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첫째 짐승.(요한계시록 13:1~10)

by TwoTalents 2020. 9. 11.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첫째 짐승.

 

본문 : 요한계시록 13:1~10

1.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말씀 :

12장에서는 큰 용으로 표현된 사탄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큰 용은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후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지만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큰 용을 포기하지 않고, 또 한 번의 전쟁, 마지막 일전을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12장은 끝을 맺었다.

 

이제 13장에는 두 짐승이 등장한다.

이 짐승들은 큰 용, 즉 사탄에 속한 존재들이다.

131~10절까지는 바다에서 나오는 첫째 짐승, 1311~18절은 땅에서 올라오는 둘째 짐승을 소개한다.

오늘 우리는 첫째 짐승에 대해 나눌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 첫째 짐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본문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바다에서 올라온 이 첫째 짐승은 12장에 등장하는 붉은 용과 특징이 일치한다.

붉은 용은 사탄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니깐 바다에서 올라온 이 첫째 짐승은 사탄과 닮은, 사탄에 속한 짐승인 것이다.

짐승의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을 하는 이름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짐승에 대해서는 적그리스도로 이해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로 이해되는 이 짐승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본문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이 짐승의 특징은 다니엘 7장에 등장하는 네 짐승의 특징을 모아 놓은 모습이다.

이는 이 짐승이 가장 강력하고 폭력적인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짐승은 용으로부터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받게 된다.

이는 마치 하나님의 능력과 보좌, 권세를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짐승, 즉 적그리스도는 노골적으로 그리스도를 흉내 낸다.

본문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짐승의 일곱 머리 중 하나가 죽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죽게 되었던 것의 상처가 낫게 되고 사람들은 그것으로 짐승을 따르게 된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모습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

그것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 양,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을 따르고 섬기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 사람들은 짐승에게 미혹되고 만다.

본문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처럼, 이 짐승에게 미혹된 사람들이 짐승을 경배하는 것이다.

짐승을 경배하는 것은 용을 경배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용은 바로 사탄이다.

 

이렇듯 말세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가장한 짐승이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말씀과 함께함으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업적이 그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비슷한 능력과 이적을 보인다고, 그것으로 그가 진짜라는 것을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순히 업적이 아니라, 모든 일들의 처음과 나중, 과정과 정황을 살펴야 한다.

본문 5, 6.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가짜들로부터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신다.

받을 수가 없다.

? 그들은 애초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그리스도와 비슷할 수는 있다.

엄청난 능력을 보이면서 대단한 일을 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행위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영광이 아닌, 신성 모독과 하나님을 향한 비방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을 향하여 비방하며 핍박하는 것이다.

 

짐승은 용의 권세를 받고 잠시 잠깐 이 땅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본문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기는 것은 성경에서 흔하지 않다.

그만큼 말세에 있을 믿는 자들을 향한 사탄의 공격이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놀라운 능력으로 땅에 속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짐승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에 일시적으로 성공한다.

그것으로 온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까지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본문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짐승의 능력과 승리에 열광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그들은 짐승을 맹신하며, 그를 경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짐승의 뒤에서 그를 조정하고 있는 붉은 용, 사탄을 경배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짐승의 승리는 일시적인 승리이다.

단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잠깐에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짐승은 결코 영원한 승리를 이루지 못한다.

이 승리마저도 하나님께서 잠시 허락하시고 묵인하셨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승리를 왜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 것인가?

사도 요한은 본문의 마지막을 이렇게 전한다.

본문 9, 10.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모든 상황들을 하나님께서는 묵도하고 계신다.

사탄이 성도들을 상대로 승리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실현하고 계시는 것이다.

성도들이 사탄에게 고통을 당하고, 그것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사로잡힐 것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대체적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짐승을 이길 강력한 힘을 주실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말씀을 전하신다.

고통당하여 사로잡히고 죽임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인내하고 믿음을 지킬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본문의 인내는 헬라어로 휘포모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내’, ‘지속’, ‘견딤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그 내면에 즐거운 마음, 희망찬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깐 그냥 힘들게 가까스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지속적으로 견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의 믿음은 헬라어 피스티스구원에 대해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무슨 말인가?

짐승에게 붙잡히는 상황에서도, 그것으로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리스도로인한 구원을 확신하라는 것이다.

그 확신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끝까지 지속적으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바라라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나마 이 땅에서 짐승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성도들의 연단이다.

그러면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최종 단계인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연단되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으로 천국 시민의 자격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승승장구하는 사탄의 세력을 보며 그들에게 속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것이다.

아니 저들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저들의 모습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영의 눈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말세가 깊어 질수록 사탄의 공격은 더욱 교묘하게 우리를 미혹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믿는 자들도 헷갈릴 정도로 그리스도와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가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 같은 일을 해낼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온갖 미사여구로 우리의 귀를 현혹시킬 것이다.

가짜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나님을 모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행하는 그들을 불법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주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것이라고 포장하며 하나님을 상식도 없고, 도덕도 없는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결코 영광 받으실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말씀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기도하며, 하나님께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내하며,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면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된다.

지금, 이 말세의 시대에 사탄은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이길 수 없으니깐, 이념으로, 정치로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눈을 다시 한번 밝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지금 우리가 교회로 모인 것은 믿음 때문이지 정치 문제가 아니다.

믿음으로 모인 이들이 왜 정치 때문에 다투고 갈라서야 하는가?

오직 우리를 구하시고, 지금도 함께하시며, 여전히 동행하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 될 수 있는 믿음의 한마음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