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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0 친구의 외침

참된 권위, 바른 가르침.(요한복음 13:12-15)

by TwoTalents 2022. 5. 28.

제목 : 참된 권위, 바른 가르침.

 

본문 : 요한복음 13:12~15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말씀 :

오늘은 참된 권위와 바른 가르침에 대해 나누려고 한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중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다.

 

혹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내용이 어디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 인지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에피소드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교회에서도 세족식을 종종 하곤 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내용이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거나, 적어도 2개 이상의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만큼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그 당시에도 흔하지 않은 기이한 일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이 사건이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중에 언제 일어났느냐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대체적으로는 세족식이 목요일에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간혹 수요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어쨌든 하루 이틀 뒤에 예수님께서는 붙잡히시고 죽음을 맞이하시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나눔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3년간 함께 했던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시는 것이다.

물론 부활 후에 만남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만남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만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며 나누었던 3년의 시간을 총정리하는 시간이 바로 본문의 이 시간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전,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다가 느닷없이 겉옷을 벗으시고 대야에 물은 담으신다.

요한복음 134, 5.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한 명 한 명 씻기시는 것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이 일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타인의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 하는 일이었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주님의 씻겨주심을 사양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통념에서 벗어난 일이다.

베드로는 통념에서 벗어난 일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베드로의 오판이다.

지금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려는 이가 누구인가?

예수님이시다.

세상의 통념을 뛰어넘는, 통념과는 무관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으며 따르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존재적 참된 의미를 여전히 모르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적인 생각과 고백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양하는 베드로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스승 앞에서 겸손함으로 사회적 통념을 따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 입장에서 베드로의 사양은 그저 무지함이었다.

예수님의 존재적 의미, 예수님의 사명,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지금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베드로의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당신의 겸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겸손을 행하시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주께서 이렇게 겸손을 보이시는 이유에 대해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베드로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의 모습으로까지 낮아지는 예수님의 겸손 앞에서 제자들이 보여야 할 반응은 어떠한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본문의 아느냐는 헬라어로 기노스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뜻은 분석하다’, ‘이해하다’, ‘알게 되다등등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자신의 행위를 아는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그 행위의 이유를 이해하는지를 물으시는 것이다.

단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보이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행동으로 인한 배움과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예수님은 선생님이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분이시라는 말이다.

그러니깐 예수님은 지금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으로 무언가를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다.

 

본문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가?

내가 너희의 주인으로, 너희를 가르치는 자로 너희 발을 씻었다.’

그러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은 것이다.’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본문 옳으니라는 헬라어로 옵헤일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직분을 다하다’, ‘해야 한다’, ‘당연히 하다

제자들 서로서로가 발을 씻어 주는 것이 해야 할 일이며, 당연한 일이며, 직분자로써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가르침을 말로 하지 않으셨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가르치셨다.

본문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이 행동으로 본을 보이시며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가?

바로 겸손과 섬김이다.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으로 겸손하게 섬기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렇게 겸손하게 섬기는 것을 제자들이 본받고 그대로 행하기를 원하셨다.

 

본문의 은 헬라어 휘포데이그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말은 견본’, 혹은 예시라는 뜻을 가진다.

예수님의 행동을 견본으로 하여 보고 그대로 하라는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겸손과 섬김의 예시로 참고해서 그대로 하라는 말씀이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인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 너무나 놀라운 일이지만, 오늘의 핵심은 제자들이 그런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서 자신들도 서로의 발을 씻기는 것이 핵심이다.

예수님의 겸손한 섬김을 제자들이 보고 배워서 그대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기에 직접 행동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저는 예수님의 교수법,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방법이 가장 올바른 모습이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그런데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삶에서 직접 행하는 것으로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다.

섬기라고 말씀하시고 진짜로 섬기셨다.

겸손하라고 가르치시고 진짜로 겸손하셨다.

사랑하라고 선포하시고 진짜로 사랑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말뿐이었던 당시의 그 어떤 서기관이나 제사장들의 가르침보다도 놀랍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도자들의 권위를 말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행함이 없는 말은 허망한 소리일 뿐이다.

지도자의 권위는 당연히 그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삶은 예수님처럼 철저히 낮아질 때, 그것이 참된 권위임을 인정해야 한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겸손함으로 행동하며 가르치는 예수님의 교수법이 가장 올바른 방법임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이 여전히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심으로 본을 보이실 때, 주님의 가르침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했던 베드로는 그것을 사양하는 실수를 하고 만다.

그래서 급기야 그렇게 되면 너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이다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이렇게 세상의 통념에 갇힌 자신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베드로의 모습은 결코 베드로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목회를 하며 겪은 실제 경험이다.

어느 날 예배 후에 어질러진 본당을 보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치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제가 성도들 보는 앞에서 치웠다.

예배당 자체가 거룩한 곳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거룩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하게 잘 보존해야 한다

이것은 유치원만 나와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안 치우기에 말로 하기보다는 몸소 보여주면 다음부터는 모두가 자기 자리는 치울 것으로 생각했다.

저의 착각이었다.

어차피 목사님이 치우시니깐, 사모님이 치우시니깐.

오히려 자신이 사용한 휴지, 간식 갖다먹은 접시, 물 마신 컵 등등을 예쁘게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행동으로 보여준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불이 들어오지 않는 예배당의 전등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지저분한 본당을 보면서도 목사님이, 전도사님이 청소 안 하셨네라는 말만 하고 있는가?

고장 난 스피커 소리에 대해서 예배 내내 불평만 하고 있는가?

교회 의자가 다 허물어져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도 별로 슬프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교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말씀 마무리…….

오늘은 참된 권위와 바른 가르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위는 사람을 통솔하는 힘이다.

그런데 권위라는 것은 결국 함께하는 사람들이 인정해야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목소리 크고, 윽박지르고,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로 자기 자랑하기 바쁜 사람들에게 권위를 부여해 주고 있다.

그것을 카리스마라고 포장까지 해준다.

 

여러분, 행함이 없이 목소리만 큰 것은 그저 웃기는 빈 깡통 소리일 뿐이다.

자기는 하지도 않으면서 성도들에게만 행하라고 협박하고, 그것을 가르침이라고 사기치고...

그 사람은 사기꾼이다.

그런 자들에게 속지 말라.

조용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 그런 목회자의 권위가 참된 권위이다.

우리는 그러한 삶을 본받아야 하고 그러한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말뿐인 시끄러운 깡통들이 잠잠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셨던 것처럼 말씀을 실천함으로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참된 가르침이다.

우리는 참된 권위와 올바른 가르침 앞에 반드시 반응해야 한다.

우리의 반응은 올바른 가르침을 본받아 나 또한 그렇게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본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이 주님의 본을 받아 실천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도 올바른 본을 보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람이교회 공동체를 비롯하여 주님을 예배하는 모든 이들이 참된 권위를 인정하고, 바른 가르침을 즐거이 듣고.

그 권위와 가르침 앞에 실천함으로 반응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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