 둘째 부활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고 말한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복이 있으며 거룩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둘째 사망이 없다.

첫째 사망은 육체의 사망을 의미한다.

둘째 사망은 부활에 참여하는 불신자들이 맞게 될 사망을 말한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주께서 주시는 왕권을 소유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통치하게 될 것이다.

 

말씀의 서두에서 밝힌 대로 본문은 요한계시록 중에서도 해석이 다양하고 논쟁이 많은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밀한 부분까지 해석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큰 틀에서 메시지는 동일하다.

세상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결국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구분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천년 왕국은 이미 지나갔을 수 있고, 지금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앞으로 언제가 닥쳐올 미래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언제라고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잠깐 언급을 했는데, 우리는 2020년 위드 코로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했고, 고난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예배할 것이라고 찬양하며 고백하였다.

그런데 대면 예배가 금지되고,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교회는 곧바로 혼란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내 믿음은, 나의 예배는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의 관계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니깐 그냥 나태해져 버리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믿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를 계속해서 알고 싶어 한다.

성경은 분명하게 그때와 시기를 아버지 외에는 알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인간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알기 위해 안쓰러운 노력을 한다.

그러다가 신천지에도 빠지고, 구원파에도 기웃거리게 된다.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정확하게 알아서 뭘 하려는 것인가?

그전까지는 자기 욕망과 쾌락을 즐기며 세상 삶을 살다가, 예수님 오시기 몇 달 전부터 신앙인 모드로 들어가려고 그러는 것인가?

 

우리에게, 믿음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내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다.

누가복음 122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과 함께해야 하는 생명의 시간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매일 매일의 오늘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기보다, 다가올 시간을 다짐하기보다...

지금 이 시간을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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