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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7 절기

[성탄절]긴 침묵을 깨고...(마태복음 1:18-25)

by TwoTalents 2023. 1. 1.

 

제목 : 긴 침묵을 깨고...

 

본문 : 마태복음 1:18~25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말씀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세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평가하시기를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그 아름다운 세상을 망쳐버렸다.

인간은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하게 된다.

이 불순종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죄이다.

불순종의 죄로 인하여 인간에게 내리신 형벌은 죽음이었다.

 

아담과 하와 이후 모든 사람들은 죄 성을 가지게 되었다.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냥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다고 이후의 사람들이 다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니다.

죄 성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아담 이후로 사람들에게 들어간 죄 성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어긋나게 하였다.

 

비록 자신을 뜻을 따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그냥 놔두시지 않으셨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고자 하셨고, 인간을 살리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셨고, 때로는 대언자를 보내기도 하셨다.

어떤 때는 자연을 이용하셔서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그런데 이미 죄로 인하여 오염된 사람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했다.

 

구약의 역사는 천지창조 이후에 하나님을 떠나려는 인간과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깨닫게 하시고 붙잡으시려는 하나님의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인에게 살인을 경고하셨고, 노아에게 세상의 타락을 한탄하셨다.

바벨에서는 함께 모여서 죄악을 도모하는 인간들을 아예 흩어버리셨다.

 

여러 민족으로 나눠진 뒤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선택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을 약속하신다.

그 자손들로 아브라함의 약속이 이어지게 하셨고, 선민의 삶을 살게 하셨다.

그런데 이 선민들마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된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급기야 대적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에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가던 죄의 길을 돌이켜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잠시나마 하나님께 집중하고 귀 기울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간에게 뿌리 깊게 박힌 죄 성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집중해서 듣도록 그냥 놔두지 않았다.

반복되는 죄악 속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던 이스라엘 민족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쪼개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아픔을 겪고도 깨달음이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엉망이었다.

결국은 두 나라 모두 이방 민족에게 멸망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북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게 비참하게 멸망 당한다.

거기다가 앗수르의 민족융합정책으로 인해 순수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은 사라지고 혼혈 민족인 사마리아만 남게 된다.

역사 속에서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남 유다도 마찬가지이다.

북이스라엘에 비해 나라를 조금 더 유지하긴 했지만, 결국 그들도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바벨론에게 무참하게 짓밟히게 된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했던 민족, 이스라엘은 영원히 끝나는 것만 같아 보였다.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임하지 않았고, 주님의 말씀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무려 400년이란 시간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침묵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말라기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라기 45, 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완전히 멸망한 백성에게 엘리야를 보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이 엘리야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현대의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하신 엘리야가 어떠한 존재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 민족을 강대국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자기들만의 구세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나라가 멸망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고,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는 그 엘리야, 자신들의 구원자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약속하신 그리스도는 금방 오시지 않았다.

앞서 말 한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신구약 중간시대라고 말하는 그 400년의 시간 동안 침묵하셨다

말라기 선지자가 엘리야를 예언한 후 사백 년 동안 아무 말씀이 없었다.

 

400년 동안 이스라엘은 주체만 바뀔 뿐 계속해서 강대국에게 정복당한 채 노예의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중간에 잠시 독립을 하는 듯했지만, 바사,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열강들의 속국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신구약 중간시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침묵의 400년을 영적 암흑기라고 한다.

그러면 긴 침묵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인가?

하나님은 정말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인가?

 

우리는 구약을 통해서 이 모든 일들이 이미 예언 되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서부터 인간들의 타락과 전 인류를 위한 메시아가 예언되어 졌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얘기하고 있는 신구약 중간시대, 침묵의 400, 영적 암흑기에 대해서도 다니엘서를 통해 예언되어 졌음을 읽을 수 있다.

 

다니엘서의 예언은 훗날, 그러니깐 다니엘서 이후에 세상에 나타날 나라들과 왕들에 대한 예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예언은 신구약 중간시대 사백 년의 역사 가운데 다 이루어지게 된다.

신구약 중간시대 사백 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지만, 이미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400년의 기간에 바벨론이 메데, 바사에게 망하고, 고레스의 바사는 헬라 제국에 망하고, 헬라 제국이 세계를 통치하게 되었다.

헬라가 세계를 제패했을 때, 헬라 제국의 정책을 따라 헬라 세계의 공용어가 헬라어로 통일되었다

그 후에 등장한 로마 제국은 세계정복과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군대가 갈 수 있는 길을 세계 구석구석까지 닦아 놓았습니다.

세계의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이때부터 생겨난 말이다.

 

세계의 공용어가 된 헬라어는 후에 신약시대의 복음 전파와 성경 기록을 위해 중요한 언어가 되었다.

또한 로마가 닦아 놓은 길로 인해 사도들이 복음을 들고 온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영적 암흑기라 불리는 이 400년의 시간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기간을 통해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방관하신 채 그냥 내버려 둔 침묵의 시기가 결코 아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인간들을 살릴 마지막 일을 이루시기 위해 4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400년 동안 준비하시며 침묵하셨던 하나님은 드디어 그 기나긴 침묵을 깨고 천사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것은 마리아에 대한 고민이다.

자신의 약혼녀인 마리아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요셉은 지금 심각한 내적 갈등을 하고 있다.

요셉에 입장에서 부정한 마리아이지만, 요셉은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본문 19절을 통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녀를 위해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끝내려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곤란하면서도 슬픈 현실에 최선의 해결책을 찾고자 극심한 고민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구약시대 때부터 예언되었던 메시아의 탄생이 자신과 자신의 아내가 될 마리아에게서 성취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주의 사자가 그에게 현몽한 것이다.

현몽은 말 그대로 꿈을 통해 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을 말한다.

천사는 먼저 요셉을 향해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고 그를 부른다.

이것은 요셉이 실제로 다윗의 족보에 속한 사람이니깐 이렇게 부른 것이다.

그러면서 더 중요한 것은 요셉으로 하여금 요셉 자신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이어서 천사가 전할 말, 즉 다윗의 자손을 통해 이루어질 메시아의 도래를 인식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주의 사자는 본격적인 메시지를 요셉에게 전한다.

사랑하는 약혼녀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이미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와 함께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부정한 여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 순간부터 이제는 요셉이 사람들의 비난거리가 되어버리게 된다.

바보라고, 멍청하다고, 모자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마리아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마리아는 결코 부정한 여인이 아님을 주의 사자는 증거하였다.

요셉의 사랑을 배신한 여인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왜 그녀가 부정한 여인이 아닌가? 마리아의 잉태는 인간이 아닌,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이 놀라운 일이 무슨 상황인지를 이렇게 설명해 준다.

본문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선포 되어지는 순간이다.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은 이미 예수라고 정해져 있었다.

이 이름만으로도 그 아들이 누구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의 뜻은 여호와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요셉의 아들로 태어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구원의 선포를 하는 것이다.

바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아의 도래, 요셉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리스도의 탄생이 자신과 마리아를 통해 이루지는 순간이다.

 

400년을 침묵하셨던 하나님.

아니 400년을 준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인간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메시아의 잉태와 함께 다시 시작하시는 순간인 것이다.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주의 사자는 이 놀라운 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다시 한번 선언한다.

본문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구약에는 메시아를 향한 수많은 예표론적 사건과 선지자들의 예언적 메시지가 나타난다.

그러한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오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해 오셨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이 예시하신 바를 따라 그 모든 예언을 현실화, 구체화하셨던 것이다.

주의 사자는 많은 예표 중에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였다.

본문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왜 이글이 인용되었을까?

그것은 당연히 마리아가 처녀로서 그리스도를 임신했기 때문이다.

부정을 저지른 임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셉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복음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말씀을 통해서 요셉은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또한 자신이 메시아의 육체적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구원에 역사에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꿈에 나타난 주의 사자의 이 말이 요셉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든지 요셉은 잠에서 깨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한다.

본문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주의 사자의 말을 바로 믿어 버린 것이다.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자신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문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하나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뒤에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한 것.

 

꿈을 꾸었다 해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즉각 반응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저는 요셉이 이렇게 행동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실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일 것이다.

그의 꿈이 너무나도 생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요셉 역시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마리아를 향한 깊은 사랑이다.

꿈에서나마 사랑하는 마리아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그 메시지...

그 메시지가 요셉에게는 절대로 거짓일 수 없는 기쁨의 소식이었을 것이라는 것.

 

요셉은 이러한 마음으로 주의 사자가 전해 준대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한 자신의 아들을 예수라고 부른다.

그것으로 다시 한번 더 자신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다.

 

처녀이면서 임신이라는 주의 뜻에 순종한 마리아도 그렇고, 오늘 요셉도 그렇고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 정도의 사람들이니깐 예수님의 육체적 엄마, 아빠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일 것이라고 믿는다.

 

400년이란 시간 동안 세계의 정세를 통해 준비하셨던 하나님.

이스라엘의 상황을 통해 준비하셨던 하나님.

그리고 메시아의 육체적 부모까지 철저히 준비하셨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한 인간 구원의 계획을 이렇게 시작하셨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가 이 땅에 탄생하신 것이다.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믿는가?

이 놀랍고도 축복된 소식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이 아름다운 복음을 모든 이들이 기쁨으로 받아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그 사랑을 알고 예배하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하나님의 설레이는 사랑으로 느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오랜 시간 준비하신 하나님의 열정이, 그 놀라운 사랑이 우리 모두의 심령에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각인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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