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교제 속의 배려.(고린도전서 11:17~34)

by TwoTalents 2020. 6. 19.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교제 속의 배려.

 

본문 : 고린도전서 11:17~34

17.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 노라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말씀 :

지난 본문에서 바울은 예배 속에서 연약한 자들을 위한 배려에 대해 나누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과의 교제인 예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성도들 간의 교제이다.

성도들 간의 교제는 성만찬, 공동식사 등으로 이루어졌다.

고린도 교회는 성도 간의 교제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본문을 통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식탁 교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오늘 말씀은 예배에 관해 이야기할 때와는 다르게 꾸중으로 시작된다.

본문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성도들의 모임은 당연히 더 많은 유익을 위한 것이다.

서로의 믿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면서 교회 공동체로서 더욱 굳건하게 서기 위해서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교제 모임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교제는 없는 게 더 낫다.

분열이 큰 문제였던 고린도 교회는 식탁 교제에 있어서도 파당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파당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언급한다.

본문 18, 19.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그들은 교회 목회자들을 상대로 아볼로에게니, 게바에게니, 바울에게니 하면서 파당을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런 파당은 이렇게 서로 말씀에 대해 논쟁을 하다가 옳은 것으로 결론 내려진다면, 어느 정도의 긍정 효과가 있을 수 있다.

, 반이 충돌하여 합을 돌출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부분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식탁 교제, 성만찬, 공동식사에서 발생한 파당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모습이다.

본문 20, 21.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공동식사를 통해 함께 나누라고 했더니, 다 함께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많이 가져온 자는 많이 가져온 자들끼리, 그렇지 못한 자들은 또 그들끼리.

그렇게 끼리끼리 모여서는 위화감을 조성하고, 부러워하고, 비난하고.

어떤 이는 가난하여 아예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는데, 그는 그저 굶어야만 했다.

 

바울은 이런 게 무슨 주의 만찬이고 공동식사냐고 책망을 하는 것이다.

본문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아니 밥 먹을 장소가 없어서 음식 들고 교회로 오는 것인가?

나는 이렇게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이라고 자랑하려는 것인가?

그럴 거면 그냥 집에서 먹고 마시라는 것이다.

왜 주의 공동체에 와서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상처를 주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마땅히 책망받아야 할 일이다.

 

바울은 성만찬의 제정과 의미, 그리고 역할에 대해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설명하게 된다.

본문 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바울은 예수님과 직접 함께했었던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성만찬을 설명한다.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님의 가치관이 드러나야 한다.

성만찬의 의미는 기념하는 것이다.

본문의 기념하라라는 헬라어로 아남네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뜻은 기억하다’, ‘회상하다이다.

그러니깐 성만찬의 의미는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성만찬을 진행하셨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감당하실 희생, 그 사랑, 십자가에서 인간을 위해 죽으셨던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만찬의 역할을 성도들이 기억하고 있는 예수님의 희생의 사랑을 교회 속에서 드러냄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교제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고린도 교회는 희생의 사랑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

 

바울은 이것은 결단코 합당한 모습이 아님을 경고한다.

본문 27, 28.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교제는 약한 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으로 예수님의 희생의 사랑을 헛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자신을 살피라고 말한다.

지금 자신들의 교제가 무슨 잘못이 있고,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를 깊이 묵상하고 고민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의 만찬은 말 그대로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기들만의 만찬일 뿐이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주님의 징계가 임할 것을 경고한다.

본문 29, 30.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만찬을 분별없이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그것으로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이미 발생하고 있었다.

약한 자, 병든 자, 심지어 잠자는 자까지.

여기서의 잠잔다는 의미는 죽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먼저는 영적인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분별없는 식탁 교제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상태가 약해지고, 병들고, 죽어 나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제 육적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육체가 약해지고, 병들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 직접적인 징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관점이 모두 복합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라고 본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 약해지고, 병들고, 죽어가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만큼 주의 만찬을 분별없이 행하는 것이 잘못된 공동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초로 서로 나누고, 사랑하라고 제정된 주의 만찬이 그렇게 누군가에게 아픔을 준다면 그것이 어떻게 주의 만찬이 될 수 있겠는가?

예수님과의 교제처럼, 성도 간의 교제는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고린도 교회가 분별없는 식탁 교제로 징계를 받는 것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진술한다.

본문 31, 32.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들이 처음부터 만찬의 의미를 살피며 제대로 행했다면 판단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의 판단은 주님의 징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잘못된 만찬으로 이들은 징계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뜻에 맞는 만찬으로 바뀌어야 한다.

주님은 이것을 기대하고 계시는 것이다.

결국은 바른 모습으로 회복되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마지막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미리 징계를 보이신 것이시다.

이 또한 주님의 놀라운 은혜임이 분명하다.

 

이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교제의 참된 모습을 결론적으로 말한다.

본문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참된 식탁 교제는 바로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라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는 기다리는 것으로 믿음의 형제, 자매를 위한 배려와 보살핌과 돌아봄과 나눔과 사랑을 나타내게 된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함께 먹고 마시는 것으로,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한 가족임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짧게 첨언하고 다시 방문할 때를 기약하면 만찬에 대한 가르침을 마무리한다.

본문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혹시라도 형제, 자매를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배가 고프면, 그냥 집에서 미리 먹고 오라고 권면한다.

이미 배가 불러서 먹지 못하는 것이, 다 보는 앞에서 자기 것이라고 기다리지 않고 혼자 먹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다.

바울은 이 교제에 대해 하고 싶었던 다른 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일단락을 맺는다.

그리고 다음에 방문하게 되면 더욱 자세한 것들을 나누겠다고 전하게 된다.

 

말씀 마무리.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오늘 말씀의 결론은 분명하다.

어떤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는 그것의 형식을 지키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제도를 통해 얻고자 한 효과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단지 모여서 먹고 마시라고 성만찬이 제정된 것이 아니다.

그저 먹고 마시는 것이라면 그냥 집에서 해도 된다.

그런데 굳이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먹고 마시라는 것은 그것을 통해 한 가족, 한 형제, 자매임을 깨닫고 느끼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서로에게 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공동식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그 사랑을 가르치고 전달하라는 것이다.

 

오늘 고린도 교회의 분별없는 식탁 교제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어떠한지, 혹시라도 교제의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지는 않는지.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곳에 언제나 함께하시길 기도한다.

주님의 함께하심을 기억하고 언제라도 주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의 공동식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