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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복음에 참여하고자.(고린도전서 9:1~23)

by TwoTalents 2020. 6. 15.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복음에 참여하고자.

 

본문 : 고린도전서 9:1~23

1.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 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말씀 :

어제 묵상 말씀을 통해 바울은 믿음의 형제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믿음을 말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 자신이 복음을 위해서 스스로 제한했던 자유에 대해서 전하게 된다.

 

바울은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인식시킨다.

본문 1, 2.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바울은 자신이 주 안에서 자유인이며, 주님께서 부르신 사도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증거가 바로 자신으로 인해 복음을 듣고 믿음의 사람이 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지금 바울의 편지를 받고 있는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설립한 교회이다.

다른 교회는 몰라도 적어도 이 교회만은 바울의 사도 됨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에도 바울 이후 사역자들과 그를 비교하면서 바울의 권위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의심이 바울이 오히려 권위를 세우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전한다.

본문 4~7.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복음 전도자들, 사도들에게는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성도들에게, 그 지역 교회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 받을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권리를 포기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천막제조업에 종사하였다.

교회나 성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급을 한 것이다.

혹시라도 사례를 받는 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방해가 될까 염려해서이다.

거기다가 바울은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했었다.

그가 결혼을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앞선 고린도 말씀을 살펴보았듯이 그가 복음을 위해 의도적으로 독신으로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을 위해서 이런저런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에게 교회에서 사례를 받고,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은 자신의 말뿐만이 아니라 성경에서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 8~10.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바울은 신명기 말씀을 예로 들고 있다.

추수가 끝난 다음 농부는 탈곡을 하게 된다.

그때 소에게 무거운 돌을 끌게해서 앞뒤로 움직이면 껍질을 벗겼다.

그런데 이 소가 일을 하는 동안 농부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탈곡하는 동안에 소가 껍질이 까진 곡식을 먹는 것을 주인인 농부가 허락을 한 것이다.

함께 일한 소이기 때문에 그 소가 껍질이 까진 곡식의 일부를 먹으면서 더 힘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지금 이 신명기의 이야기를 사역자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돕는 사역자들이 열매인 성도들에게 대접받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본문 11, 12절 상반절.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사역자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것을 알게 해준 사람이 복음 전파자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영적인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운 사역자들에게 대접하는 것을 과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바울과 바나바는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이후 사역자인 아볼로나 다른 이들처럼 그런 권리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본문 12절 하반절.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무엇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것인가?

복음을 위해서이다.

 

바울은 자신의 권리가 실제 제도로 실행되고 있음을 말한다.

본문 13, 14.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유대교, 이방 종교 할 것 없이 성전에서 봉사하고 그 종교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성도들에게 생계지원을 받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사례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보장된 권리조차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

본문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그렇다면 이렇게 자신은 성도들에게 사례를 받고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그것을 누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앞으로는 그것을 다 해달라는 말인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린도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 전하는 일이란 사례를 받고,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도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면서라도 꼭 해야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받는 것보다도, 자기가 받았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진실로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바울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본문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복음 전함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것은 자신의 권리보다도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핍박했던 바울이다.

그런 바울에게 느닷없이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당장 징계를 하고 그 자리에서 벌을 내려도 할 말이 없는 바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오히려 전 세계에 주님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신 것이다.

이런 바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는가?

그것 때문에, 복음 전하는 것 때문에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다.

복음 전하라고 죽어도 마땅한 자신을 주님이 살리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사례니 대접이니 권리니 뭐니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잘 전달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바울은 복음 전파가 강제로라도 해야 할 자신의 사명임을 밝힌다.

본문 17, 18.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상은 바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사례가 많니 적니, 대접이 좋니 안 좋니, 이런 것은 따지지도 않고, 그런 거 신경 쓰지도 않고 스스로 생계유지하면서 오로지 복음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이 자기에게는 상급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을 위해 사도로서의 권리를 포기한 바울은 또한 복음을 위해 자신의 자유마저도 포기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본문 19~22.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복음을 들어야 하는 모든 대상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유대인은 유대인의 사정이 있다.

율법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애초에 율법이 없는 이방인 같은 사람에게 율법을 요구할 수는 없다.

약한 자들 앞에서는 더 약한 자가 되어 그들과 공감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모든 노력은 그들 중에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한 바울의 열정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위해 여러 모양, 다른 모습으로 행하는 것은 가식이나 외식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 자체가 복음을 전하는 삶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설교도 하고, 서신서를 통해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바울의 주된 사역은 복음 전파이다.

그 사역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였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복음 전달에 맞추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처음에 복음을 전달하기 위한 바울의 모습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복음이 전달되어 믿음을 갖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주제는 바울의 삶은 어디에 중심을 두었느냐는 것이다.

그가 마땅히 누려도 되는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 전파였다.

그리고 복음 전파는 곧 하나님을 향한 영광이다.

오늘 하루, 특별히 예배하는 주일에...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집중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다른 것 생각지 마시고, 예배함에,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에 모든 정성을 쏟는 오늘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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