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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끝까지 (요한계시록 2:18~29)

by TwoTalents 202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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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끝까지

 

본문 : 요한계시록 2:18~29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 :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교회에 이은 네 번째 교회,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주님의 편지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버가모 교회와 동일한 책망을 받는다.

 

두아디라라는 도시는 버가모에서 동쪽으로 64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공업 도시로 유명, 군사적 요충지이다.

공업 조합이 발달, 조합마다 수호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우상을 숭배, 특별히 아폴로 신을 열렬히 섬겼다.

사도행전 1614절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가 두아디라 출신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웠거나, 아니면 바울에게 전도된 루디아에 의해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두아디라에 전해지는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본문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불꽃, 빛난 주석 등은 심판하실 것을 암시하는 단어이다.

버가모 교회에서 좌우의 날 선 검말씀으로 싸우실 것을 암시하셨다.

마찬가지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심판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칭찬의 말씀을 전하신다.

본문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사업은 헬라어 에르가라는 단어로 평상시의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두아디라 성도의 신앙이 점점 자라가고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주님께 책망받았었다.

 

이어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이 나타난다.

본문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자칭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이세벨이란 여자를 용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성도를 행음하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행위는 이전에 소개된 발람, 니골라당의 교훈과 똑같은 모습이다.

본문의 행음은 헬라어 포르뉴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매음’, ‘비합법적인 음란’, ‘우상 숭배등의 등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 포르노의 어원이 된다.

 

오늘날에도 자칭 선지자라는 인간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심각하다.

이단 교주들처럼 직접 자신이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문제이지만.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벌이는 사회적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주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들을 용납하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이다.

주의 종들 특히나 자기 자신을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서 계속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먼저 주께서는 자칭 선지자, 거짓 선지자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는 영어 성경에서 ‘Her’로 번역하여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지칭하고 있다.

말씀으로 경고하시고 실질적인 징계를 내리셨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심판과 다르다.

이때까지는 죄에서 돌아설 기회가 있다.

그런데 끝까지 돌아서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다.

이세벨이 끝까지 돌아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심판을 말씀하신다.

본문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끝까지 돌아서지 않은 이세벨은 물론 이세벨과 함께한 모든 이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침상’ = 그녀를 병들게 하겠다는 뜻.

더불어 간음을 해 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마저 저버리고 회개를 하지 않은 이들을 환난 가운데 던지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심판받는 것이 아니다.

그 죄에 대한 깨달음과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회개의 기회를 주었는데 회개하지 않아서 심판에 이른 것이다.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의 자칭 선지자 이세벨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교회가 교훈 받기를 원하셨다.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그의 자녀’ = 이세벨의 진짜 자녀라기보다는 이세벨의 교훈을 따랐던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할 기회를 저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사실을 통해 모든 교회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행위는 믿음의 행위를 말한다.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하며, 그 행위는 바로 나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서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않은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사탄의 깊은 것이라는 것은 이세벨의 주장과 가르침을 의미한다.

이세벨은 우상 숭배나 음행, 이교도의 깊은 생활을 해봐야 더 철저히 영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헛소리에 흔들리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깐 음행과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 외에는 다른 교리적인 것들에 대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에 관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회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복음 안에서 성도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할 것을 결의한다.

양심의 자유를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것이다.

주님도 이방인인 두아디라 성도들에게 오직 주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과 믿음의 행위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지키라고 당부하신다.

본문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너희에게 있는 것, 주님을 향한 참된 믿음, 진리와 소망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 오실 때까지 이것을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신다.

 

100m 달리기든지, 10000m 달리기든지, 아니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이든지 결승점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결국 뛰지 않은 것과 똑같다.

포기한 자에게는 기록이 없다.

꼴찌도 결승점을 통과해야 기록이 있고 꼴찌라는 타이틀이 주어진다.

중도에 포기한 자는 기권이고 실격.

 

주님은 1등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계신다.

 

주님께는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바로 이기는 자, 승리자인 것이다.

본문 26, 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 자는 동격의 말씀이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만국을 심판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권세에 이기는 자가 참여함을 말하는 것이다.

주께서 잘못 만들어진 질그릇을 깨버리시듯, 주의 일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 심판에 이기는 자들이 참여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

 

또한, 이기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이기는 자에게,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새벽 별을 주신다고 하신다.

이 새벽 별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체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영광, 찬란한 구원의 영광과 관련된 것을 말한다는 견해는 일치한다.

그러니깐 이기는 자에게,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영광, 구원의 영광이 주어진다는 말로 생각하면 무방하다.

 

이 영광, 구원의 영광을 영원한 것이다.

인간이 이 땅에서 보내는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심령 깊숙한 곳에서부터 인지하고 깨달을 때, 이 땅에서의 불편함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의 일을 지켜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수고는 결코 무거운 것도, 긴 것도 아닌 것이다.

 

말씀 마무리.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주님의 편지를 살펴보았다.

그들을 처음보다 점점 신앙이 성장해 나아가는 성숙한 교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주님은 그것까지도 해결하기 원하셨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기회를 주셨다.

또한, 주님께서 주신 기회를 바로 알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예비하신 놀라운 권세, 놀라운 영광을 말씀하셨다.

이 권세와 영광은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것임을 선포하셨다.

 

주님은 이 사실을 두아디라 교회뿐 아니라,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교회가 다 알기를 소망하신다.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편지의 마지막을 이렇게 쓰셨다.

본문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오늘 성령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귀에 또렷이 들리는 시간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날마다 주님 안에서 자라나 어제보다 성숙한 오늘을 맞이하기를.

그런 중에도 교만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할 수 있기를.

그것으로 주의 종을 향하여 바른 분별력을 행할 수 있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붙들기를.

결승점을 통과하기 전까지 늦더라도 나의 경주를 멈추지 않기를.

결국, 이기는 자로, 승리자로,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로 만국을 다스리는 주님의 권세와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놀라운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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