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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바울의 마지막 인사.(고린도전서 16:13~24)

by TwoTalents 2020. 6. 30.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바울의 마지막 인사

 

본문 : 고린도전서 16:13~24

13.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9.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말씀 :

이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끝맺음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전한 메시지를 요약한다.

본문 13, 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결국,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말은.

깨어서 믿음에 굳게 서는 것.

남자답게 강건한 것.

이는 용기를 가지고 당당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에서 드러나나 분열, 음행, 악행, 차별, 교만 등등 모든 문제는 그들이 믿음으로 깨어 있지 못했고,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지 못했으며, 서로에게 사랑으로 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였던 것이다.

바울은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어야지만,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참고하고 배울 수 있는 모범적인 한 가정을 소개한다.

본문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그 가정은 스데바나의 가정이었다.

바울은 이 가정이 교회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한 가정이라고 말한다.

 

성도를 섬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서 보았을 때, 자신의 집을 예배의 장소로 제공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성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섬김으로 보았다.

스데바나의 집은 이런 일을 감당했음이 분명하다.

특히 그 가정은 성도 섬기는 것을 작정하였던 것이다.

'작정한다'는 헬라어로 에태산 헤아우투스라는 말로 스스로를 준비시켰다라는 뜻을 가진다.

스데바나의 섬김은 자발적이었고, 일회성이 아닌, 연속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렇게 섬기는 일을 작정한 스데바나의 가정을 성도들이 존중하고 따라야 함을 명령한다.

본문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이는 아마도 이들의 섬김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을 폄하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그들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스데바나의 가정이 고린도 교회는 물론 자신에게도 유익을 주었던 가정임을 밝힌다.

본문 17, 18.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바울의 기대와는 다르게 고린도 교회의 부족한 모습이 보였다.

이 부족함이 정확하게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추측건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있어서 고린도 교회의 규모나 재정 상황에 비해 적은 액수가 모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부족분을 스데바나의 가정이 채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연보였던, 아니면 다른 것이었던, 어쨌든 스데바나의 집이 고린도 교회 전체가 감당하지 못한 부분을 한 가정에서 감당했던 것이다.

이것으로 답답했던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 주었던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그들의 헌신을 교회는 반드시 알아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분명 스데바나의 가정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도들은 형제, 자매에 대한 믿음 선행을 알고 박수 쳐 주여야 한다.

 

이렇게 모범적인 가정까지 소개한 바울은 아시아의 교회들이 고린도 교회에 안부를 전하고 있음을 전한다.

본문 19, 20.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교회는 유기적을 관계를 맺고 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며 한 몸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위한 많은 교회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 역시 아시아의 다른 교회에 문안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친필로 문안하고 있음을 밝힌다.

본문 21, 22.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는 것으로 이 편지의 진정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그들에게는 구원이 아닌 저주만이 있을 뿐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믿음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은혜 안에서 고린도 교회가 회복되기를 기대하면 축원하는 것으로 긴 편지의 끝을 맺는다.

본문 23, 2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고린도 교회는 참 많은 문제를 지닌 교회였다.

바울의 입장에서도 이 편지를 쓴다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전서는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고린도 교회의 죄악들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비록 많은 꾸중과 책망으로 편지를 이어갔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며 편지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죄인을 기다리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길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이시다.

잘못된 신앙으로 범죄하였고, 자신들이 범죄하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다시 깨달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의 이 마음이 깨달아지는 오늘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오래도록 참으시고, 오래도록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오늘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한마음 신앙 공동체 한분 한분의 삶이 늘 주님과 동행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혹시 잠시라도 잘못 갈 때면, 그때에도 여전히 기다리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께도 돌이켜 돌아올 수 있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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