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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7 절기

[고난 주간] 화요일 - 슬픈 입맞춤.(마가복음 14:43-52)

by TwoTalents 2023. 4. 3.

제목 : 슬픈 입맞춤.

 

본문 : 마가복음 14:43~52

43.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말씀 :

오늘 본문에서는 1410절부터 시작된 유다의 배신이 완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으시는 예수님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제자들과 함께 깨어 기도하기를 원하셨지만, 제자들은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파는 자를 향해 나아가셨다.

 

그때 맞은 편에서는 주님을 파는 자와 잡으려는 자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본문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이들은 예수님을 잡기에 가장 좋은 시간, 가장 좋은 장소에 들이닥쳤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배신자, 가룟 유다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룟 유다는 이미 함께한 이들과 예수님을 잡을 신호까지 맞춘 상태였다.

본문 44, 45.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방법으로 입맞춤을 선택하였다.

물론 지금 예수를 잡으러 온 이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춤을 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그는 예수님을 고소하는 고소인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 유대는 로마 속국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누군가를 체포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고소인이 있어야 하는데, 가룟 유다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

당시 입맞춤은 스승을 향한 존경의 표시였고, 친밀한 관계에서 행해졌던 인사법이었다.

가룟 유다는 이렇게 이중적 모습으로 스승인 예수를 넘겨주었던 것이다.

 

가룟 유다의 신호를 받은 무리들은 곧바로 행동을 시작한다.

본문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두려웠다.

그래서 어두운 밤에 몰려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예수를 잡았던 것이다.

 

이렇게 긴박하고 긴장된 상황에서 한 제자가 흥분하고 만다.

본문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느닷없이 칼을 빼내어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 중 하나의 귀를 잘라 버린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사람을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베드로 말고도 제자들 중에는 칼을 가지고 다녔던 이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께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혁명을 일으키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몇몇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할 때, 베드로는 이것을 예수님의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흥분해서 칼을 꺼내 들었고, 적으로 보이는 한 사람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를 제지하신다.

자신의 생각과 일이 다르게 전개되자 베드로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버리고 만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48, 49.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 이 고소, 고발이 정당한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을 붙잡을 이렇다 할 명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밝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원하신다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을 다른 제자들에게 알려서 경고할 수도 있었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기도하러 가지 않았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작정하셨다.

인간이기에 밀려왔던 두려움을 완전하게 극복하셨다.

그렇게 주님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대비하고 있지 못했던 제자들,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주님을 홀로 남겨둔 채 모두 도망가고 말았다.

본문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사랑한 제자에게 배신당한 주님은, 사랑한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장담했던 제자들의 맹세가 얼마나 헛되고 허망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내용은 오직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본문 51, 52.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학자들은 대부분 이 청년을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일 것이라고 인정한다.

 

상상력을 좀 가미하면...

가룟 유다의 일행이 예수님을 찾기 위해 함께 만찬을 나누었던 마가의 다락방을 먼저 들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거기에 예수님이 없자, 가룟 유다는 마가에게 예수님의 행적을 물었을 것이고, 마가는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과 기도하시러 갔다는 것을 유다에게 전해 주었다.

가룟 유다는 마가의 말을 듣고 예수님 체포조와 함께 겟세마네로 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마가가 가룟 유다와 함께 온 병정들을 보고 뭐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홑이불을 두른 채로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리려고 따로 겟세마네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고, 오히려 자신까지 붙잡힐 것 같으니깐 홑이불을 버려두고 벗은 채로 도망간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어쨌든 이 청년 역시 다른 제자들처럼 자기도 잡힐까 무서워서 주님을 홀로 남겨둔 채 도망가버렸다.

 

지금 예수님은 원수들 사이에 홀로 남겨져 있게 되었다.

그렇게 주님은 철저히 혼자가 되셔서 원수들의 손에 붙잡히게 되신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기 위해 약속했던 군호가 너무나 의외의 것이었다.

존경과 신뢰의 나타내는 입맞춤으로 스승을 향한 배신을 실행한 것이다.

그가 왜 굳이 입맞춤을 군호로 정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며,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기만하고, 원수들의 손에 팔아넘긴 것은 씻을 수 없는 유다의 죄악이다.

유다의 입맞춤은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가장 아픈 입맞춤, 가장 슬픈 입맞춤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유다만을 손가락질하며, 유다만을 비난할 수 없다.

유다의 배신이 단초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유다 한사람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다는 대표성을 띠고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 죄에 사로잡혀 있었고, 죄의 노예로 살았던 유다와 같은 존재였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죄인인 세상의 모든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기 위해 원수들에게 붙잡히는 수모를, 그 억울함을 예수님은 온전히 감당하셨다.

오늘 이런 주님을 기억하고 이런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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