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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왜?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인가?(고린도전서 13:1~13)

by TwoTalents 2020. 6. 23.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왜?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인가?

 

본문 : 고린도전서 13:1~13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 노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말씀 :

본문의 앞장인 12장에서는 한 몸을 이루는 교회에서 각 지체가 받게 되는 은사에 대해 나누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면서 가장 좋은 길을 보이겠다고 말하였다.

 

이어서 13장에서 전하는 내용은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깐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기 위해 가장 좋은 길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 자체가 가장 큰 은사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본문은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과 함께 사랑 장으로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다.

본문에서는 사랑의 중요한 속성과 함께 사랑의 실천, 사랑의 영원함, 그리고 사랑의 제일 됨을 가르친다.

 

먼저 각종 은사가 풍성한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받은 은사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은사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방언에 대해 말한다.

본문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방언과 천사의 말이라고 나누었는데, 같은 방언으로 생각하면 무난하다.

그런데 이 방언을 하는 사람에게 만약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라고 전한다.

방언도 천사의 말도 사랑이 없으면 그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울은 더 나아가 예언과 지식, 믿음에 대해서도 말한다.

본문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예언도, 지식도, 믿음도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함께하심이 있었어도 그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한창 코로나의 위험이 고조 되었을 때, 교회를 향해 모이는 예배를 자제해 달라고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 예배는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모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예배를 강행했다고 하자, 이것이 참된 믿음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참된 믿음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이웃 사람들이 불안해하면서 당분간만 모임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듯이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모였던 교회들.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바울은 구제와 희생에 대해서도 말한다.

본문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랑 없이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 없이도 희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타인을 향한 긍휼함도 없이, 자기만족 때문에 구제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기업에서 세금 감면받으려고 하는 것은 구제라는 말 자체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건 그냥 그 사람들에게 사업일 뿐이다.

그런 것 말고도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구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은 무시되고 자기 위주로 구제를 해버리는 것이다.

희생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명예, 나에게 돌아올 존경과 칭찬 때문에 희생하는 사람 아주 많다.

바울은 분명하게 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을 유익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믿는 자가 구제하고, 희생하는 것으로 돌아갈 유익이 무엇인가?

주님의 칭찬이다.

그런데 사랑도 없이 행하는 구제와 희생에 주어질 주님의 칭찬은 없음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이제 바울은 실천적인 면에서 사랑을 설명한다.

사랑함에 있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11가지 실천 양식을 나열한다.

본문 4~6.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해야 할 것은 오래 참음과 온유, 진리를 기뻐하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기와 자랑, 교만, 무례함,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 성냄,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 불의를 기뻐하는 것 등이다.

 

이것을 크게 4단락으로 나누어 이렇게 전한다.

본문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이 사랑 안에서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네 가지 속성이다.

 

결국,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은사라 할지라도 쓸데없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본문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어차피 영적인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마지막 날, 천국이 임하게 되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그러한 것들은 끝나고 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천국에서도 우리는 계속 서로 사랑하며, 그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다.

그러니 사랑은 영원한 것이고, 사랑만이 완전한 것이다.

 

바울은 사랑 이외 부분적인 것들, 완전하지 못한 것들의 마지막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본문 9, 10.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이 땅에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은사는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지식도, 예언도 그것들의 목적인 온전한 천국이 임하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구원받은 자의 영적 이해력이 지금과는 완전하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런 영적 이해력의 성장을 사람의 성장에 비유해서 다시 한번 설명한다.

본문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 세상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영적 이해력이 주어졌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눈에 보이는 현상을 알게 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천국이 임하게 되면 영적 이해력은 확장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 눈에 보이는 현상이 왜 그런지 그 이유와 기초, 모든 과정을 다 알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바울은 거울에 빗대어 마지막 날의 완전함을 다시 한번 설명한다.

본문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당시의 거울은 오늘날의 거울처럼 실상을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반사하지 못했다.

희미한 형체만을 반사할 뿐이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천국이 임하는 그 날에는 희미한 거울이 아니라,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직접 만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가끔 설교 중에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나중에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물어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고린도전서 1312절의 말씀을 근거로 한 대답이었다.

믿음이 깊어지면 깊어지는 것만큼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그 모든 것들에 확실한 답을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는 다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궁금증을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천국에서 하나님께 여쭤보면 된다.

아니, 그 이전에 완전함으로 변모한 우리는 이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 완전한 것과 부분적인 것을 설명한 바울은 최종적으로 이렇게 결론 내린다.

본문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부분적인 모든 것들은 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은 천국이 임하는 그 날에도 영원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왜 사랑이 그중에 제일이라고 말하였을까?

보편적인 대답으로는 믿음도, 소망도 그 토대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믿음과 소망을 가능케 한 것이다.

사랑이 믿음을 낳고, 사랑이 소망을 키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랑인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입장에서는 2가지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린도 교회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는 각종 은사가 풍성하였다.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도 풍족한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사역자 때문에 분열하였고, 서로의 다름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기가 받은 은사를 자랑하기 바빴고, 다툼으로 인해 믿음의 형제와 소송을 벌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었다.

이런 그들에게 방언이 있으면 뭐하고, 예언이 있으면 뭐 하는가?

그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와 같은 소음일 뿐이며, 아무짝에 쓸모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고린도 교회가 살길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으로 회복하는 것밖에 없다.

두 번째는 고린도 교회가 세상을 향해 전혀 사랑의 모습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형제들끼리 분쟁하였고, 그것을 세상 법정에서 다투는 촌극을 벌였다.

그들이 교회 공동체이고 하나님을 믿은 크리스천이라는 것은 세상 법정의 판결자들도 다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희생하는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더 심했을 수도 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은사가 있으면 뭘 하는가?

그들에게 믿음이 있으면 뭘 하는가?

그들에게 천국을 향한 소망이 있으면 뭘 하는가?

그들에게는 사랑도 없고, 그 사랑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결국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일침은 우리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린다.

그동안 한국에는 깜짝 놀랄만한 능력을 보이면서 성장 가도를 달리는 교회가 아주 많았다.

교단별로 세계에서 가장 큰 예배당을 가진 교회가 거의 한국에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칭찬받을 것이 하나 없으며, 듣기 싫은 소리, 보기 싫은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욕하는 빌미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사랑이 없다면 말이다.

이것은 우리 한마음 신앙 공동체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씀이다.

우리에게는 형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세상 이웃을 향해 전하는 빛과 소금이 있는가?

오늘, 이 말씀 붙잡고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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