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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제사.(말라기 1:6~14)

by TwoTalents 2020. 7. 22.

이미지 출처 - Walking with the Bible

제목 : 잘못된 제사.

 

본문 : 말라기 1:6~14

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 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 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 이라

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 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 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4.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 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 :

많은 목회자들이 말라기의 본문을 통해 십일조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십일조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크고, 넓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본문을 편중되게 해석해 버린다.

그러면서 십일조를 잘 내야 한다는 설교 하나로 마무리해 버린다.

이것은 오히려 말라기 전체를 통해 전해지는 위대한 메시지를 가리고 축소하는 어리석은 처사일 뿐이다.

십일조 얘기는 말라기에서 그저 작은 한 조각일 뿐이다.

말라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전반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와 함께 제사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당시 하나님 앞에서 잘못 드려지는 제사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어긋난 관계를 경고하고 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께 잘못된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부정하게 집례하고 있었다.

말라기는 그에 대한 책망과 경고가 나타난다.

본문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공경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고 책망하신다.

그랬더니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언제 하나님을 멸시하였는지를 되묻고 있다.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거룩한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과 당시 제사장들의 기준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기준의 차이 중 하나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하나님 앞에 더러운 떡을 드렸다는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멸이 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언제 하나님을 더럽게 했는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언제 하나님을 더럽게 했는지 질문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바친 더러운 떡을 이렇게 설명한다.

본문 8절 상반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구약시대의 제사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으로 드려졌다.

레위기에는 이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제시한 방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제물을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 정결한 제물을 바치지 않고, 병들어서 다 죽어가는 것, 자기들도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때,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가장 비싸고 좋은 것만을 바치라는 뜻이 아니다.

레위기 114.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레위기 1장은 번제에 대한 방법과 기준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번제는 소나 양, 염소로 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들에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로 예물을 드려도 되게 하였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향한 배려이다.

값비싼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것, 정결한 것, 정직한 제물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지금 본문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자들은 바로 제사장들이다.

당연히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제물을 드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드리는 제물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당연히 죄인 것이고…….

아마도 다른 사람이 가져온 온전한 제물을 자신의 흠 있는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횡령을 하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이런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8절 하반절.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지금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세상 권력에게 선물이라고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소위 제사장이란 인간들이 세상의 권력보다도 하나님을 더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하나님을 이렇게 하찮게 여기며, 썩은 제사를 드리고도 입술로 구하는 것이 하나라도 이루어지겠느냐는 것이다.

 

말과 행동의 차이, 입술은 겸손하나 육체는 하나님을 향한 멸시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이러한 외식의 제사를 제발 좀 누가 막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나님은 호소하신다.

본문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이렇게 부정한 제사를 드리고도 깨닫지 못하는 제사장,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렇게 경고하신다.

본문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너네가 그렇게 나오면, 너네 말고 다른 민족으로 내가 영광 받겠다.

오히려 이방 민족이 더 깨끗하고 신실한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제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의 가치가 없게 된다.

그들은 살아있으나 죽은 민족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가 벌어져도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경고하신다.

본문 12, 13.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번거롭게 생각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부정한 것이든 뭐든 자기들 편하게 아무렇게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런 봉헌물은 아무리 많이 가져온다고 하여도 하나님께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서원, 약속을 해 놓고선 하나님을 속여 부정하게 제사를 드리는 이에게는 저주가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본문 14.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서원이란?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서원, 하나님과의 약속 깨는 것을 아주 쉽게 해버리는 것이다.

내가 좋은 수컷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는데…….

그래서 지금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속여 흠 있는 것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막상 좋은 수컷을 드리려고 하니깐 아까웠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사기를 친 것이다.

 

이렇게 제사장으로 시작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그중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사람까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제사를 드림으로 인해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 저주까지 받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제사에 대한 말씀이니깐 당연히 예배에 적용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제사와 오늘날의 예배는 당연히 같을 수 없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예배는 말 그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제사는 명문화된 하나님의 명령, 그러니깐 제사의 방법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제사와 잘못된 제사를 구분하는 것이 명확할 수 있다.

하지만 예배의 방법이나 형식을 말하는 성경은 어느 곳에도 없다.

그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예배자의 자세만을 말씀하실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에 대한 말씀을 예배에 단순히 적용해서 생각하기란 무리가 있다.

 

그런데 명확한 사실은 제사의 대상과 예배의 대상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 김성연 목사의 하나님이시고,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인격의 하나님이시다.

말라기 시대의 제사를 싫어하게 했던 더러운 것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것이다.

 

주일날 하나님을 만나러 오면서, 세상에서 지위가 좀 높은 사람들 만나러 갈 때보다 더 준비 없고 노력이 없다면 당연히 오늘날에도 싫어하신다.

입술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것저것 구하는데,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지키지 않는 것 무지하게 싫어하신다.

사기를 쳤거나, 도둑질을 했거나, 아님 노름을 했거나,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눈물 흘리게 해서 강탈하듯 벌어들인 제물로 헌금하는 것, 하나님께는 쓰레기일 뿐이다.

교회가 협의를 해서 가장 많은 믿음의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정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 시간이 오전 11시가 됐든지 오후 1시가 됐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하고 모이기에 힘쓰려는 우리의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 빼고, 저 시간 빼고…….

모임 시간, 운동 시간, 휴식 시간 다 빼고 남은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것, 그런 예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교회가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주일 낮 11시라면 그 시간을 정해 놓고, 그때만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려는 노력…….

그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를 예배하고 있으며, 이 예배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내가 누구로 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깨닫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에…….

주님이 싫어하시는 더러움의 예배를 드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때에…….

하나님께서는 말라기를 통해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교회의 문을 누가 좀 제발 닫아달라고 그렇게 말씀하시게 될 것이다.

 

가장 먼저는 예배를 인도하는 제가 하나님 앞에 깨끗한 예배자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람의 많고 적음, 예배 순서의 다양함, 예배당의 규모, 헌금의 많고 적음…….

이런 것이 기준이 아니다.

예배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예배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 사람이 너무 없어요, 아기들이 많이 떠들어요, 찬양팀 찬양이 너무 어려워요, 찬양대가 찬양을 너무 못해요...’

 

물론 이런 부분은 조정이 필요하고, 할 수 있다면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훌쩍 뛰어넘어 주님 앞에 예배자로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으로 예배하니깐 집중이 잘 안 되고, 직접 설교를 듣는 것 보다 깊은 감동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에서 예배에 집중해 나가고, 설교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참된 예배자의 모습인 것이다.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예배를 방해할 수 없는, 그 어떤 방해도 우리의 예배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그런 예배가 이루어지는 사람이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주님은 오늘도 신령과 진정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로 나아가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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