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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0 친구의 외침

흩어져야 할 때...(사도행전 8:1-3)

by TwoTalents 2023. 3. 7.

제목 : 흩어져야 할 때...

 

본문 : 사도행전 8:1~3

1.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말씀 :

지난주 말씀에서 스데반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죽음을 맞이한 첫 번째 순교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스데반이 죽임을 당한 이후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사도행전 8장부터는 새롭게 전개되는 교회의 움직임과 그것으로 인해 세상을 향해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늘 본문은 세상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를 설명한다.

 

먼저 스데반의 죽음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울의 모습이 소개된다.

본문 1절 상반절.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앞서서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던 사람들의 옷을 맡은 역할을 했었다.

이것만 보면 그가 스데반의 죽음에 어느 정도까지 연관되어 있으며, 그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사울이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게 여겼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그가 최초의 순교자가 죽임을 당한 것과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사울이 직접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지지는 않았더라도, 그는 그 일에 찬동했으며, 그 결과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어쨌든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사울을 비롯한 유대교에 열심인 사람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측근들 등 스데반을 죽인 것에 관련된 이들에 의해서 교회를 향한 핍박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본문 1절 하반절.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 이전에도 사도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사도들이 두 번이나 체포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경고만 주어졌을 뿐, 직접적인 핍박을 교회에 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는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사도들을 단순히 감옥에 가두었던 것과 달리, 스데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더 큰 자극이 주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들의 경우,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병든 자를 낫게 하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하게 하는 이적을 보였다.

그러한 사도들에 의해 일어난 이적을 직접 본 사람도 있고, 들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핍박을 가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백성들의 보는 눈도 있고, 혹시나 이적의 힘으로 자신들이 되레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스데반의 경우는 그의 직접적인 설교 때문에 급진자들이 흥분하였고, 누군가가 진정시키기도 전에 돌을 들어 스데반을 친 것이었다.
그렇게 스데반이 죽고 말았다.

그런데 스데반이 죽었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스데반이 죽었다고, 낮이 밤처럼 된다거나, 천둥이 친다거나, 땅이 울린다거나, 그 어떤 이상 징조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진 사람들, 사울처럼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은가?

별것 아닌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을 때 찔림이 있었고, 꺼림칙한 마음이 있었다.

스데반의 말이 맞는 말이지만, 듣기 싫었고 화만 더 날 뿐이었다.

그래서 돌로 쳐서 그를 죽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가?

굳이 듣기 싫은 말들을 듣고 있을 필요가 없다.

스데반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면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스데반과 같이 예수의 도를 따르고, 전하는 이들을 그냥 핍박하고 죽여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교회와의 충돌이 없어도 그냥 큰 박해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 박해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단자를 없애고자 하는 목표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이 박해가 복음이 세상으로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교회를 향한 박해로 인해 사도들을 제외한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는 물론 사마리아의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가 흩어지는 것은 원래 주님께서 원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교회에 임하시게 되면, 그때부터 예루살렘은 물론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복음 들고 나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명하신 마지막 명령이다.

그런데 성령이 이미 임했다.

오순절에 거룩한 성령이 임하셨고, 그러고도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령을 받고, 은혜받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나누고, 교제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던 것인지.

아니면 교회 밖의 세상이 두려웠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위임명령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교회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즐거워하고 있었고, 고작 예루살렘에서만 예수의 길을 전할 뿐이었다.

좀 극단적으로 말씀하시는 목회자 중에는 예루살렘교회가 자기들끼리 좋아서 안일하고 나태해져 있으니깐.

정신 차리라고 주께서 스데반을 순교하게 하셨고, 교회에 박해가 주어지는 충격을 가하셨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강제로 흩으셨다는 것이다.

 

어쨌든 스데반의 순교와 교회를 향한 박해로 예수님의 명령대로 교회는 모든 땅을 향해 흩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교회가 그냥 흩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흩어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본문에 흩어지니라는 헬라어로 디아스페이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씨앗과 연관된 단어이다.

두루 뿌리다’, ‘널리 퍼트리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깐 교회가 세상으로 흩어져서 씨앗을 두루 뿌리고, 널리 퍼트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교회가 무엇을 두루 뿌리고, 무엇을 널리 퍼트리겠는가?

복음의 씨앗을 두루 뿌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다.

이처럼 스데반의 순교, 그로 인해 이루어지는 교회를 향한 박해는 교회도, 대적자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믿음의 결과를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결과론적 관점에서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미래의 역사를 알지 못했던 때에는, 그러니깐 스데반이 죽고, 교회가 핍박을 받았던 바로 그 당시에는 교회에 엄청난 위기가 몰려온 것이 사실이다.

예루살렘교회가 성립되고 가장 큰 위기가 닥쳤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슬퍼하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본문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예수님께서 핍박에 대해 미리 말씀하셨고, 성도들도 예수의 이름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막상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교회는 분명히 당황했을 것이다.

특히나 교회를 위해 따로 세움을 받은 일꾼 중 한 명인 스데반이 죽게 된 것은 교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슬펐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력했던 스데반의 죽음으로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도 있었을 것이다.

대적자들이 스데반의 죽음으로 용기를 얻고, 더 대담하게 교회를 핍박했던 것과는 반대로 믿음의 사람들은 위축되고 마음이 불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교회를 핍박하는 것에 용기를 얻게 된 이들 중에는 사울도 포함되었다.

이전에 그는 마음으로만 생각하던 사람이다.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이 있어도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데반 순교 후에 사울이 변한 것이다.

그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반감을 실행하게 된다.

본문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였다고 말한다.

본문의 잔멸할새는 헬라어로 엘루마이네토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신약성경을 통틀어 본문에서만 사용된 단어이다.

모욕하다’, ‘더럽히다’, ‘파괴하다의 뜻을 가진다.

구약의 헬라어 버전인 70인 역에서 시편 80편에 멧돼지가 포도원을 짓밟아 황폐화시키는 것을 이 단어로 표현하였다.

멧돼지가 포도원을 헤집고 다니며 짓밟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해 농사는 망한 것이다.

사울이 교회를 향해서, 세상 속에서 은신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찾아 그렇게 헤집고 다닌다는 말이다.

그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리스도인을 붙잡아 들였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완전히 박멸할 작정을 하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스데반 죽음 이후 모든 상황은 교회에 불리하게 되었다.

교회를 향해서 조금은 조심스러웠던 모습도 사라져 버렸다.

대놓고 박해했고, 특별한 잘못이 없어도 찾아내서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사울처럼 생각만 했지 직접적으로 박해에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담대하게 용기를 내어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다.

표면적으로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 교회는 실패하였고, 교회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도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분명히 교회의 위기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 위기를 통해 오히려 세상 모든 땅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교회에 박해가 가해졌고, 성도들은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음의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버린 것이 아니다.

교회는 스데반의 마지막을 직접 보았거나, 들었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했던 말.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는 스데반의 고백은 성도들로 하여금 스데반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도망갈지언정 포기하지는 않았다.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졌지만, 그곳에서 복음의 씨앗을 두루 뿌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마지막으로 명령하셨던 지상위임명령을 교회가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박해에 의한 교회의 붕괴였지만, 결국은 세상을 향한 교회의 확장이었던 것이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OOO교회가 담임 목회자 문제와 교회 증축과정에서 일어난 도로점용 문제로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물론 이 문제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서울 강동구에 있는 OO교회는 목회자 세습문제로 시끄러웠고, 이 문제 역시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이 두 교회의 문제를 바라보며, 내심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

혹시 하나님께서 그 두 교회를 강제로 흩으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너무 비대해진 나머지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윤리에 둔감해진 두 교회를 주님이 직접 해체하셔서, 건강한 작은 교회의 모습으로 곳곳에 흩으시는 것은 아닐까?

그런 기대와 함께 기도도 그렇게 했었다.

제발 저 두 교회를 흩으시라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교회는 반대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세상이 자신들의 불법을 비난하는 중에도 더욱 자기들끼리 뭉치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물질의 바벨탑을 하늘 높이 쌓아놓고는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떠들어 댔다.

결국, 복음의 씨앗이 두루 뿌려지고, 예수의 이름이 널리 퍼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물질만능주의, 교회의 부도덕, 교회의 맘몬 신앙, 교회의 이기주의.

예수님 없는 교회만을 세상에 널리 전파할 따름이었다.

 

세속의 기준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했고, 버릴 수 없었고, 비난을 감수해서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조롱을 당해도.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도 함께 예배하는 예배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물질의 바벨탑을 쌓아놓고는 그것을 기준으로 모여 있을 때가 아니다.

맘몬의 바벨탑을 무너트려야 한다.

맘몬의 바벨탑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우상숭배이다.

지금은 모일 때가 아니라 흩어질 때라고 믿는다.

특히나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교회가 흩어져야 할 시기임을 더욱 분명하게 느낀다.

믿는 사람들끼리 좋아서 희희낙락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전 세계가, 온 나라가 힘들어하는 이때, 우선적으로 흩어짐을 실천해서 교회의 다름을,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나타내어야 할 시기임을 확신한다.

세속의 기준에서 그것은 교회의 실패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명령은 흩어짐에 있다.

모두가 실패라고 생각했던 죽음 앞에서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던 스데반의 영광스러움을 기억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교회의 위기인가?

모이기가 어렵고, 모이는 것이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가?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기회, 흩어질 기회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이 새로운 기회 속에서, 모든 땅으로 흩어져,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리스도 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복음을 두루 뿌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널리 퍼트리는 내가,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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