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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성령의 은사.(고린도전서 12:1~11)

by TwoTalents 2020. 6. 19.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성령의 은사.

 

본문 : 고린도전서 12:1~11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 이니라

 

말씀 :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사를 받았던 교회였다.

그런데 그 은사가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은사의 참된 의미를 모른 채 서로를 비교하면서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자기만의 자랑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고린도 교회에 바울은 은사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본문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본문의 신령한 것은 내용상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이 받은 은사에 대해 정확하기 알기를 원하였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은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신을 섬기던 시절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본문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우상을 섬기던 시절 그들은 우상을 의지하여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녔다.

우상의 사제들의 무아직경의 모습으로 알 수 없는 언어로 떠드는 것을 신기해 하며 이끌려 다녔던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오해하게 된 것에는 이런 경험도 한몫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방언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눈에 보이는 방언과 같은 은사가 임하여야 성령이 임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이 임하시는 것의 증거로 전혀 다른 것을 제시한다.

본문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임하는 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자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결단코 예수를 주님이라고 시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짜들은 가면을 쓸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시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가면을 써도 언제가 되었든지 거짓은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참된 성령의 은사는 각각의 형태로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은사는 가짜일 뿐이다.

 

앞서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직관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방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은사의 다양함을 전한다.

본문 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 모습은 달라도 은사의 주체는 성령으로 동일하다.

그리고 교회에서 맡은 직분 역시 다양하다.

크고 작음이 있을 수 없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그 직분으로 인해 영광 받으실 주님은 같은 하나님이시다.

사역의 모습 또한 여러 가지이지만, 소명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같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에 차등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일을 위해 다 필요한 것이다.

본문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과 교회의 유익을 위함이다.

그렇다면 은사는 결코 개인적인 것이 될 수 없다.

1차적으로 개인의 확신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은사의 최종 목적은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받은 은사보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가 더 좋아 보인다고 내 것을 버리고 다른 은사를 구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한다.

 

바울은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은사의 목록을 나열한다.

그렇다구 나열된 목록만이 성령의 은사인 것은 아니다.

더 다양한 은사가 교회에 주어진다.

특정 은사에 집착을 보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다양한 은사를 주셨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본문 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본문에 나열된 은사가 정확하게 어떤 은사이다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학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이 이에 해당되겠다.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이는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은사로 본다.

믿음은 주님을 믿는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당시에 가해졌던 핍박 속에서도 그것을 견디고 끝까지 지키는 믿음을 의미한다.

병 고치는 은사는 신유의 은사이다.

베드로는 물론 바울까지 이 은사를 받았었다.

그런데 이 신유의 은사는 철저히 타인을 위한 은사이다.

나의 병을 치료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바울은 평생 안질 혹은 간질로 통하는 개인 병을 안고 살았었다.

능력 행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쨌든 신유 은사와는 다른 모양으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을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예언함은 단순히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상황을 묵도하여 말씀을 근거로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의미한다.

영들 분별함은 귀신의 분별함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자가 성령에 의해서 전하는 것인지, 자기 말을 하는 것인지, 악한 세력에 의해 전하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당시에는 가짜 교사, 가짜 선지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은사였다.

각종 방언 말함은 오순절에 임하셨던 성령에 의해 주어진 방언과는 다른 성격의 방언이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방언은 대화가 가능한 방언이다.

그러니깐 각 나라의 언어가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본문의 방언은 이 땅의 언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은사로 통한다.

방언 통역은 말 그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여러 은사 중에서 방언 은사에 집착하였다.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은 특정인들에게 주어지는 은사라고 보았다.

치유의 은사나, 능력 행함의 은사는 상황적인 경우가 크다.

예언과 영의 분별함은 당장 드러나는 은사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는 방언을 선호했던 것이다.

예전에 우상을 섬겼을 때, 이방 사제들이 무아지경에 빠져 중얼대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방언의 은사는 참으로 매력적인 은사인 것이다.

그래서 방언 받기를 원했고, 교회 공동체를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은사와는 상과없이 방언만을 구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본문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모든 은사는 성령에 의해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 역할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순위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맡은 직책과 임무를 위해 주신 것이 때문에 모든 은사는 모두 중요하다.

비교 대상이 아니며, 남의 은사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특별히 방언에 집작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방언을 간구하는 기도에 힘썼다.

뒤에 14장에서 언급하겠지만, 그런 모습은 결코 옳은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은사를 알아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성도는 그 은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그 은사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은 나를 향한 은혜이지만, 결코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그리고 교회를 위한 것이다.

성려의 은사가 내 자랑이 되어버리고, 내 교만이 되어 버린다면...

그 순간, 주님의 은혜를 내가 저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된다.

어떤 특정한 은사에 집착한다는 것은 교회를 아시고, 나를 아시는 주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교회와 그 사람을 위해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주실 것이다.

우리가 구할 때는 특정한 은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필요한 은사를 가장 좋은 때에 주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한마음 신앙공동체의 모든 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적절한 은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 은사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교회에는 유익을, 자신에게는 확신을 줄수 있기를 기도한다.

각각의 은사를 통해 서로를 섬기며,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놀라운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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