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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0 친구의 외침

가나안을 향한 목표.(창세기 11:27 - 12:9)

by TwoTalents 2023. 1. 24.

제목 : 가나안을 향한 목표.

 

본문 : 창세기 11:27~12:9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말씀 :

2023년 첫 예배 때, 올해 사람이교회의 표어를 말씀드렸다.

2023사람이교회의 표어는 ‘2023, 가나안을 내딛는 첫발이다.

그래서 새해 첫 예배의 설교를 가나안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나누었었다.

3주가 지났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잘 나가고 계시는가?

 

오늘은 설날이다.

음력으로 새해 첫날이 된다.

특이하게도 2023년은 양력의 첫날도 주일이었고, 음력의 첫날도 주일이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올 한해 사람이교회의 나아갈 방향, 나아갈 목표에 대해 나누어보려고 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목표에 관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본문에는 같은 목표를 가진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그런데 같은 목표이지만, 이 두 사람은 목표를 세우게 되는 이유와 목표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그 목표 이후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 차이점이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오늘 살펴볼 두 사람은 바로 데라와 아브람이다.

데라는 아브람의 아버지고, 아브람은 데라의 아들이다.

시기적으로는 다르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들의 목표, 목적지는 바로 가나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나안을 말할 때면 아브람만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브람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간 것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아브람 이전에 그의 아버지인 데라 역시 가나안을 목표로 그곳을 향해 나아갔던 것을 볼 수 있다.

본문 1131절 상반 절.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아브람보다 먼저 데라가 자신의 온 가족을 이끌고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한 것이다.

그렇다면 데라는 왜 자신의 고향인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 했을까?

아쉽게도 그 이유에 대해 성경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과 비슷한 시기의 기록과 전승으로 그 이유를 추측할 뿐이다.

어떤 학자는 아브람이 받았던 하나님의 약속을 데라가 먼저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깐 아브람에게처럼 하나님께서 데라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데라가 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온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데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약속이 그의 아들인 아브람에게로 전가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훗날에 기록된 성경의 다른 부분이 이것을 부정한다.

여호수아 242절에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고백하는 부분이 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여호수아는 데라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고 백성들에게 말한다.

데라는 아예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데라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데라의 행동, 그러니깐 그가 가나안으로 향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저는 데라가 가나안으로 가려던 이유를 당시의 환경적 요인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환경 요인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자주 이루어졌었다.

 

아브람도 가뭄을 피해 온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동했었다.

이삭과 야곱도 가뭄 때문에 온 가족이 움직이는 대이동을 감행했었다.

데라 역시 가뭄이나 홍수, 혹은 전염병, 아니면 또 다른 생존을 위한 필연적 이유 때문에 가나안을 가려고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어쨌든 그 이유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든지 간에, 데라가 가나안으로 가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가려고 했던 이유는 전혀 다르다.

그는 자기 뜻에 따라 가나안을 꿈꿨던 것이 아니다.

본문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람이 가나안을 향한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성경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브람에게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제대로 수행했을 때의 축복 역시 약속하셨다.

본문 122, 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람은 이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믿었던 것이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온 가족을 다 이끌고, 자신의 아버지인 데라가 가다가 멈춰버린 땅, 하란에서부터 가나안을 향해 다시 나아갔던 것이다.

본문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이렇게 데라와 아브람은 똑같은 목표, 똑같은 목적지가 있었지만, 그 목표를 세우게 되는 이유는 전혀 달랐었다.

목표의 이유가 달랐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 역시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데라는 고향까지 버리고 온 가족을 거느리고 대이동을 진행했지만, 자신이 목표로 했던 가나안에 결국 들어가지 않았다.

본문 1131절 전체를 다시 읽어 보겠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가나안을 가던 도중 하란 땅에 이르러서 거기에서 그냥 머물러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본문의 거류하였다라는 말은 아주 정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머물게 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곳이 좋으니까 다른 데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하란 땅이 데라에게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는 이 하란 땅에서 죽을 때까지 머물게 된다.

본문 11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처음 데라의 출발지였던 우르에서 하란까지의 거리는, 하란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에 두 배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깐 지금까지 왔던 거리의 반만 더 가면, 이제 처음에 목표했던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해 버렸다는 것이다.

데라가 이렇게 목적지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중도에 그만둬버린 이유에 대해서도 역시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어떤 학자는 데라가 노쇠해져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이동하기에는 몸이 너무 늙어버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는 데라가 가나안을 오가며 상업을 하는 상인들에게 가나안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가나안땅 거주민들의 횡포가 강도와 같다는 그런 소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데라가 두려워서 그냥 하란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데라가 가나안에서 얻고자 했던 것을 하란에서 이미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필요 때문에 가나안을 향했는데, 그곳을 가던 도중인 하란에서 그 필요가 충족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그는 이동할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데라가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멈춘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자기의 뜻에 따라 세운 목표였기 때문에 아주 쉽게 자기 뜻대로 그것을 멈춰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내 뜻이니깐 내 맘대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브람은 달랐다.

애초에 아브람의 목표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뜻이나 처지에 상관없이 그것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노력했고 결국 그 목표를 이루게 된다.

본문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다.

아브람에게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그의 발걸음을 방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오직 자신이 임으로 세운 목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었고, 하나님은 그 목표와 더불어,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그 목표를 통한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다.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갔던 것이다.

데라와는 다르게 아브람에게는, 하란에서도, 하란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 그 축복을 대신할 것은 없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데라는 자신이 목표로 세운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하란에서 나름의 만족감을 얻게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으로 끝나버렸다.

그에게는 더 이상의 것은 없었다.

하란에 정착하여 몇십 년을 보내면서, 더 이상의 목표 확장도, 또 다른 목표의 세움도 없었다.

결국, 처음 세운 목표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현재의 평안한 삶에 만족하며 그렇게 살다가 자신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하지만 아브람은 달랐다.

첫 번째 목표를 이룬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목표를 더욱 크고 넓게 확장시켜 주신다.

본문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람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은 아브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에게까지 확장되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웠던 목표는 그것이 이루어지므로 끝나 버리는 1차 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브람의 목표는 그의 자손에게 확장되고, 그것은 또 그 후손에게, 그리고 다시 그 후손에게로 이어져 결국, 예수그리스도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구원에 이르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람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은 자신이 임으로 목표를 세웠지만, 그마저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자기 한 몸 간수하며 현실에 안주하다가 그렇게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성실히 행하여, 자신의 후손은 물론, 모든 민족의 복이 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냈다.

 

말씀을 마무리.

오늘 우리는 똑같은 목표를 세웠던 아버지 데라와 아들 아브람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목표를 세우는 첫 이유부터 달랐고, 중간의 그 과정도 달랐으며, 그 마지막도 달랐다.

애초에 자신이 임의로 목표를 세우고 진행한 데라의 결과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한 아브람의 결과는 같을 수가 없었다.

자기의 뜻에 따라 세운 목표는 그 목표 안에서 그냥 끝나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목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더욱 확장되고, 더욱 넓어지고, 더욱 광대해 졌다.

 

이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진 자신의 목표 앞에서 기쁨보다는 오히려 허무함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잠시 기뻐하지만, 이내 방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목표 하나만을 위해 달려왔는데, 그것이 이루어지고 나니깐 이제는 삶의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물론, 목표를 잘 이룬 뒤에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또다시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이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떠한가?

여러분의 목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가 어떠한 목표를 세웠든지 간에 그 목표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목표는 결국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세운 우리 인생의 목표는 끝나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영원함과 함께하는 것이다.

 

저는 지금 세상 사람들이 세우는 자기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목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조금 더 넓게 가족을 위해, 좀 더 넓게 민족을 위해, 조금 더 넓게 온 인류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한다면,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그 장소, 그 시간, 그 시대 안에서 일뿐이고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목표는 다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목표는 그 깊이와 높이, 넓이와 길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영원한 나라와 그 속에 거할 영원한 생명으로 연결 되어진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여러분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여러분의 발은 어디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세우더라도 하나님과 함께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목표를 세우더라도, 그들과는 그 이유가 달라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라는 이유가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세운 목표가 주 안에서 올바르게 확장되고, 결국은 천국을 향한 바른 목적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교회는 2023년의 목표를 가나안으로 두었다.

주님과 함께한 광야를 성실하게 걸어서 이제 주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어느 해 보다도 더욱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을 향한 아름답게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순종함으로 행동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의 이름으로 가나안을 향한 목표를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다 깊은, 보다 높은, 보다 넓은, 새로운 목표를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한다.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가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가나안을 향하는 아브람의 여정과도 같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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