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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셀 수 없는 큰 무리.(요한계시록 7:9~17)

by TwoTalents 2020. 7. 9.

이미지 출처 - 행복신앙연구소

 

제목 : 셀 수 없는 큰 무리.

 

본문 : 요한계시록 7:9~17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서

10.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말씀 :

지난주의 나누었던 144,000명의 개념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144,000은 이스라엘이 완전수라고 생각하는 12라는 숫자와 군사적 단위의 의미를 지닌 1000과 관련된 숫자이다.

구약을 대표로 하는 12지파와 신약을 대표로 하는 12제자, 거기에 군사적 단위를 의미하는 1000을 곱하여 144,000이라는 숫자를 돌출시켰다.

그리고 그 의미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도들을 나타내는 것이며, 구약의 민수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사도 요한은 천사의 인치심을 받은 144,000명의 환상을 보고 난 후에,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본문 9, 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능히 셀 수 없는 이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나왔고, 저마다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나왔다고 말한다.

흰옷에 대해서는 사데 교회를 나누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요한계시록 3장에는 옷을 더럽히지 않고, 흰옷을 입고 나온 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34, 5.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흰옷을 입은 자들은 주님 앞에서 합당한 자들이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최후의 승리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종려 가지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들을 향해 흔들며 환영할 때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능히 셀 수 없는 이들은 이미 주안에서 승리한 이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이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찬양을 드리며 구원하심에 대해 영광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능히 셀 수 없는 무리와 지난주에 나타났던 144,000명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신천지는 이 두 무리를 구분하여 전혀 다른 무리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

 

정통 교단에서는 크게 3~4가지 해석이 있는데, 가장 인정받고 있는 해석은 ‘144,000능히 셀 수 없는 무리를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는 같은 무리로 보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144,000명은 민수기를 근거로 완전수 12를 통해 돌출한 숫자이다.

이 숫자의 의미는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을 나타내고 있다.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는 창세기를 근거로 믿음을 가진 모든 나라와 족속,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세기 13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표현하셨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땅의 티끌과도 같이 능히 셀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해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결국 144,000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둘 다 신구약을 포함한 모든 아브라함의 자손, 모든 믿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이미 승리한 흰옷 입은 무리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11, 12.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성도들이 먼저 찬양하자, 천사들과 장로들, 네 생물이 이에 화답하며 찬양한다.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과 어린 양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이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교회와 천사들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찬양이다.

 

이 찬양이 있은 후에 한 장로와 사도 요한의 짧은 대화가 이어진다.

본문 13, 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한 장로가 사도 요한이 궁금해할 수 있는 사항을 자신이 질문하는 것으로 먼저 언급하게 된다.

장로의 질문은 능히 셀 수 없는 무리, 즉 흰옷을 입고 나온 저들이 누구이겠냐는 것이다.

방금 말했듯이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사도 요한이 가장 궁금해할 사항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곧바로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라고 장로의 질문에 응답하며 답을 요구한다.

사도 요한의 이 대답을 들은 한 장로는 자신의 질문에 자신이 답을 하게 된다.

 

흰옷을 입고 승리하며 나아온 무리는 바로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이었다.

그들이 옷이 그토록 희었던 것은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이 씻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큰 환란이란 어떤 환란을 말하는 것인가?

이 환란을 특정한 어떤 역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문맥상으로 볼 때, 바로 이전까지 있었던 하나님의 인 심판, 그 인 심판이 여러 모양으로 교회에 환란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종말의 시대에 주어지는 교회의 환란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큰 무리144,000명과 같은 무리인데, 다른 개념으로 본 것이라고 나누었다.

그렇다면 큰 무리에는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에게 종말의 환란이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환란을 각 시대마다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환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것이 어떤 환란이든지 그 환란 속에서 승리함으로 나아온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이 큰 무리라는 것이다.

 

새벽에 베드로전서를 묵상하면서 환난, 고난에 대한 베드로의 정의를 나누었다.

베드로전서 15~7.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고난, 환란은 검증이며, 또한, 연단이다.

내가 환란 속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지킬 때, 내 믿음이 진짜임이 검증되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연단되어서 강해지고,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환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어, 스스로 믿음을 검증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연단 받아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온 사람들이다.

 

이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할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도 보게 된다.

본문 15, 16.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언제나 함께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성도들에게는 모든 환란과 슬픔이 끝이 났다.

죄 때문에 괴로워할 일이 없다.

고통으로 아파할 일도 없다.

죽음을 두려워할 일도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삶의 모든 부분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구원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본문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본문의 보좌 가운데 계신은 그리스도의 중보자 적 역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자 역할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을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구속받은 자들을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으로 흰옷 입은 자들, 즉 미래에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성도들, 그들이 누릴 영원하며 놀라운 희락과 평강의 축복을 약속하신다.

 

 

<신천지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신천지는 ‘144,000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다른 집단으로 인식한다.

144,000명은 지난주에 말 한대로 자기들, 신천지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말세에 신천지의 가르침을 받고 신천지로 몰려들 다른 교단의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신천지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 신천지였던 144,000명처럼 큰 무리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천지 144,000명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다스리게 될 것이고, 큰 무리는 일반 백성으로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계속되는 말이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자체가 코미디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웃긴 해석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더 신기한 건, 이걸 듣고 아멘 아멘 하고 있다.

이만희의 신천지와 유재열의 장막성전은 성경 어디와도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집단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자기들은 다스리는 자가 되고, 나머지는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 주장하는 것 자체가 천국의 개념을 전혀 모르는 멍청한 소리이다.

 

마태복음 201~16.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천국은 이런 곳이다.

역차별의 불만이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곳이다.

그런데 거기서 자기들이 왜 다스리고 있는가?

기본적으로 천국을 모르니 이런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오늘 등장한 흰옷 입은 무리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환난 중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온 사람들이다.

환난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켰다는 말이다.

오늘날 환란은 직접적인 고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주 교묘하게 나를 헷갈리게 하고, 유혹하고, 하나님의 뜻에 살짝 벗어나게 한다.

그 살짝 벗어남이 나중에는 완전히 멀어지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고난이 갈라디아에서는 형식주의로 나타났다.

고린도에서는 분열이 문제였다.

오늘날은 신천지와 같은 이단 사상, 그리고 정통을 가장한 전광훈 같은 이단 사상.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고난이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나의 믿음을 지키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 하여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어떤 유혹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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