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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6 한마음, 한뜻, 한몸(고린도전서)

부활이 복음이다.(고린도전서 15:1~11)

by TwoTalents 2020. 6. 25.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부활이 복음이다.

 

본문 : 고린도전서 15:1~11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말씀 :

이제 15장부터는 고린도전서가 마무리되고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혜와 역사가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문제들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가 결국은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래서 본문을 통해 이미 그들에게 전해졌었던 복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잃어버린 복음이 회복되어야 고린도 교회가 회복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본문 1, 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 교회는 분명히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것으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졌다면, 이후에는 복음을 붙잡고 믿음을 지켜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믿음은 헛된 믿음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켜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붙잡지 않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비록 믿음으로 시작되었지만, 구원은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고린도 교회가 이런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붙잡지 못했고,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교만하였고, 자신들의 은사를 자랑하기 바빴다.

그런 마음 때문에 공동체는 분열하였고 파당을 만들어 결국, 형제끼리 소송을 벌이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교회가 그 모습 그대로 간다면 끝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했던 복음의 핵심을 다시 한번 가르치게 된다.

본문 3, 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께서 인간이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서 죽으셨다.

그런데 죽으신 그대로 있지 않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 모든 것은 임의로 된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성경을 통해 예언되었던 말씀이 그래도 실현된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계획하심이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약속이다.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부활이 바로 복음이다.

왜 부활이 복음인가?

부활 때문에 생명을 꿈꾸는 것이다.

부활 때문에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것이다.

부활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믿는 것이다.

 

뒷부분에서 나눌 것이지만,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우리 모두의 믿음이 헛된 것이 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부활은 진리이고, 부활은 역사이다.

바울은 복음의 핵심인 부활의 역사성, 확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부활을 목격한 목격자들을 소개한다.

본문 5~7.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게바, 즉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필두로 나머지 열두 제자(열두 제자라 함은 실제 열두 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셨던 제자들을 나타내는 대명사와도 같은 단어이다.), 그 후에는 오백여 형제들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실제로 목격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들 중에 주님 곁으로 간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목격자들이 살아 있음을 강조한다.

 

예수님께서 육체의 죽임을 당하시기 이전에는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하셨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종교지도자들과 계속해서 부딪히고 논쟁하는 자신의 형이 너무나 못마땅했었다.

그래서 회당에서 설교하고 있는 형을 미쳤다고 비난하며 끌어내려고까지 했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는 야고보를 비롯한 예수님의 형제들은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주님의 부활로 인해 헛소리 같았던 형의 모든 말이 진리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로 예수님의 동생들은 주님을 주님으로 믿게 되었다.

특별히 야고보는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결국,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증인이 소개된다.

바로 바울 자신이다.

본문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예수님을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눈이 먼 상태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바울 자신이 기록한 고린도전서에서 그는 분명히 예수님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이를 두고 바울 자신의 기록보다 3자의 기록, 바로 누가의 기록을 더 신뢰하여 바울이 예수님을 직접 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전서에 보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경험한 것을 보았다는 말로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린도전서가 사도행전보다 10여 년 이상 먼저 기록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3자가 객관적일 수 있지만, 본인의 일은 본인이 가장 정확하게 아는 것이 사실이다.

바울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본문의 보이셨느니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호라오라는 단어로 눈을 통해 인지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귀로 듣고 안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알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왜 중요하냐면, 바울은 자신의 과거 이력 때문에 자신이 처음 복음을 전했음에도 자기가 세운 교회에서 마저 그 진실성을 공격받는 슬픔을 겪어야만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예수님을 눈으로 본 것과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중요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런 자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본문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바울이 부활하시기 전의 예수님을 만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성경의 기록대로라면 바울은 부활전의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얘기를 나눈 적도 없고, 그 어떤 연결 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찾자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일어난 후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를 핍박했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예수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유대교에 반대하여 기독교라는 이상한 종교에 빠진 유대인들이 싫었고 응징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깐 어떻게 보면 예수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이처럼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고 사도의 직분을 받게 될 아무런 근거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냥 느닷없이 예수님이 자신을 찾아오신 것이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바울을 선택했다고, 이방인들에게 보내는 사도로 세울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죽자고 쫓아가 괴롭히려고 했는데, 그런 바울을 자신의 사역자로 세우시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은혜일 수밖에 없다.

본문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은혜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죄인인지를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으로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스펙을 배설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주님을 핍박했던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역을 감당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 이력 때문에 두 배의 공격을 감수해야 했었다.

믿음 때문에 믿지 않는 이들에게 공격받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믿는 이들에게도 회심을 의심받으며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였기에, 그것마저도 감당하면서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로 세움 받은 것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구원받은 것과 것임을 이야기한다.

본문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비록 유대인이었지만, 바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

갈릴리의 젊은 청년을 따르는 신흥 종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예수를 쫓는 이들이 유대교의 걸림돌이 되는 것 같으니깐 핍박하는 것에 동참했던 것이다.

이렇듯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자신을 부르시고 구원해 주셨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이방인들이다.

애초에 성경은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과는 당연히 상관없으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아니었다면 기독교와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바울이라는 유대인을 통해 부활의 복음을 듣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 복음으로 믿음이 생기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한 방법이 없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자신들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다.

자랑할 것이 없으며, 그저 감사만 있을 뿐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보다 겸손해야 했었다.

예수님과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는 그들에게 느닷없이 바울을 보내시어, 부활의 복음을 듣고 어처구니없게도 믿음이 생기게 하신 것이다.

인간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겸손과 희생, 그 사랑을 기억하고 지금의 모습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구원이 허락될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고린도 교회의 위기는 그들이 핍박받고, 말씀이 부족하고, 모일 시간이 없었고, 재정이 부족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다른 교회에 비해 평안했었다.

말씀도 풍족하였다.

유력한 말씀 사역자들로 인해 각각의 사역자를 따르는 파당이 생길 정도였다.

모일 시간도 충분했다.

자주 모이고 말들도 많아서 바울이 특정인들에게 잠잠하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고린도 지방은 경제적으로 풍성한 도시였고, 고린도 교회 역시 재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고린도 교회의 위기는 오히려 풍족함 속에서 오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의 평안함은 그들의 신앙을 안일하게 만들어 버렸다.

고린도 교회의 풍성한 말씀을 사역자들의 말씀을 평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분별과 평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분별은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것이다.

평가는 내가 듣기에 좋냐 안 좋냐는 따지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자주 모였지만,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는 없었고, 자기가 받은 은사를 자랑하며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기에 바빴다.

고린도 교회는 물질에서 풍족하였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상처를 주었다.

물질로 계층 나누고 갈등을 조장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처음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나 문제들이다.

주님의 사랑, 주님의 겸손, 주님의 희생, 주님의 부활을 내 영혼이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위기는 무언가 부족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한마음교회가 규모가 작고, 재정이 약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교인 수가 얼마 안 되고, 담임 사관의 입술이 어눌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위기가 온다면.

그것은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복음이 회복되어야 한다.

부활의 신앙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될 것이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성경대로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 복음 붙잡고, 부활의 신앙을 붙잡고.

오늘의 위기를 멋있게 극복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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