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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무질서와 부패(사사기 17:1~13)

by TwoTalents 2020. 2. 20.

이미지 출처 - 한국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

제목 : 무질서와 부패

 

본문 : 사사기 17:1~13

1.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 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 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7.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 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말씀 :

오늘 본문에서는 사사기 시대의 종교적 무질서와 부패가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시대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오늘 본문은 삼손의 이야기 뒤에 기록되었지만, 시간상으로 삼손의 다음 시대를 기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사기 초기의 기록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먼저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미가미가여후라는 말의 단축형으로 그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리오이다.

이 뜻만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최고로 생각하고 섬기는 사람인 것만 같다.

그런데 사실을 먼저 밝히면, 이 미가는 우상 숭배자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 혼합에 빠진 자이다.

벌써 이름과 실제 삶의 언발란스가 나타나면서 사사기에 드러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하루는 미가의 어머니가 은 천백을 잃어버린다.

본문 2절 상반절.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그런데 본문의 잃어버리셨으므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카흐의 수동형 단어이다.

그 뜻은 가져감을 당했다가 된다.

도둑질, 절도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은 천백을 가져간 사람을 미가의 어머니는 저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저주를 들은 미가의 마음이 뜨끔하게 된다.

본문 2절 전체.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어머니의 돈을 다름 아닌 아들, 미가가 가져갔던 것이다.

이게 훔친 것인지, 아니면 잠깐 쓰고 다시 채워놓으려고 한 것인지.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어머니도 모르게 은 천백을 가져간 것이다.

아들의 고백을 들은 어머니의 반응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방금까지 은을 가져간 자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도둑질한 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자, 오히려 여호와께 복을 받으라고 축복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돈을 가져갔다고 어떻게 아들을 저주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저주를 철회하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모습이다.

하지만, 도적질한 자녀를 축복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것도 공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거론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미가의 어머니가 도둑질한 아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던 이유가 다음 본문에서 드러난다.

본문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지금 이 문장이 말이 되는 문장인가?

미가가 훔친 은 천백을 다시 돌려주었는데, 돌려받은 어머니가 그것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한 신상을 새기고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문장이 신앙으로 용납이 되는 문장인가?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린 은 천백으로 아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계속해서 본문 4절을 읽겠다.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결국, 그 은으로 한 신상, 우상을 새기고 부어만들게 된다.

그리고는 그것을 미가의 집에 놔두는 것이다.

하나님께 바친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서는 그것을 집 안에 모신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 믿음의 개념이 완전히 상실되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다음 본문 5절에는 3절만큼이나 말이 맞지 않는 얘기가 또 나온다.

본문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신상을 만들어서 집에 모셨으니깐 그곳이 바로 신당이다.

미가는 이 신당을 위해 자기 아들 중의 하나를 그곳의 제사장으로 삼아버린다.

그리고 제사장 된 아들을 위해 에봇과 드라빔을 동시에 만들어 주었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만 할 수 있다.

미가가 레위 지파 사람인가?

그는 정황상 레위 지파일 수가 없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다.

거기다가 여호와의 제사장들이 입는 에봇을 만들어서 제사장 된 아들에게 주었는데, 우상인 드라빔을 같이 만들어서 주는 것이다.

지금 미가는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는 그러는 건지, 율법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미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본문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미가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각각의 사람마다 왕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통제하고 이끌어갈 권위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 맘대로 행동하면서 살아갔던 것이다.

그러니 종교가 타락하고 정치가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

 

6절 말씀은 사사기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 말씀이다.

이 부분은 사사기 마지막에 다시 나누도록 하겠다.

 

어쨌든 본문 7절부터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당시 종교의 타락을 나타낸다.

본문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유다 지파의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 레위인 청년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이 사람은 왜 떠돌아다니고 있는가?

아마도 레위인에게 주어져야 할 각 지파의 할당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한다.

아무튼, 떠돌아다니다가 미가가 살고 있는 곳까지 이르게 된다.

본문 8.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그런데 미가가 딱 보니깐 레위인이 분명한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어디서 오는 길인지 질문을 한다.

본문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레위인은 유다에서부터 왔으면 그곳을 떠나 거류할 곳, 즉 정착해서 레위인의 사역을 감당할 곳을 찾고 있다고 밝히게 된다.

마침 미가에게는 제사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람이 없어서 레위인도 아닌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놓기는 했는데 그것이 계속 찜찜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레위인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본문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미가는 그에게 자신의 개인 제사장이 되어 줄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레위인에게 집안의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줄 것이고, 연봉으로 은 열과 의복 한 벌, 그리고 모든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율법에는 레위인에게 이렇게 연봉을 정해놓고 사례하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율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가는 몰라서 이런 제안을 했을 수도 있지만, 레위인이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

이 레위인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의 할당이 주어져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율법에 어긋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한다.

이것은 율법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 1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이 레위인은 지금 너무 만족해하고 있다.

미가가 제공하는 혜택이 그를 기쁘게 한 것이다.

그동안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할당을 받지 못하고, 나그네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었다.

그런데 미가가 자신을 스카우트해서는 확실한 수익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보너스는 물론 이런저런 권위까지 주니깐 너무 좋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주겠다고 한 미가 앞에서, 마치 아들과 같은 모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미가 앞에서 제사장으로서의 권위, 가르치는 권위, 틀린 것을 꾸중할 수 있는 권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과 같은 마음으로 어떻게 잘못된 점을 고치게 하고 틀린 것을 가르쳐 바르게 한단 말인가?

 

청년 레위인은 율법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이 대접받으면서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면 되는 것이다.

본문 12.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레위인의 입장에서는 미가 집에서의 제사장직은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놓치기 싫은 직업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율법이 파괴되고, 제사장의 권위가 무너지고, 믿음이 왜곡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인데도 미가는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율법에 맞든 안 맞든, 내 집 신당에 우상이 있든 없든.

어쨌든 레위인으로 제사장을 세웠으니깐 이제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지금 미가는 이방인들의 신들처럼 하나님을 미신적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의 종교와 사상이 혼합되어 버렸다.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서...

신당을 짓고, 제사 지낼 사람 세우고, 그 사람 대우 잘해주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는 미신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목회자들 중에 주의 종에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사기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주의 종에게 잘해야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헛소리를 한다.

 

여러분 저한테 잘한다고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 같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물론 저에게 잘 대해 주시면 감사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라는 특정 대상에게 특별히 잘 섬기는 것을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을 향해, 그들을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결단코 저주받을 가짜 목회자들의 말에 현혹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무질서와 부패이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무질서하고 부패한 것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무질서하고 부패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자기 소견대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는가?

그것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을 이끌고 나아갈 강력한 권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것이 맞는가?

이스라엘에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왕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셨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 지키면서 주님의 백성으로 살라고 하셨다.

홍해 앞에서, 광야에서, 요단강에서,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만왕의 왕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 하고.

어설프게 들은 몇 가지마저도 자기 맘대로 왜곡시키고 파괴해 버렸다.

그러니 개인의 신앙은 엉망이 되고, 종교는 부패하고 타락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신앙공동체 여러분.

나와 여러분의 삶의 주인, 우리의 왕은 누구신가?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의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오늘 미가의 타락이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미가는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우상을 동등한 위치에 올려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과 돈이 동시에 믿음의 대상일 수는 없다.

미가는 하나님께 바친 거룩한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께 헌금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똑같은 축복을 달라고 떼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에봇과 이방 신의 상징인 드라빔을 같이 만들어서 제사장에게 주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에서, 사람을 욕하고 저주하는 말이 동시에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내 소견의 옳은 대로 살면 우리에겐 죽음뿐이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알고, 깨달아 그 말씀대로 살기를 소원하는 믿음의 사람이교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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