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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품위 있게, 질서 있게.(고린도전서 14:26~40)

by TwoTalents 2020. 6. 25.

이미지 출처 - Jtbc 홈페이지

 

제목 : 품위 있게, 질서 있게.

 

본문 : 고린도전서 14:26~40

26.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말씀 :

바울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하면서, 특별히 방언과 예언을 나누었다.

본문에서는 모두가 모인 예배 때에는 방언과 예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신약시대의 예배는 오늘날의 예배와 그 형식에 있어서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예배 형식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여서 정착된 것이다.

당연히 신약시대에는 지금처럼 묵도로 시작하여 축도로 끝나는 것 같은 정해진 순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자유롭게 간증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계시를 전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이나 예언 등이 통제되지 못할 때,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오늘 말씀을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바울은 예배의 모든 순서와 성도들이 받은 은사의 원래 목적을 설명한다.

본문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각종 은사는 물론 예배에서 행해지는 모든 순서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물론 모든 성도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은사와 예배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바울은 예배 속에서 방언이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본문 27, 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배 속에서 방언을 말할 때는 그 수가 세 사람을 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도 차례대로, 질서 있게 말할 것을 가르친다.

거기다가 만약에 방언을 통역하는 이가 없으면, 방언으로 기도하지 말 것을 전하는 것이다.

이는 방언이 질서 없이 무작위로 행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질서 없이 그냥 막 행해진다면 그것이 성령의 은사라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예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된다.

교회의 덕을 세우고 모든 이들에게 유익을 주려는 예배의 참된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예언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본문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예언 역시 둘이나 셋으로 제한하고 있다.

예배 속에서 예언이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방언에 통역이 필요하다면, 예언에는 반드시 분별함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말씀이라고 그 사람이 주장한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지, 자기 생각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당연히 말씀이다.

 

또한, 예언 역시 질서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본문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0절의 계시와 앞 절의 예언을 따로 떼어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그것을 전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언과 계시를 같은 범주에서 살펴볼 것이다.

계시를 나타내는 것에 있어서도 두 사람이 동시에 하지 말라고 말한다.

계시를 말하던 도중에 다른 누군가에게 계시가 주어졌으면, 먼저 하던 자들은 잠잠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뒤에 임한 계시가 더 중요하고 진짜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기 통제와 양보의 의미이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모두의 유익을 위함이다.

본문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본문은 모든 이들이 전부 예언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 즉 교회 공동체 한분 한분이 다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하는 사람들은 차근차근 질서 있게 예언을 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말해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알고,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강조한다.

본문 32, 33절 상반절.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지난 말씀 중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방 종교의 무아지경 상태를 성령의 은사로 받은 방언의 상태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나누었다.

하지만 방언과 무아지경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방언과 마찬가지로 예언도 무아지경 상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바울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언하는 자 스스로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예배는 질서 있게 유지될 수가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심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 있는 예배를 통해 성도 누구라도 상처받지 않고, 평안함과 위로를 받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통제되지 않고 남발하는 은사는 결국 예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질서 위에 통제될 때, 방언도 예언도 모든 이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배 속의 질서를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사항에 대해 전한다.

본문 33절 하반절에서 35.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모든 성도가 모여 예배할 때,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전한다.

바울의 표현만으로 생각하면 마치 교회에서 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처럼 전해질 수가 있다.

하지만 결코 그런 말이 아니다.

이 부분은 역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교회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신약시대 당시의 사회는 평등의 시대가 아니었다.

신분의 차별, 나이의 차별, 지역의 차별, 무엇보다 남녀의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였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여성들의 활동이 인정되고, 역할이 주어졌다.

교회에서만은 여성들에게 자유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여성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너무 지나치게 누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남녀 차별로 인해 여성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행하지 않았다.

이것은 종교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앞서 말 한대로 기독교는 여성의 활동을 인정하였다.

그러다 보니 종교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더 많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역자에게,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종교에 관한 기초적인 부분을 계속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 너무 지나쳐서 결국은 예배를 방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무엇인가를 배우려거든 집에 가서 이미 종교에 대해 교육을 받은 남편에게 질문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고린도 교회의 예배는 지나친 은사의 남용과 지나친 여성들의 질문으로 인해 예배의 질서가 무너져있었다.

바울은 이 모든 원인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교만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본문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마치 자기들만 은사를 받은 것처럼, 마치 자기들만 주안에서 자유한 것처럼.

그렇게 교만하다 보니 예배에서 마저 하나님의 영광이나,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기 의를 구하고, 자기 자랑만 하기 바빴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본문 37, 38.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은 것이 맞다면.

선지자로 신령한 자로 하나님의 세우심이 맞다면 지금 바울이 서신을 통해 전하는 가르침에 동의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바울의 서신 속에 담긴 성령의 권위를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감동이 동일하게 임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권위와 명령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는 알지 못하는 자, 가짜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제 예배 속의 은사에 대해 결론 내린다.

본문 39, 40.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모든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함으로 더 좋은 은사를 간구해야 한다.

받은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품위와 질서를 지킬 것을 가르친다.

본문의 품위 있게라는 헬라어로 유스케모노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예의 바르게’, ‘정직하게라는 뜻을 가진다.

예의가 바르다는 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와 존중에서 나오는 것이다.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타인을 향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여야 한다.

형제, 자매의 영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큰소리로 방언을 말하고, 예언한답시고 책망을 일삼고, 가르친다고 하면서 꾸중하고...

이렇게 배려 없고, 상대를 존중하지도 않는다면, 그 은사는 없으니만 못한 것이 된다.

예배 속에서의 은사는 반드시 품위 있게, 예의 바르게, 그리고 정직하게 사용돼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누었던 것처럼, 질서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자칫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물론 예배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분명하다.

하지만 함께하는 예배자, 믿음의 형제, 자매 중 누군가가 예배 속에서 실망하고 상처를 받는다면, 그 예배는 당연히 문제가 있는 예배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만큼이나 형제, 자매와의 화평함이 너무나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울의 가르침처럼 예배는, 그리고 예배 속에서 사용될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형제, 자매를 위해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사랑의 모습으로 예배하며 나의 은사를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은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실 것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예배를 향한 놀라운 가르침이 각인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우리의 예배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우리의 예배가 우리를 더 좋은 은사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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