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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남.(요한계시록 14:14~20)

by TwoTalents 2020. 10. 17.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남.

 

본문 : 요한계시록 14:14~20

14.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 이다 하니

16.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말씀 :

요한계시록이 대체로 그렇듯이 오늘 본문은 서로 다른 주장이 논의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에서 확정적인 해석처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전체적으로 큰 틀에서 이루어진 역사에 대해 나눌 것이다.

 

오늘 본문은 14~16, 15~20절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나누는 것에는 이견이 별로없다.

그리고 본문 말씀이 마지막 때의 수확과 심판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에도 대체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각 단락의 주제에 해서는 다른 해석이 등장한다.

첫 번째 단락에 대한 해석이 좀 다른데, 이 부분을 믿는 자들, 그러니깐 성도들에 대한 수확으로만 보는 주장이 있고, 반면에 모든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수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두 번째 경우에는 이후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곡식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두 주장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세 천사가 등장한다.

이 세 천사가 누구냐에 대해서도 다른 주장이 대립한다.

지난 말씀에서도 세 천사가 등장했다.

그 세 천사는 순차적으로 나타나 각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본문의 세 천사에 대해서 앞의 등장한 세 천사의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반면 그들과는 다른 세 천사의 등장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두 주장 모두 각각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본문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사도 요한이 눈을 들어보니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다고 말한다.

인자와 같은 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있다.

예수님이라는 주장과 그저 천사 중 하나라는 주장이 있다.

예수님이라는 주장은 인자라는 말이 예수님을 지칭한다는 것에 근거를 둔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이 마지막 심판에 관한 것이므로 낫을 들고 수확하는 이는 당연히 심판의 주체이신 예수님일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천사라는 주장은 예수님께서 천사의 명령을 듣는다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본문대로라면 예수님의 명령을 천사가 듣는 것이 아니라, 천사의 지시에 예수님께서 낫을 들고 마지막 수확을 행하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예수님일 수 없다는 것이다.

두 해석 모두 타당성이 있다.

인자와 같은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더 공감되는 해석을 수용하면 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인자와 같은 이의 손에 예리한 낫이 들려있다는 것이다.

낫이 들려있다는 것은 수확을 하기 위한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마지막 수확, 즉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질 것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어서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하여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가야 함을 선포한다.

본문 15, 16.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이는 심판의 때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앞서 말 한대로 이 부분을 모든 인간을 향한 심판과 오직 성도들에 대한 수확으로 보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모든 인간을 향한 심판으로 볼 경우, 이후에 곡식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작업을 거치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믿음의 사람들과 불신의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같이 수확될 것이다.

그리고 같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이고, 그들 가운데 주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구분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 심판은 기쁨이 되는 것이고, 불신자들에게 심판은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다.

 

본문을 곡식에 대한 수확, 즉 성도들만을 향한 말씀으로 본다면, 이는 뒤이어서 나오는 심판의 말씀과 대비한 것으로 보면 무난하다.

어쨌든 마지막 때에는 수확의 때에 반드시 추수가 이루어지듯이, 기한이 차면 하나님의 심판이 꼭 이루어짐을 알 수 있게 한다.

 

두 번째 단락으로 넘어와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한다.

본문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마지막 심판에 관한 또 다른 이미지가 주어진다.

첫 번째 단락을 어떻게 해석하든지 이 두 번째 단락은 불신자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심판이라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이 심판은 포도나무를 예로 들어 비유한다.

본문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7절과는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나 포도송이가 익어서 거두어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전한다.

앞에서도 곡식을 수확하는 시기에 대해 말했지만, 농사에 있어서 수확의 시기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추수의 시기는 결코 연기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만약 곡식이나 열매를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잘 익은 곡식, 튼실한 열매마저도 상하게 되고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추수의 기한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심판의 때는 그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인내하시지만, 그분의 심판은 분명하고도 단호하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기회를 주시지만, 그렇다고 불신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께서 주시는 기회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심판에 더 이상의 자비는 있을 수 없다.

본문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수확의 때에 천사가 낫을 휘둘러 포도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 수확한 것들을 큰 포도주 틀에 던져 넣는다.

그런데 이 포도주 틀을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당연히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한 자들을 향한 것이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포도송이를 수확하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심판임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을 모아서 심판의 틀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

 

그 심판의 극열한 모습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전한다.

본문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포도주 틀에서 압축되어 흘러내리는 포도즙이 심판받은 이들의 피로 묘사되고 있다.

그 피가 말굴레에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고 말하고 있다.

말 굴레는 높이를 의미하고, 천육백 스다디온은 거리를 의미한다.

심판받은 악인의 피가 말의 굴레가 있는 곳, 즉 말의 가슴 부분의 높이 정도까지 차올랐다는 말이다.

그리고 천 육백 스다디온, 290Km에 다달은 거리에 홍수를 이룬다는 것이다.

실로 처참한 광경이다.

이는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결코 자비가 없음을 보여준다.

본문의 천 육백 스다디온은 앞서 말 한대로 약 290Km에 육박한 거리이다.

이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남에서부터 북쪽 끝까지의 거리와 거의 같다.

이는 어느 곳, 어느 누구라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가 처절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모습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셨을까?

어쩌면 주님을 잘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 그 처절함이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는가?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늘 인지하여야 한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심판 받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원래 우리의 모습을 알게 된다.

팔레스타인 전역에 홍수처럼 흐르는 그 피에 당연히 우리의 피가 속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대신 지시면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우리에 피가 그 처참한 피의 홍수에 속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제시해 주신 것이다.

이 은혜, 이 큰 사랑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피의 홍수에 일원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들, 아직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피가 포도주 틀에서 짜낸 포도즙처럼 온 땅을 뒤덮을 피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 비참하고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람이 바로 나임을 알고 서둘러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처절한 심판의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자신을 구원하신 사랑에 진정으로 감사하게 하신다.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복음 전파에 동기를 부여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그때를 알 수는 없지만...

심판의 때는 반드시 올 것이다.

들판의 잘 익은 곡식을 추수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실 것이다.

가라지를 불태우시고 악한 포도송이를 저주의 틀에서 짜내어 버리듯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주어질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이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확신하는 우리에게 기쁨과 기대로 다가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내가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붙잡는다면, 사도 요한이 보았던 환상은 더 이상 우리에게 두려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무서움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이런저런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살리시고, 높이시고, 칭찬하시는 마지막 때의 기쁨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정해진 마지막 때의 승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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