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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0 친구의 외침

징계와 사랑(신명기 2:7, 13~15)

by TwoTalents 2020. 3. 29.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징계와 사랑

 

본문 : 신명기 2:7, 13~15.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13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 망하였나니

15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말씀 :

신명기는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40여 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는 것을 그 배경으로 한다.

 

신명기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지도자 모세의 3편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3편의 설교의 주세는 각각 '뒤를 돌아보라', '위를 바라보라', '밖을 보라'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의 본문은 그중에서 첫 번째 설교에 속한 부분이다.

그러니깐 '뒤를 돌아보라', 즉 광야 40년 생활에 대한 회고와 그것으로 인한 교훈을 전하고 있다.

 

오늘 광야 생활의 끝자락에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교훈하는 모세의 설교를 통해 귀한 교훈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먼저 본문 7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음을 전하고 있다.

광야에서의 모든 일에서 복을 주시기까지 하셨다고 말한다.

그것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비록 허허벌판일지언정 모든 것에서 풍족했다는 모세의 고백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세의 이 말씀이 선 듯 납득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왜 광야에서 40여 년이란 세월 동안 방황을 하여야 했는지,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40년 동안이나 광야를 뱅뱅 돌아다녀야 했었는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었다.

 

38년 전에 하나님은 가나안을 향해 올라가라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순종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올라가기 전에 먼저 정탐꾼을 보내기를 원했다.

그래서 실제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한다.

문제는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정탐꾼의 말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괜찮으니깐 함께할 테니 올라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정탐꾼의 말을 더 신뢰하였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인간의 능력을 더 무서워했다.

 

결국은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게 되어버려다.

일주일이면 족한 거리를 40여 년, 정확하게 38년 동안이나 빙글빙글 돌기만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광야 방황하는 것은 명백히 하나님의 징계이다.

 

그런데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고, 함께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던 40년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징계하실 때, 그 징계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는 말 그대로 징계가 맞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대가로 감당해야 하는 벌이다.

 

그런데 이 벌은 잘못을 꾸짖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 때문에 물리적으로 제재를 받고 고통당하는 것으로 그저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하나님의 징계는 징계인 동시에 그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을 통해 불순종한 이스라엘 광야 1세대가 깨달음을 얻기 소망하셨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어리석은 정탐꾼의 말을 더 신뢰하였던 이스라엘 1세대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던 그때, 그때 바로 1세대를 다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아니 2세대를 위해서, 그들을 보살펴야 하니깐 반은 남기고 반만 죽인다든지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불순종에 대한 충격적인 대가를 바로 나타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광야 1세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광야에서 자연사하게 된다.

38년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깨달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 회개의 시간을 주셨던 것이다.

물론 이들 광야 1세대는 더 이상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그냥 죽게는 놔두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적어도 약속의 땅 바로 앞에서 행해졌던 불순종에 대해서 만이라도, 그들이 회개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서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고, 함께하신 것이 맞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혀 부족함이 없도록 보살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역설적인 사랑인 것이다.

 

구약은 물론, 신약을 통해서는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역설적 사랑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모든 징계가 이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징계가 이런 역설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다.

 

물론 앞서 말 한대로 이스라엘 광야 1세대가 회개하고, 깨달았다고 해서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문 14, 15절.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여기서의 모든 군인은 불순종 당시의 성인들, 바로 광야 1세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대로 그들은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삶을 마쳤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와 동시에 이제 남은 2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조치인 것이다.

 

광야 2세대는 자신들의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이후에 태어난 자녀들은 형으로부터 누나로부터 자신들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정탐꾼의 이야기를 더 신뢰했던 사실을 들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바로 저 앞에 가나안 땅을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를 빙빙 돌고만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은 광야에서 생을 마치는 자신들의 부모, 조부모를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 얼마만큼이나 어리석고 부정한 것인지를 철저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이렇게 신앙의 연단을 통해 광야 2세대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자신들의 부모와 같지 않게 견고하고 정결하게 다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렇듯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광야 징계는 그들을 불순종에 대한 징벌이면서 광야 1세대, 2세대 모두를 위한 놀라운 사랑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2015년도가 아주 힘든 날들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게까지 힘든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시간들이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최악을 향했던 날들이었다.

특히 7, 8, 9, 10월 이 넉 달은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저려 온다.

“목회를 여기서 접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되풀이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러는 중에서도 하나님의 조용한 응답이 저에게 들려왔다.

그 시간이, 그 어려운 시간이, 그저 고통의 시간만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다.

제가 느꼈던 그 당시의 힘듦은 목회자로서의 안일함, 게으름, 사랑의 부족함, 이런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징계였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징계만 주셨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으로 내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징계의 진짜 목적은…….

내가 어려움을 겪고, 고통당하는 진짜 목적은 그것을 통한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저 평안하고, 안식만 해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어려움과 고통을 통해 알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설적인 사랑인 것이다.

 

한마음 신앙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 있겠지만,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그런 평범한 시간도 있을 수 있다.

 

나의 하루하루가 어떤 시간이었든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우리에게 모든 일에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하셨고, 전혀 부족함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단지 나에게 닥친 상황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을 다르게 보거나,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게 닥친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 우리는 그 속에 내제되어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역설적인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주어지고 있다.

단지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요즘 코로나-19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목회자들이 아주 많다.

중국 시진핑을 향한 징계라는 주장부터 문재인 좌파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주장까지….

부끄러울 정도로 개념 없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목회자들의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안타까운 것은 이런 주장 중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가, 한국기독교가,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하나님과의 관계는 올바른지, 내 이웃을 진실로 내 몸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자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믿은 우리에게 이 땅을 맡기신 것 아닌가?

그럼 이 땅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이 땅을 위해 기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왜? 대형교회의 세습과 목회자들의 교만과 교회의 불법이 이런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는 것인가?

 

물론 내가 못 듣고 있을 뿐 어디선가 그런 선포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될 것이다.

나처럼 힘없고, 큰 영향력 없는 목회자들이나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슬픈 상황이다.

 

남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남이 아니라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렇게 할 때, 지금의 상황이 힘든 상황이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정화되고,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권력, 재물, 자기 의를 믿는 사람이 확실하게 나뉘는 놀라운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마음 신앙 공동체 한분 한분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고통 중에서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그 깨달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아닌 감사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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