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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형제를 위하여...(고린도전서 8:1~13)

by TwoTalents 2020. 6. 13.

이미지 출서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형제를 위하여...

 

본문 : 고린도전서 8:1~13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 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 지느니라

8.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말씀 :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우상 제물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이들에 의해 우상 제물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우상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견해이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렇게 제시한다.

본문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모두 각자의 신앙 안에서 우상 제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지식은 나를 교만하게 만들고 서로 대립하게만 만들 뿐이다.

사랑이 덕을 세운다’, 즉 사랑만이 이 상반된 견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2절을 통해 왜 지식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본문 2, 3.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주장만 하다 보니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주장만 하니깐 상대를 용납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사랑을 알지 못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이 삶 속에서 드러날 때, 그때 비로써 하나님도 나를 알아주신다고 전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결론으로 우상 제물에 대한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고 형제, 자매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임을 밝힌다.

바울은 대립에 대한 해결책을 말하면서, 우상 제물에 대한 바른 자세를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문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상은 물론, 우상에게 갖다 바친 제물은 우리에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왜 그런가?

본문 5, 6.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것들은 진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라고 불리는 자가 많은데 이들이 모두 우상이고 가짜라는 것이다.

그들은 신이라 불리고, 주라고 불리지만, 실제 신도 아니고 주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만물을 창조하신 참신이시다.

그리고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주가 되시는 것이다.

우상은 가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수 없다.

우리 영혼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헛된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우상과 우상 제물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르친 바울은 다시 처음의 논제를 이야기한다.

본문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그냥 음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 가지고 있는 일상의 습관이나 관습에 의해,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깨닫겠지 하고 그냥 놔둘 것인가?

본문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저 음식에 지나지 않는 제물인데…….

그런 것을 먹는다고 더 튼튼해지는 것도 아니고, 안 먹는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오히려 성숙한 이들이 연약한 자들을 위해 조심해 주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넘치는 자가 부족한 자에게 베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다.

건강한 자가 아픈 자를 돌봐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하다고 자부하면서, 자유만을 추구하고 약한 자를 향한 배려심이 없는 이들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본문 10, 11.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지식도 있고 믿음이 강하다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믿음에 따라 아무 거리낌 없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음식으로 먹었다고 하자.

실제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것을 보게 된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는 다른 문제인 것이다.

평소 믿음이 깊고 성숙하다고 생각했던 형제가 우상 제물을 먹은 것을 본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이 강하다는 저 형제가 변질한 것인지, 이 사람은 갈등하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혹여 믿음이 강한 자를 본받아 자신도 우상 제물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연약한 자는 곧바로 시험에 들고 갈등하게 될 것이 뻔한 것이다.

이렇게 갈등하고 거리낌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벌써 그에게는 범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주님은 그 형제를 살리려고 십자가를 지셨는데…….

나는 나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내 형제를 다시 죽인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 이렇게까지 강조한다.

본문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나의 배려 없는 행동으로 인해, 내 형제가 갈등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형제가 아닌, 그 형제를 살리려고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강하다는 내가, 신앙이 깊다는 내가…….

형제를 향한 배려심 없이 자유만을 추구하다가...

형제도 죽이고, 나도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본분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우상 제물 별거 아니다.

그거 먹어도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믿음이 연약한 형제, 자매들이 비록 잘못 알고 있고 오해하는 것일지라도…….

나의 우상 제물을 먹는 것으로 내 형제가 실족한다면…….

그것으로 양심의 거리낌을 받고, 마음의 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나는 그냥 고기 안 먹고 말겠다는 것이다.

우상 제물 영원히 안 먹고 나의 형제, 나의 자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까지 살리려 했던 믿음의 가족들…….

이 사람들을 내 자유를 포기하고서라도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 이웃, 내 형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말씀 마무리...

교회 공동체로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믿음의 가족이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이다.

같은 곳에서 같은 교회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형식적으로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하나님께서 묶어주신 믿음과 신앙의 운명 공동체이다.

여기서 육체의 부모님을 자신이 골라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육체의 형제, 자매를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있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믿음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 발로, 내가 선택해서 구세군 한마음교회에 온 것 같지만…….

결국, 이곳으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에 의해,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곳에서 교회로 함께하는 모든 이들은 나의 형제요, 자매인 것이다.

나의 형제를, 나의 자매를 하나님을 사랑하듯,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 형제를 위하여 나의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그 자매를 위하여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우리 믿음의 가족을 위하여 나에게 주어진 놀라운 자유마저도 포기할 수 있는…….

배려와 사랑의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한 마음으로 이 공동체 안에서 존재할 때…….

우리는 그 숫자에 상관없이 그 어느 교회보다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 놀라우신 축복이 가득한 신앙 공동체가 될 줄을 믿고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은혜를 베풀지 않고서는, 축복을 베풀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그런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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