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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나팔을 불다.(요한계시록 8:6~13)

by TwoTalents 2020. 7. 23.

이미지 출처 - 123RF

제목 : 나팔을 불다.

 

본문 : 요한계시록 8:6~13

6.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7.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8.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10.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말씀 :

오늘 본문에서부터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3가지 심판 중에서 두 번째인 나팔 심판이 시작된다.

구약과 유대 묵시 문학을 보면 나팔 자체가 심판과 관련되어 있다.

여호와의 날을 선포할 때면 어김없이 나팔을 사용하였다.

구약 시대 때 여호와의 날은 성격이 다른 두 집단에게 각각의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에게는 이날이 회복의 날이었다.

하지만 이방 민족에게는 심판의 날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호와의 날은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심판의 날이 되는 것이다.

 

일곱 나팔 심판의 시작은 일곱 봉인 심판의 마지막과 오버 랩된다.

이것은 두 심판이 유기적으로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두 심판은 상당히 닮아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닮아있지만, 뚜렷한 차이점도 있다.

 

일곱 나팔 재앙들은 재앙의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의 네 재앙은 자연계에 대한 심판이고, 나머지 세 재앙은 인간에게 직접 향하는 심판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라 할지라도 그 심판이 최후의 심판은 아니다.

징계를 통한 경고로 보아야 한다.

오늘은 첫 번째부터 네 번째 나팔의 심판까지 살펴볼 것이다.

 

먼저 첫 번째 나팔이 불려진다.

본문 6, 7.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일곱째 봉인이 떼어짐과 동시에 준비되었던 나팔 심판이 시작된다.

첫 번째 나팔이 불리자마자 바로 하나님의 징계가 펼쳐진다.

피가 섞인 우박과 불로 인하여 땅이 초토화가 되어 버린다.

수목과 각종 풀들이 삼 분의 일이나 타버리고 만다.

이것이 지구 전체의 삼 분의 일인지, 특정 지역의 삼 분의 일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구 전체라면 두말할 것 없고, 특정 지역이라고 해도 엄청난 재앙인 것은 분명하다.

 

이어서 두 번째 나팔이 불려진다.

본문 8, 9.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첫 번째 나팔이 불렸을 때는 땅의 삼 분의 일이 영향을 받았었다.

두 번째 나팔에서는 바다의 삼 분의 일이 영향을 받는다.

불붙는 큰 산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해석이 있다.

혹자는 실제로 일어난 지역의 화산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는 운석이나 소행성이 충돌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예레미야 51:25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여 전쟁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으로 인해 바다의 삼 분의 일이 피로 덮이게 되고, 삼 분의 일의 바다 생명이 죽게 된다.

거기다가 인간이 만든 삼 분의 일의 배가 파괴되기도 한다.

 

이제 세 번째 나팔이 불려진다.

본문 10, 11.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두 번째 나팔 심판은 바다에 영향을 미쳤다.

세 번째 나팔 심판은 강들이 영향을 받는다.

본문의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은 대체적으로 혜성이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이 큰 별이 떨어지자 강물의 삼 분의 일이 쓴 물이 되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번 재앙은 앞서 언급한 두 재앙과는 달리 사람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

쓴 물을 마셔서 죽었거나, 아니면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어서 죽었거나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와 그에 따른 심판이 점점 강렬해 짐을 알 수 있다.

 

이제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된다.

본문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 바다, 강에 이어 이제는 하늘도 심판의 영향을 받게 된다.

, , 별이 각각 삼 분의 일씩 타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타격을 받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플레게이다.

이는 재앙을 당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해와 달과 별이 어떤 재앙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재앙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것으로 인해 해와 달과 별의 밝기가 삼 분의 일로 줄어버리게 된다.

이 말은 그만큼 어두워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만다.

이 어두움으로 인해 마귀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나팔이 불려지면 이 마귀의 활동에 의한 재앙들이 주어지게 된다.

남은 세 재앙에 대해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본문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앞선 네 번의 나팔 심판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땅과 바다, 강과 하늘의 삼 분의 일이 손상당하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남아 있는 세 재앙은 더 무섭고, 더 고통스러운 심판이다.

공중을 날아가는 독수리가 남은 세 재앙에 대해 , , 라고 표현한다.

본문의 는 헬라어로 우아이라는 단어이다.

그 뜻은 슬프다이다.

그러니깐 슬프다를 세 번이나 연속적으로 외칠 정도로 남은 재앙이 비참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비참한 세 번에 재앙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나눌 것이다.

 

오늘 살펴본 나팔 심판에서 빠지지 않는 말은 삼 분의 일이란 표현이다.

땅도, 바다도, 강물도, 하늘도 모두 삼 분의 일씩, 재앙의 타격을 받는다.

이 삼 분의 일에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는 징계가 더욱 강렬해 졌다는 것이다.

일곱 봉인의 심판에서는 사 분의 일의 권세가 주어졌었다.

그런데 나팔 심판에서는 삼 분의 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더욱 커진 징계, 더욱 광범위한 징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삼 분의 이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반 이상을 남겨 놓으셨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멸망을 위해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이 타락하여서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졌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꺼번에 심판하지 않으신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그 강도를 조절하시며 심판하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말씀의 서두에서 일곱 나팔의 심판이 인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최후의 심판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나팔 심판은 징계를 통한 경고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 아닌 이 심판의 목적은 회복을 위한 경고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깐 인간에게 다시 주어지는 기회인 것이다.

삼 분의 일이 심판을 받았다면, 나머지 삼 분의 이는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창세기에서부터 타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계속해서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심판에 있어서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심판 전에 주어지는 경고이다.

그 경고는 사람들의 이런 이런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요런 요런 심판을 받을 것이다로 끝나지 않는다.

요나를 제외하고는 꼭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심판 전에 우선적으로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요나의 경우도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의 회개를 원하셨다.

그런데 그것을 원하지 않았던 요나가 독단적으로 회개의 메시지는 빼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백 프로 인간이 죄악에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심판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고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기를 원하시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이런 주님의 본성을 안다면 혹시라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징계가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 지가 확실하게 된다.

징계에 당황하거나, 징계받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나를 돌아보고, 나의 죄를 찾고,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물론 하나님께로 돌아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 꼭 붙어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은 언제라도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럴 때, 주저 없이 돌아올 수 있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때로는 딴 길로 가더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주님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신천지에서는...>

일곱 나팔의 심판 역시 이만희의 신천지와 유재열의 장막 성전을 기준으로 해석해 버린다.

일곱 나팔은 배도한 일곱 금 촛대의 장막성전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한다.

유재열의 장막성전이 하나님을 배도하여 죄를 범하였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언자 이만희가 나팔을 불어서 배도한 사실과 그들이 멸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정통 교단에서는 성경을 해석할 때, 거의 합의된 해석이 있긴 하지만, 어떤 해석은 교단마다, 어떤 때는 목회자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답이라고 하는 순간 아주 위험해지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떠도는 신천지에서 만든 교리 비교 영상을 보면.

정통 교회 목사님들 중에 살짝 이상한 해석을 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그것도 부분만 보여 준다.

그나마 그것마저도 거짓으로 왜곡시켜서 전달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한기총 소속의 모든 교회, 정통 교단이라는 모든 교회에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처럼 말을 한다.

그 뒤에 자기들의 교리를 말하면서 자기들 것이 맞다는 주장을 펼친다.

앞의 교리를 엉망으로 소개하고,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교리가 아주 논리 정연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신천지의 교리는 엉망진창이다.

논리도 없고, 개연성도 없고, 근거도 없고, 화면에서 떠들고 있는 그 신천지 강사는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나 떠드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신천지 영상을 볼 때마다, 악한 영의 존재, 미혹하는 영의 존재, 넘어트리는 영의 존재를 더욱 확신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헛소리를 그 정도로 당당하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듣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너무 자신감 있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성경에서 의문이 생기는 말씀이 있다면, 반드시 저에게 물어보시기 바란다.

알면 아는 대로 대답하고, 모르면 알아보고 연구해서라도 대답해 드리겠다.

혼자서 어떻게 알아볼 생각 하시면 안 된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잘못된 말이다.

그냥 아는 것은 힘이 될 수도 있지만, 그 힘이 나를 죽이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언제가 요한복음 18장을 설교했었는데 그때 제목으로 썼던 말이 있는데...

바르게 아는 것이 힘이다.’이다.

틀리게 알 바에야 모르고 궁금해하는 것이 나를 위해 훨씬 바람직한 모습이다.

우리는 바르게 알아야 한다.

특히 성경은 더욱 그렇다.

한마음 신앙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성경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믿음 공동체, 말씀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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