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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내가 아노니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2:12~17)

by TwoTalents 2020. 4. 29.

이미지 출처 - 한국컴퓨터선교회

제목 : 내가 아노니 들을지어다.

 

본문 : 요한계시록 2:12~17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 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 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말씀 :

에베소 교회에 전하신 말씀은 열심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여야 한다.

말씀의 제목은 들을지어다였다.

 

서머나 교회에는 그들의 환난과 궁핍을 주께서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주님께 죽도록 충성할 것을 주문하셨다.

말씀의 제목은 내가 알고 있다였다.

 

버가모 교회의 말씀은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의 말씀을 합쳐 놓은 듯하다.

그래서 제목을 내가 아노니 들을지어다.’로 정하였다.

 

버가모라는 도시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도시였다.

에베소, 서머나에 비해 상업은 뒤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은 두 도시보다 오히려 더 발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버가모에는 의과 대학이 있었고, 대형 도서관이 있었다.

로마는 이곳을 식민지 아시아의 수도로 삼았었다.

많은 신을 섬기는 우상의 숭배지였으며 황제 숭배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버가모 교회는 요한계시록 외에는 관련 기록이 성경에는 없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을 향한 박해가 아주 심했고, 그로인한 순교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한 말씀을 이렇게 시작한다.

본문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주님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고 표현한다.

좌우의 날선 검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깐 좌우에 날선 검은 주님의 말씀, 혹은 말씀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을 통하여 버가모 교회를 판단, 즉 심판하실 것을 암시하시는 말씀이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해 이렇게 전하신다.

본문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먼저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이 어디에 사는지를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사탄의 권자가 있는 곳에 살고 있었다.

권자는 권력을 잡고 있는 자리, 즉 권력의 중심을 말한다.

버가모 성도들은 사탄의 권력이 있는 중심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버가모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이며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

 

버가모의 교인들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그 어느 교회보다 힘든 생활을 했던 것이다.

어느 도시보다 더 심하고, 더 큰 환난과 고통이 있었다.

 

이전에 언급한 서머나 교회는 몇 사람이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될 것과 10일 동안 환난 당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는 이미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죽임을 당하였다.

벌써 순교가 일어난 것이다.

 

이렇듯 사탄의 권력 중심지에서 큰 핍박에 있는 버가모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칭찬의 말씀을 먼저 전하신다.

그들은 사탄의 권자가 있는 그곳에서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았던 것이었다.

본문의 굳게 잡다라는 말은 헬라어 크라테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말은 능동태 시상으로 계속해서 굳게 잡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한순간도 주님을 놓지 않고, 그 이름을 붙잡으며 믿음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그것 때문에 순교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주님의 충성된 종인 안디바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안디바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안디바라는 이름의 한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런데 안디바에 관한 다른 기록이 없다.

그래서 개인이 아니라 순교자 전체를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안티반대’, ‘대적이라는 뜻을 가진다.

는 교의의 뜻이다.

안디바교의를 대적하는 자’, ‘이교를 대적하는 자라고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 숭배와 황제 숭배에 대적한 이들을 통칭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든지 중요한 것은 버가모 교회의 누군가가 우상숭배의 중심지, 사탄의 권력의 중심지에서 주님을 굳게 잡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 순교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이 주님의 진짜 칭찬이다.

버가모 성도들이 믿음의 형제, 안디바의 죽음 앞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함께하던 형제가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다.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주님을 붙잡고 주님을 의지하였다.

그들은 놀라운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믿음의 버가모 성도들에게도 주님의 책망이 있었다.

본문 14, 15.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다는 것.

발람의 교훈은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를 나눌 때 설명하였다.

발람은 민수기에 등장하는 거짓 선지자이다.

주님은 발람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는 것은 바로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행음하게 했다고 했는데, 민수기에 의하면 이 행음은 이방 민족과의 결혼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러니깐 우상숭배와 잡혼이 이스라엘 민족의 걸림이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의 수만 명이 죽게 되는 징벌을 하나님께 받게 된다.

이것이 발람의 거짓 교훈이다.

니골당의 교훈 역시 발람의 교훈과 같이 거짓된 교훈, 주님의 사람을 넘어트리고 걸림이 되게 하는 교훈이다.

니골라의 뜻은 백성을 정복하다이고, ‘발람의 뜻은 백성을 이긴다.’이다.

 

버가모 교회가 주님을 향해 죽음을 불사한 충성을 나타냈지만, 그들 중에는 그와 동시에 우상과 타협하고, 혹은 우상을 숭배하기까지 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개종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결혼을 함으로 주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을 이방 신앙과 혼합시켜 버렸다.

개역 개정에는 빠져있는데, 어떤 사본에는 15절 마지막 부분에 내가 그것을 싫어하니라.”라는 말씀이 덧붙여 있기도 하다.

이 말이 있든지 없든지 주님께서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싫어하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지지난 주에 에베소 교회를 향한 말씀을 통해서, 교회에서 열심이고, 최선을 다해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해도,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버가모 교회를 향한 편지를 통해서는 자신의 몸을 죽기까지 내어준다 할지라도...

그것이 잘못된 가르침, 잘못된 교훈에 의한 잘못된 열심이라면, 그것은 주안에서 아무런 소용없는 헛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잘못된 교훈, 거짓 교훈을 따르는 것을 책망하신다.

 

일본의 가마가제 특공대, 이슬람 강경파의 자살 폭탄 테러, 이단 사이비들의 집단 자살과 같은 것들이 모두 잘못된 열심이다.

뿐만 아니라, 정통 교단이라는 자들의 독단과 독선, 불법과 이기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먹게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헛된 열심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열심을 계속해서 판단하고 확인하여야 한다.

 

잘못된 교훈을 따르는 버가모 성도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잘못된 교훈에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 처음 신앙으로 돌아서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의 입, 그 입의 검으로 직접 싸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의 서두에서 좌우에 날선 검은 바로 주님의 말씀이라고 정의 내렸다.

본 절에서는 주님의 입의 검을 말씀하시며 좌우에 날선 검이 주님의 입을 통한 말씀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주님의 말씀으로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판단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이다.

 

주님은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너무나도 싫어하신다.

그리고 그 교훈을 따르는 이들을 책망하시고 경고하신다.

무엇보다 주께서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에 분노하신다.

그 분노가 얼마나 큰지 주님은 그들과 싸우리라라고 까지 표현하신다.

본문 싸우리라의 헬라어 표현은 플레메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전쟁을 한다라는 의미이다.

주님은 지금 잘못된 교훈에서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신 것이다.

주님과 적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돌아오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 즉 거짓된 교훈에서 돌아서는 자, 잘못된 교훈을 버리는 자, 주님의 순순한 말씀을 붙잡고 지키는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와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감추었던 만나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만나는 광야에서 멈추었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맛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그것을 맛볼 수 있다.

그러니깐 감추었던 만나를 주신다는 말씀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함께 만나를 먹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은 이기는 자, 곧 승리자의 승리를 기념하는 명패와도 같은 것이다.

고난과 유혹을 이기고, 잘못된 교훈을 과감히 버린 승리자를 향한 칭찬과 격려를 의미한다.

 

말씀 마무리...

주님은 버가모 교회의 상황과 그들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그들이 사탄의 권력 중심에서 고난을 받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계셨다.

하지만 주님은 그 상황을 곧바로 해결해 주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헛된 교훈과 함께 그 교훈을 따르는 이들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돌이켜 회개할 것을 경고하시고 명령하셨다.

거짓 교훈을 떠나 주님께로 돌아오는 이것을 주님은 승리라고, 이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승리자, 이기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승리의 명패가 주어질 것을 약속하셨다.

 

버가모 교회의 교훈은 우리에게 깊은 신앙적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어디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어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주님은 다 알고 계신다.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고통받고, 포기하고, 손해 보는 우리를 기쁨으로 칭찬하신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바로 제시하시지는 않으신다.

물론 특별한 경우, 긴박한 경우, 사안이 심각한 경우 주님의 직접적인 손길이 임할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주님은 직접적으로 즉시 우리의 힘듦을 해결해 주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나의 부족한 부분을 생각나게 하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님은 나의 작은 부족함마저도 주안에서 바로잡고 회복되게 하시기 원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계속해서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어려움, 나의 고난, 나의 고통이 해결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을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참된 지혜를 얻어, 조금 더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다.

문제를 해결 받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깊은 깨달음으로 충만한 영성을 갖게 되는 우리이기를 소원한다.

 

나의 모든 삶의 여정이 끝나는 그날...

끝까지 주님의 바른 교훈을 붙잡고,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아름답게 자라나, 그렇게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를 위한 영원한 생명과 천국, 그리고 우리를 칭찬하며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의 명패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 복음을 마음에 새겨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모습을 닮기에 노력하는 칭찬 받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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