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연단.(고린도전서 9:24~10:13)

by TwoTalents 2020. 6. 15.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연단.

 

본문 : 고린도전서 9:24~10:13

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말씀 :

오늘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924~27절이 첫 번째 단락이고, 나머지 101~13절까지가 두 번째 단락이다.

두 단락 모두 연단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연단을 말한다.

 

첫 번째 단락은 바울 개인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은 바울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도, 사역자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먼저 바울은 924절에서 달리기 경주를 인용하고 있다.

본문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1등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상을 받도록 노력하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상급은 1등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깐 본문에서의 강조점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세상 경기에서도 상을 타려고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상급을 거저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감당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절제를 말한다.

본문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경기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선수는 최선을 다해 연습하는 것과 또 한 가지 노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관리, 절제이다.
운동선수 중에 자기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밤새고 싶으면 밤새고.

이런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만약 있다면 그는 경기를 포기한 사람이거나,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경기에 참여하는 사람일 것이다.

보통의 선수들은 보다 나은 기록, 보다 나은 성적을 위해 경기 전까지 절제하면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게 된다.

이렇듯 썩어 없어질 세상의 면류관을 위해서도 이렇게 절제하는데.

바울과 같은 사역자들은 영원한 면류관을 위해 절제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목적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음을 전한다.

본문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바울이 향하는 목적지는 관념적인 곳이 아니다.

환상처럼 어렴풋이 느껴지는 곳이 아니다.

바울은 실재하는 하나님의 나라, 믿는 자를 위해 예비 된 곳,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늘도 자신을 채찍질하면 스스로를 연단시킨다.

본문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이다.

이렇게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도구 된 자신이 도리어 넘어지고 구원을 상실한다면, 이보다 더 안타깝고 민망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과 동시에 자기 발전을 위해 자기 연단을 쉬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유럽을 복음화시키는 것에 일조 했던 바울과 같은 인물도 넘어질 수 있고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해서 엄격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내가 주안에서 어떤 역사에 어떻게 참여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주님 앞에 바로 서 있냐가 핵심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회, 세계에서 제일 큰 감리교회, 이런 업적이 나를 영원히 신실한 주의 종으로 남게 하지 않는다.

사실 저는 이런 것들, 즉 건강하지도 않은 그저 양적인 성장을 업적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어쨌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그 성공이 그를 끝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라도 자신을 연단함으로 주님 앞에 바로 서기를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 단락을 교회의 연단을 위한 이야기이다.

바울은 성경, 즉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출애굽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본문 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과거 출애굽 역사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니깐 직접적인 연단이 아니라 과거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간접 연단을 받으라는 것이다.

바울은 출애굽에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광야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보살핌임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신약의 예수님과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출애굽 과정이 모두에게 은혜의 시간은 아니었다.

본문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애굽에서 구원받고 광야에서 보호하심을 받았지만, 그것을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감사한 것은 아니었다.

광야 1세대는 하나님을 향한 불만과 불순종으로 결국 약속에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에서 삶을 마치는 안타까운 마지막을 맞이했었다.

 

바울은 이런 선배들의 실패가 지금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을 밝힌다.

본문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선배들의 실패를 통해서 반드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실패를 기록한 목적이다.

광야 1세대와 같은 잘못과 죄악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광야 1세대는 하나님의 우상을 섬기는 죄악을 저질렀었다.

본문 7, 8.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여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하루 만에 이만 삼천 명이 죽는 징계가 주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본문 9,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광야에서 주를 시험하고, 주를 원망하다가 징계받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진술하고 있다.

역시 이 역사를 돌아보며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이다.

같은 잘못, 같은 죄악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전한다.

본문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선배들의 실패를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런 실패의 기록은 말세에 더 많은 유혹과 시험 속에 노출될 성도들을 깨우치고 지키기 위해서 기록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누구라도, 바울처럼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일지라도, 언제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지켜야 할 것을 권면한다.

본문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믿음의 사람은 언제라도 경계하고 조심하여야 한다.

그것으로 반드시 믿음을 지켜내야 한다.

이것은 분명히 가능한 일이다.

? 하나님께서 시험당하고 유혹받는 우리의 사정까지도 다 아시기 때문이다.

본문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 합당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감사의 말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말씀이기도 하다.

나에게 닥쳤던 많은 시험들이 (그것이 내 욕심에 의한, 자기가 자초한 멸망의 길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험을 주신 것이라면.

나는 무조건 그 시험을 감당하고 이겨내야 한다.

?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임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 시험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포기해 버린다면.

실제 감당할 능력이 안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영적으로 게으르거나, 하나님의 뜻을 우습게 여겼거나, 시험을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자기 욕심 때문에 벌어진 자기 시험이라면, 감당이고 뭐고 그냥 회개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연단을 위해 허락하신 시험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잘 알아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으로 준비하셨는데.

내가 못하겠다? 감당이 안 된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불 신앙이다.

하나님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는 교만이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오늘 말씀의 주제는 연단이다.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 연단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연단하심을 감당해야 한다.

왜 그런가?

인간의 삶은 역동적이다.

나 혼자의 삶이 아니라 우리는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여 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고 있다.

매일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야만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말씀의 근본은 변하지 않지만, 그 말씀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으로 연단되어 그 중심을 튼튼히 하여야 한다.

그래야 상황에 따라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초로 변화된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으로 스스로를 연단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시험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렇게 구세군 한마음 신앙공동체의 모든 분들이 주님의 강한 용사로 자라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