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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6 아포칼룹시스 요안누-요한계시록(I)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2:1~7)

by TwoTalents 2020. 4. 24.

이미지 출처 - 갓피플

제목 : 들을지어다.

 

본문 : 요한계시록 2:1~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 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말씀 :

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의 유일한 묵시록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 요한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편지로 전하게 된다.

소아시아 지역은 지금의 터키 대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계시록 1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이 일곱 교회는 종말에 등장할 교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이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전형들을 보여주는 보편적인 교회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깐 당시 전교회에 전하는 주님의 편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일곱 교회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나타나는 것과도 아주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곱 교회를 향한 말씀을 직접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기에도 별 무리가 없다.

 

주님께서 편지하신 첫 번째 교회는 에베소 교회이다.

본문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먼저 에베소라는 도시를 소개하면, 에베소는 지금의 터키 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동서양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무역의 중심지였다.

로마가 인정한 자유의 도시중 하나였다.

자유로운 상거래가 이루어졌고, 종교의 자유가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에베소는 문화가 발달하였다.

그렇다 보니 종교혼합이나 퇴폐 문화가 성행하기도 하였다.

1세기 기독교인들에게 에베소는 아주 중요한 도시였다.

사도행전에서도 많은 분량이 에베소 교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도 바울도 전도 여행 중에 3번이나 에베소 머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하였다.

그리고 3차 전도 여행 때는 바울이 직접 두란노 서원을 만들어 2년 이상 거주하며 성도들을 가르쳤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면서 자신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의 첫 목회자로 임명한다.

 

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편지하라고 말씀하신다.

1장에서 우리는 이분을 예수그리스도로 정의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는 그 교회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교회의 수호천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 부분을 딱히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정의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이 편지는 개인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 전체, 그리고 당시 교회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사자가 누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먼저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신다.

본문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행위와 수고와 인내는 연결 선상에서 살펴봐야 한다.

행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평소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평소 삶이, 생활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온갖 문화가 혼합되고,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에베소라는 도시에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찾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 삶을 주께서 인정해 주셨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에베소 성도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열심을 내어서 교회에 나왔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다.

 

또한,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악한 자들을 용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깐 악함을 받아드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혹시라도 스스로를 사도라고 부르는 자가 있으면 무턱대고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하였고, 만약 거짓된 자라면 가차 없이 거부하였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과 그 지도자들은 참된 영을 구분하는 영적 분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본문 3절을 통해 또 한 번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신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말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에베소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로마 황제를 섬겨야 했다.

당시 교회는 황제 숭배 강요받는 심한 박해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단들의 내적 도전들이 많았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복음에 확고히 서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지켰던 것이다.

고통을 참았고, 예수의 이름을 위해 핍박을 견뎠다.

그리고 그런 중에도 주님과 교회에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내었던 것이다.

 

여러 면에서 에베소 교회는 칭찬받아 마땅한 교회이다.

 

그런데 이런 에베소 교회에 주께서 하나의 책망을 말씀하신다.

본문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간단명료한 한 문장의 말씀이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처음 사랑이 무엇인가?

주께서 인간을 향해 보여주셨던 놀라운 사랑을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그렇게 주님을 사랑했던 처음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보이신 사랑에 너무나 기뻐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응답했던 주님을 향한 성도들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을 에베소 성도는 버려버렸다.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 성도들 스스로가 버려버렸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어느 시점부터 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과 완전하게 단절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처음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와는 다르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그 열정이 완전히 식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을 만큼,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였다.

그런데 처음 사랑,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은 버려버렸다.

그러니깐 사랑은 없는데, 사랑 없이 교회 생활, 신앙생활만 열심히 한 것이다.

에베소 교회가 교리적으로 칭찬할만하지만, 그들의 신앙은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버린 것이다.

사랑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본문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회복을 원하신다.

그것을 위해서 세 가지 명령을 내리신다.

먼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가만히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되었는지 기억해 내라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된 상황을 기억해 내고, 그 사실에 대해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된 이유가, 어떤 사건 때문이든지, 아니면 어떤 사람에 의해서든지, 그것도 아니면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든지 그것에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처음에 순수했던, 그리고 열정적이었던 주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촛대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1장에서 정의했다.

그렇다면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에베소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가 아니라는 것은 그들이 성도가 아니라는 말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 그들에게 당연히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교회가 붕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교회가 아예 없어진다는 것이다.

교회가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버림으로 공중분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아무리 교회에서 열심이고,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고, 거짓 가르침과 거짓 사도를 용납하지 않고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중심에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 열정적인 사랑이 없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1, 2.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곧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사람도 진실하게 사랑할 수 없다.

지금 에베소 교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교회에 나와서 형식적인 예배나 교제, 봉사 같은 것에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버려버렸던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충분히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셨다.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에베소 교회가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회복 가능성이 보이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마음은 바로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다.

주께서도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시는데, 에베소 교회 성도들도 주님처럼 그들의 행위를 미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니골라 당의 행위는 무엇인가?

니골라 당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어떤 학자는 사도행전에서 세워졌던 일곱 일꾼 중의 한 명인 니골라가 타락해서 만든 이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어떤 학자는 니골라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니골라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후에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니골라 당이 정확하게 어떤 집단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위가 어떠한 성격을 지녔는지는 추측이 가능하다.

니골라 당은 일곱 교회 중에서 세 번째 교회인 버가모 교회에 보낸 주님의 편지에도 언급이 된다.

계시록 214, 1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이 말씀에서 발람의 교훈니골라 당의 교훈이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원적으로 발람니골라는 거의 같은 뜻을 가진다.

발람은 백성을 이긴다.’라는 뜻을 가지고, 니골라는 백성을 정복한다.’라는 뜻을 가진다.

 

발람은 구약에 등장하는 거짓 선자자이다.

구약 민수기에는 발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 사람들과 결혼하게 하고 우상숭배에 타협하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발람은 이스라엘의 대적자인 발락의 부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 여인을 통해 유혹하게 하여 음행을 저지르게 한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중 수만 명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게 된다.

바로 이방신,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미끼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처음 사랑을 버리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발람의 교훈은 신약성경에서, 혹은 유대 역사에서 늘 경계의 표적으로 언급되었다.

이 발람의 교훈이 니골라 당의 교훈과 같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처음 사랑을 버리게 하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주께서 싫어하신다.

주님처럼 에베소 교인들도 이런 영적 이간질을 싫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아직 주님의 책망에서 다시금 회복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편지를 이렇게 마무리 하신다.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의 성도들은 다 들으라는 말이다.

바로 이 말씀은 주께서 주시는 말씀이며,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말씀이다.

말씀을 듣고 이기는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이기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 버려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니골라 당의 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게 하고 버리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기는 것이다.

이렇게 이기는 자에게 주님은 천국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에베소 교회의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건강하다고 말하는 어떤 교회들과 많이 닮아있다.

성도들이 삶 속에서,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아주 열심히 잘한다.

최선을 다해 교회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래서 교회는 매번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덕분에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라고 사람들이 칭찬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겉모습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과연 그들의 중심이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한다.

너무 많은 교회들이 행사를 위한 행사를 치르고 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사랑과 열정은 식어 간다.

의례 해온 것이라 안 할 수 없으니깐 변함없이 진행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더 커지고, 사람들도 많이 참석하니깐 그 행사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어려움이 없었다고 해서 우리 신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습관화되어 버렸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의 신앙에서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이 아련하고 희미하게 느껴지고 있다면 이것은 너무나도 슬픈 현실이다.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주님은 우리 앞에 놓인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실 것이다.

더 이상 이곳이 교회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주님을 향한 사랑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혹시라도 처음 사랑이 희미하다면, 어느 때부터 이렇게 처음 사랑의 감격을 잊어버렸는지 스스로 체크해 보시기 바란다.

처음 사랑을 잊어버린 나를 주님께 회개하고, 다시금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이길 기도드린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뜨거웠던 우리의 첫사랑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한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 한마음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언제라도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 사랑을 지키며, 더욱 키워가는 사랑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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