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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천방지축 삼손(사사기 14:1~15:8)

by TwoTalents 2020. 1. 22.

이미지 출처 - Daum 블로그 '한암의 누리 사랑방'

 

제목 : 천방지축 삼손

 

본문 : 사사기 14:1~15:8

1.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 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 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 오소서 하니라

4.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 더라

(이하 생략)

 

말씀 :

오늘은 긴 본문을 통해 제목처럼 천방지축, 제 멋대로인 삼손을 살펴볼 것이다.

삼손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탄생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선택하셨고 나실인으로 지명하셨다.

그런데 이 삼손이 하나님의 규례를 우습게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

 

어느덧 장성한 삼손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삼손은 결혼에서부터 나실인 답지 않은 어긋난 모습을 보인다.

본문 1, 2.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처음부터 제멋대로인 삼손이다.

자기 눈에 보기 좋다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방 여인과의 결혼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나라를 압제하고 있는 블레셋의 여인을 마음에 둔 것이다.

삼손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이스라엘의 자매들 중에서도 훌륭한 처자가 많을 것인데 왜 하필 블레셋 사람이냐는 것이다.

본문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삼손의 대답이 어떠한가?

삼손은 막무가내이다.

자신이 나실인이고 뭐고, 이방인이니 어쩌고 하는 규례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냥 자기 보기에 좋은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누리고, 다 가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와 같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의 삼손을 여호와께서 사용하신다.

본문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개역 개정의 번역대로 읽으면 마치 삼손이 블레셋을 치려고 일부러 이방 여인과의 결혼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사사기의 대표적인 오역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히브리 본문에는 삼손이 틈을 타서로 번역된 부분에 3인칭 대명사가 사용되었다.

그러니깐 히브리 원문대로 번역하고, 문장을 치환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아비와 그의 어미는 이것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블레셋사람들로부터 기회를 찾고 있었고, 블레셋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역 개정은 이문장의 그가를 삼손으로 보고 삼손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문장의 구조와 내용의 흐름상 본문의 그가는 삼손이 아니라, ‘여호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개역 한글과 개역 개정을 제외한 그의 모든 성경에는 블레셋을 치려는 주체를 삼손이 아닌 여호와로 번역하고 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는 삼손을 통해 블레셋 사람을 칠 기회를 찾고 계셨다.”라고 번역하는 것으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삼손은 나이만 먹었지 자기 맘대로 하려는 철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삼손의 특성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고 계획하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삼손의 방자함이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어쨌든 장성하고 힘까지 센 아들의 성화에 삼손의 부모는 두손 두발 다 들게 되었다.

삼손의 요구대로 딤나의 여인을 맞이하려고 딤나를 향해 내려가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삼손의 영적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본문 5~9.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딤나 여인과 약혼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지 부모들보다 앞서서 딤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던 삼손이다.

그런데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젊은 사자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본문에는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령의 감동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이전에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주신 힘을 삼손이 발휘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 힘으로 삼손은 젊은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 죽인다.

나실인으로 이방 여인과의 혼인 금지 규례를 어기고 있는 삼손이, 정결함을 유지해야 하는 규례마저도 어기고 만 것이다.

눈앞에 사자가 나타났으니깐 어쩔 수 없이 사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규례에 따라 정결 의식을 가졌어야 했다.

그런데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았으니깐, 자신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되니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능청을 부리는 것이다.

그런데 삼손이 자신이 지켜야 할 규례를 어느 정도로 우습게 생각했는지 드러나는 일이 또 발생한다.

약혼식을 끝내고 이제는 결혼식을 하려고 딤나로 다시 내려가다가 자신이 찢어 죽인 사자의 몸에 벌들이 집을 짓고 꿀을 모아놓은 것을 본 것이다.

그 꿀 먹겠다고 나실인이라는 인간이 사체를 마구 만지면서 규례를 또 어긴 것이다.

거기다가 그 꿀을 자기 부모님에게까지 준다.

부모에게까지 부정한 것을 먹게 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막 나가는 사사는 없었다.

 

삼손은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에 만족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제 딤나의 여인과의 결혼식이 거행되는데, 여기서도 삼손의 제멋대로인 모습이 등장하게 된다.

본문 10~14.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삼손의 결혼식은 철저히 이방 민족의 풍습에 따라 치러졌다.

이방 민족의 전통에 따라 결혼식과 잔치는 이레 동안 진행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삼손은 당연히 독주를 마셨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인 그의 모습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무르익은 잔치에 흥을 더 돋우려고 한 것인지, 삼손은 갑자기 수수께끼를 내면서 내기를 제안한다.

이긴 쪽에게 진 쪽이 베옷과 겉옷을 각각 삼십 벌씩 주자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잔치의 흥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제물을 향한 욕심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삼손은 사자와 벌꿀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문제로 출제하게 된다.

수수께끼가 삼손의 특별한 개인적 경험이다 보니 이 문제의 답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함께한 블레셋 청년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의 답을 삼손에게 말하지 못하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답을 찾지 못하자 블레셋 청년들은 비겁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본문 15.

 

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니

 

연약한 여인을 겁박해서 답을 얻으려는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 블레셋 청년들의 죄악 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삼손 때문에 가족이 다 죽을 판이 되었다.

딤나의 여인은 삼손의 아내이기 이전에 블레셋 사람이고, 한 가정의 딸이다.

그녀는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삼손에게서 수수께끼의 답을 들으려고 애를 쓴다.

본문 16, 17.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도다 하는지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 하였으나 칠 일 동안 그들이 잔치할 때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삼손만큼이나 이 여인은 삼손을 사랑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녀는 삼손에게 협박받은 사실을 상의하지 않았다.

그저 삼손에게서 답을 얻어 자기 민족에게 알려주기에 급급하다.

그 때문에 삼손이 곤란함을 겪게 되는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반면 삼손은 부모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아내의 눈물을 이기지 못해 알려줘 버린다.

삼손은 힘만 센 순진한 청년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결국, 여인은 자기 민족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게 된다.

여호와의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선택했던 이방 민족의 아내에게서 돌아온 것은 배신뿐이었다.

협박 때문이었든지 어쨌든지 삼손은 내기에서 지게 된다.

본문 18.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삼손은 그들이 어떻게 수수께끼의 답을 알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아내를 암송아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화가 단단히 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삼손이 블레셋을 첫 번째로 치게 되는 이유가 되고 만다.

본문 19, 20.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다른 지역의 블레셋 사람 30명을 쳐 죽이고 베옷과 겉옷 30벌을 노략질하여 청년들에게 준 것이다.

부당하게 내기에서 진 삼손이, 자신도 부당한 방법으로 내기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을 배신한 아내를 버려두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렇게 되자 여인은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본문의 삼손의 친구는 진짜 친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풍습에 따라 결혼식에 신랑의 친구 역할을 담당한 30명 중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딤나의 여인의 자신의 동족과 결혼을 한 것이 된다.

결국, 삼손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딤나까지 왔건만 그는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화가 풀린 삼손은 자신이 버리고 온 딤나의 여인이 다시 생각났던 것 같다.

역시 삼손은 힘만 센 멍청이다.

그는 아내와 화해하고 다시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염소 새끼를 화해의 증표로 들고 그녀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본문 151, 2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하지만 삼손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미 그녀는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간의 일을 통해 삼손의 장인은 삼손의 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된 것이 삼손의 탓이라고 무작정 그를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동생을 삼손에게 주려고 한다.

 

하지만 삼손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또다시 분노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자신의 아내를 협박하여 비겁하게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아낸 블레셋 청년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본문 3~5.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자신의 복수는 너무나도 정당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삼백 마리의 여우를 이용해서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과 포도원, 감람나무를 모두 불살라 버린 것이다.

블레셋 청년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삼손에게 베옷과 겉옷 30벌씩을 받은 것으로 그에 몇십 배, 몇백 배에 해당하는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곧바로 이 일을 벌인 사람을 찾게 된다.

본문 6.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그런데 곡식을 불태운 것은 삼손인데,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아닌 그의 장인과 여인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다.

삼손이 그랬던 것처럼, 블레셋 사람들도 남 탓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딤나의 여인은 자신의 집과 가족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면하기 위해 삼손을 속이고 배신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마지막은 피하려 했던 그 모습 그대로 불살라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아무튼, 삼손은 이 일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한 복수 역시 정당함을 주장한다.

본문 7, 8.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

 

블레셋 사람들의 재물에 큰 타격을 입혔던 삼손이 이제는 직접적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는 것으로 복수를 실행했던 것이다.

 

애초에 삼손의 탄생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구별된 삼손의 실제 삶은 구원자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나실인이면서도 규례를 어기는 것은 다반사였고, 즉흥적이며 대책 없이 저돌적이기까지 했다.

감정 조절에 실패하여 분노를 폭력으로만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좋은 것은 떼를 써서라도 차지해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철부지였다.

삼손 자체만 봐서는 그가 이스라엘을 망치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처럼 보인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삼손마저도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은 3회에 걸쳐 블레셋을 괴롭혔다.

그런데 그 3회 모두가 삼손 개인의 분노, 삼손 개인의 복수를 위한 것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동기로 인해 블레셋을 공격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셨다.

삼손의 자유의지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블레셋을 심판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삼손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삼손은 나실인이면서 규례를 어기고, 사사이면서도 자신의 사명에 소홀했던 무능하고 게으른 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일탈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진실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느껴진다.

40여 년 이상 한국 교회에서 부르짖고 있는 기복신앙, 성공신앙이 얼마나 허망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배우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공이 그들을 진짜라고 증명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진짜와 가짜,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되는 역사 속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선한 자와 악한 자, 정한 일과 부정한 일들 사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로 바라보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구별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어차피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그 놀라운 역사 속에서 삼손처럼 될 것인가? 아니면 다윗처럼 될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고 믿음의 판단임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 오늘도 사람이교회 공동체를 사랑하시어,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삼손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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